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 이상오 이상오
  • 승인 2017.05.21 09:57
  • 업데이트 2017.05.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인간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합도 이론을 발표한 윌리엄 해밀턴(왼쪽)과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전후 수식도 없이 단순히 ‘세월호’라 불리는 이 하나의 사건은 우리 시대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하나의 이정표로 각인되어 있다. 삶과 죽음의 사투가 벌어지고, 골든타임라고 불리는 생존가능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자신의 생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인 구조를 펼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생명줄인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넘긴 의로운 학생,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자살과도 같은 무모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은 교사, 끝까지 직업정신을 잃지 않은 일부 승무원들의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도 애절하게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끝까지 배를 지키고 구조의 책임이 있는 선장은 누구보다도 먼저 탈출하였고, 구조의 시점을 놓치고 우왕좌왕하면서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을 모면하기 위해 언론플레이에만 몰두하는 무책임하고 비양심적인 정부 관료들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배가 항구를 떠나 바다로 나오면 배에 탄 사람들은 고립된 배 안에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배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생존경쟁이 벌어지지만 배가 침몰하지 않는 한 공동운명체가 깨지는 문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배를 잃게 되었을 때 각 개체들이 하는 행동은 그 날의 세월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선 개체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고의든 과실이든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개체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자 자연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자연적이고 적나라한 모습을 불편해 하고 보다 더 고상한 존재이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왜 더 고귀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가?

리차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발표한 지 40년이 다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너무 강력하고 명징하여 웬만한 반론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도 못하였다. 이기적 유전자가 곧바로 이기적인 개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삭막한 이론을 인간의 이기심과 관련짓는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최적의 이익 추구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체가 가진 본능이자 진화의 대원칙이므로 생존경쟁에서 이기적 행동은 당위적인 것이고 이기적 선택은 합리성으로 인식된다.

도킨스는 궁극적으로 이타적인 행위는 없다고 단언한다. 생물 개체는 유전자의 운반체에 불과하며 외견상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유전자 차원에서 보면 이기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명체의 진화에는 이타성이라는 말 자체가 개입될 수 없으며 ‘유전자는 도덕을 모른다’는 다소 삭막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도킨스에게 ‘집단’이란 없다. 마치 철의 여인이라 불린 영국 대처수상의 ‘사회란 없다. 개인만 있을 뿐이다’라는 선언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다윈의 시대에는 몰랐던 유전자의 발견으로 인해, 도킨스가 자연선택의 단위를 유전자의 수준까지 끌어내리기는 하였으나 생명체가 가진 이기적 속성은 선택의 단위를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부정하겠는가? 인간은 원래 이기적라는 것을.

그러나 다윈에게 깊은 고민을 던져준 것처럼,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원리만으로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특히 생물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타적 행동은 전통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일개미는 자신은 번식하지 않으면서 평생을 여왕개미를 위해 일하다 생을 마감한다. 그 외에 육상에서 바다에서 많은 종류의 생물 종에서 개체의 희생을 통해 집단을 보호하는 행동들이 발견된다.

다윈도 이러한 생물들의 이타적 행위를 알고 있었으나 이렇다 할 진화론적인 입장을 밝히지 못하면서 자신이 평생 쌓아온 자연선택론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타적 행위에 의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고민도 하였다고 한다.

마침내 생물계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혁명적인 이론이 등장했다. 1964년 해밀턴(William D. Hamilton)의 ‘포괄적합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이 그것이다. 이 이론은 생물계의 이타적 행위들이 결국 혈연의 연관도에 따라 해석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c<rb (c: 행위자가 부담하는 비용, r: 행위자와 수혜자 사이의 유전적 근연도, b: 수혜자에게 돌아가는 편익)

생물학계의 상대성이론으로도 불리는 이 포괄적합도의 공식은 이타적 행동이 유전적으로 먼 개체보다는 가까운 개체를 위해 더 많이 발휘된다는 이론인데, 이타적 행동의 결과가 행위자가 부담하는 비용보다 클 경우에만 이타적 행동이 선택된다.

즉, 자신이 직접 번식으로 하지 않더라도 혈연관계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길 수 있다면 혈연관계에 있는 다른 개체의 번식을 위해 자신의 번식은 포기하는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선택의 수준이 유전자이든 개체이든 생명체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물론 이 포괄적합도 이론도 혈연과는 무관한 이타적 행위에 대해서는 한계를 보이긴 한다. 하지만 혈연과는 무관한 이타적 행위가 인간사회에서는 물론 자연계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비혈연관계에서, 번식과 생존에 무관한 상황의 이타적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선택이 진화적으로 분명히 의미를 갖는다고 추론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