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용광로에서 탄생했다?
양자역학은 용광로에서 탄생했다?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7.16 16:08
  • 업데이트 2018.11.08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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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은 용광로에서 탄생했다?

용광로 출선구 앞의 제철 노동자들. "저 쇳물의 온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출처: 화인텍
용광로 출선구 앞의 제철 노동자들. "저 쇳물의 온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출처: 화인텍

우주관 오디세이-용광로에서 탄생한 양자역학 

원자와 양성자 전자 등 미시세계의 운동 양태를 설명하는 이론이 곧 양자역학입니다. 그런데 정작 양자역학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원자물리학과는 거리가 먼 열복사 문제, 정확하게 말해 흑체복사(黑體輻射, blackbody radiation) 문제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색깔을 보고 온도를 감으로 알아맞히다

흑체복사가 문제가 됐던 것은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9세기 중엽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독일에서는 제철업이 융성하던 시대였습니다. 용광로에 석탄과 철광석을 녹여서 철을 만드는데, 그 제품은 용광로의 온도에 민감하게 좌우됩니다. 기술자들은 용광로 내부 온도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 했지만 당시에는 첨단 온도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광로의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고 그 색깔만으로 온도를 짐작하는 장인의 기술에 의존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정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빛깔과 온도와의 정확한 관계를 정립할 필요성이 대두됐던 것입니다.

또 당시 유럽에서는 전자기이론이 완성되면서 이를 응용한 각종 전기산업도 발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거리 조명방식 즉, 가로등을 어떤 종류로 설치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고전적인 가스등과 막 개발된 전기등 중 어떤 것이 적합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어느 광원이 더 우수한지를 알아내는 문제로 귀착되었습니다.

가스등과 전기등의 효율성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빛이 얼마나 방출되는가는 필라멘트의 성질과 흘려보낸 전류의 양 등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광원을 직접 비교하는 대신에 이들 조건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상적인 빛’을 방출하는 이상적인 광원을 찾아 두 방식과 비교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독일은 이 목적을 위해 1887년 베를린 제국물리학공학연구소를 세웠다고 합니다.

위의 두 사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습니다. 물체가 내뿜는 빛의 에너지와 온도와의 관계를 규명하는 문제로 수렴되기 때문입니다. 빛 에너지와 온도 그리고 빛깔의 관계, 그리고 이상적인 광원이 무엇이며 이를 밝히는 것이 왜 중요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가열된 물체가 방출하는 빛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물체에 열을 가하면 처음엔 빨간색으로 달아오르다가 온도가 더 높아지면 흰색으로 변합니다. 대장간의 화로에 던져진 석탄은 좋은 예입니다. 석탄은 상온에서는 검은 빛을 띠는데, 100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검붉은 빛을 내다가 풀무질을 더 세게 해 화로의 온도를 2000도가량으로 올리면 새빨간 색으로 변합니다. 더욱 온도를 높이면 노란색에서 푸른색으로, 그리고 하얀색으로 바뀌지요. 이렇게 보면 물체의 온도와 그 물체가 내는 빛깔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깔이란 무엇일까요? 가열된 물체가 방출하는 전자기파가 곧 빛입니다. 이것은 태양이 핵융합반응에 의해 수소가 타면서 내는 햇빛과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다. 태양빛이나 이글거리는 장작불빛이나 용광로의 쇳물이 내는 빛이나 모두 근본적인 성격이 같다는 뜻입니다. 이들 빛은 곧 맥스웰이 규명한 전자기파와 같습니다. ‘빛’이란 일정 영역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를 말하는데, 우리 눈에 보인다 해서 가시광선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니까 빛깔은 전자기파의 파장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전자기파(빛)의 파장과 색깔과의 관계

이제 빛의 색깔과 전자기파의 파장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가시광선(빛)의 파장은 대략 400nm(1nm 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에서 700nm 정도입니다. 이때 가시광선의 색깔은 파장이 긴 쪽에서 짧은 쪽으로 갈수록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으로 변합니다. 그러니까 빨간색은 파장이 긴 700nm쯤 되고, 보라색은 파장이 짧은 400nm쯤 됩니다(이것은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정도이다.).

그리고 빨간색보다 파장이 긴 전자기파 영역은 적외선이라 부르고, 보라색보다 파장이 더 짧은 전자기파 영역은 자외선이라고 부릅니다. 빛은 파장이 짧을수록(진동수가 클수록) 에너지가 크고, 파장이 길수록(진동수가 작을수록) 에너지가 작습니다. 그러니까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라디오파 등은 에너지가 작고, 파장이 짧은 자외선 영역의 X선과 감마선은 에너지가 큽니다. 라디오파나 보통 태양빛을 쬐면 문제가 없지만 여름철 강한 자외선을 많이 쬐면 피부가 손상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보통 빛은 여러 색깔(파장)을 가진 전자기파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듯이 여러 색깔의 빛을 모두 합치면 하얗게 보입니다. 태양빛을 백색광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양빛 속에는 다양한 파장의 단색광들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프리즘을 이용하면 이 백색광을 파장별로 분리해낼 수 있는데, 이 작업 또는 나누어진 빛을 스펙트럼이라고 합니다. 스펙트럼 기술과 연구를 분광학이라고 하는데, 19세기 발달된 분광학은 양자론 탄생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붉은' 사과, 밤에는 무슨 색깔일까?

빛의 성질 가운데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백색광을 어떤 물체에 쪼였을 때 그 물체는 자신과 같은 색깔의 빛을 반사하고 나머지는 모두 흡수하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테면 장미꽃이 붉게 보이는 것은 햇빛(백색광) 중에서 붉은빛만 반사하고 나머지 빛은 모두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붉은 장미꽃에 노란색의 빛을 비춘다면 어떻게 보일까요? 답은 검은색입니다. 백색광의 경우 모든 색깔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붉은 빛을 반사할 수 있지만 노란색 빛은 장미꽃에 모두 흡수되어버리기 때문에 반사할 빛이 없어 검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이 낮에 다양한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태양빛이 다양한 색깔(다양한 파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 오는 날에는 어떻게 빛깔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날씨에도 태양빛이 비구름을 뚫고 약하긴 하지만 지구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태양빛을 완전히 차단한다면 지구는 색깔이 사라진 암흑천지로 변할 것입니다.

흑체는 모든 파장의 전자기파를 완전히 흡수하는 물체를 말합니다. 색깔이 있는 물체를 가열하면 모든 빛을 골고루 방출하지 않고 특정 파장의 빛을 많이 냅니다. 이에 비해 모든 빛을 흡수하는 흑체는 뜨거워지면 모든 파장의 빛을 골고루 방출하는 특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상적인 빛의 방출현상을 연구하는 데 적합합니다. 가열된 물체가 열이나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현상을 복사(輻射, radiation)라고 하는데, 흑체가 열이나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을 흑체복사라고 합니다.

흑체(blackbody)란? 흑체란 입사하는 모든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물체를 말합니다. 빛을 완전히 흡수하면 검게 보이기 때문에 '흑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들은 열평형 상태가 되면 빛을 내뿜습니다. 별이나 용광로, 석탄 등은 흑체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흑체란 무엇일까요? 콩알만 한 구멍이 뚫린 농구공 모양의 도자기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도자기 안은 깜깜해 볼 수 없습니다. 빛이 구멍으로 들어가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이 물체가 빛을 완전히 흡수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도자기 내부는 흑체의 개념을 충실히 구현한 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도자기 구멍을 닫고 특수한 장치를 이용해 도자기 내부를 가열해보겠습니다. 달구어진 도자기 벽은 내부로 빛을 방출하기도 하고 또 내부의 빛을 흡수하기도 합니다(단, 이 도자기 외벽은 열과 에너지 출입을 차단하도록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평형상태에 도달합니다. 즉, 벽이 방출하는 빛의 양과 흡수하는 빛의 양이 같아질 때를 평형상태라고 합니다. 이 때 도자기 내부는 빛으로 가득 찹니다.

그런데 평형에 도달한 도자기 내부에 있는 빛의 양은 벽의 재질과 관계없이(쇠로 만들어졌건 흙으로 만들어졌건 상관없이) 순전히 벽의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도자기 내부 벽면이 뜨거울수록 더 많은 빛이 빈 공간 속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도자기의 콩알구멍을 열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작은 구멍을 통해 도자기 내부에 가득 차 있던 빛의 일부가 나올 것입니다. 이때 도자기 내부의 공간을 ‘이상적인 광원’, 즉 흑체라 하고, 여기서 나오는 빛이야말로 ‘이상적인 빛’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흑체복사라고 합니다. 베를린 제국물리학공학연구소는 바로 이 같은 흑체복사의 세기 및 색깔과 온도와의 관계를 이론 및 실험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고 합니다.

흑체복사의 스펙트럼이 온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은 실험적인 탐구에 의해 분명히 밝혀진 사실입니다. 흑체 내부의 물질이나 모양, 크기와는 상관없고 오직 온도에만 관계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은 1859년 독일의 물리학자 키르히호프(Gustav Kirchhoff)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다만 경험적으로 물체에 열을 많이 가할수록 방출하는 빛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당시 제련 기술자들은 용광로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은 온도가 높아질수록 붉은색에서 노란색 푸른색 흰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험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용광로 혹은 흑체 내부의 온도가 얼마일 때 어떤 파장의 빛이 많이 복사되는가 하는 것이 조사되었습니다. 가로축을 복사되는 빛의 파장을, 세로축을 빛의 에너지로 잡아 ‘흑체복사 강도의 분포’ 그래프를 그리면 산 모양이 됩니다.

흑체 내부의 온도가 높을수록 ‘산’은 높아지고 산의 봉우리는 파장이 짧은 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독일의 물리학자 빈(Wilhelm Wien)이 실험적으로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빈 자신도 흑체복사 강도의 분포가 왜 이렇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현상이기 때문에 당시 밝혀진 복사 법칙에 근거해 간단하게 설명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물리학계가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골몰했는데, 이것이 바로 19세기 말 유럽 물리학계를 달군 흑체복사 문제입니다.

흑체복사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해답을 제시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레일리(John William Rayleigh)와 진즈(James Jeans)입니다. 이들은 맥스웰의 전자기이론과 볼츠만의 ‘에너지 등분배법칙’ 등 기존 물리학(고전물리학)에 입각하여 흑체복사의 강도와 파장과의 관계를 정식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식을 그래프로 그려 보니 실험 곡선과 맞지 않았습니다. 파장이 긴(진동수가 작은) 부분에서는 정확히 일치했으나 파장이 짧은(진동수가 큰) 쪽에서는 전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른바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으로 불리는 현상입니다.

복사에너지-온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찾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즉 실험적으로는 파장이 매우 짧은 빛은 거의 방출되지 않는데도 레일리-진즈의 이론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수식을 검토하고 또 해보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론은 고전물리학을 충실히 구현한 것으로 적어도 당시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틀린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론은 옳은데 실험(현실)과 맞지 않은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흑체복사 문제는 고전물리학의 한계를 폭로하고 새로운 물리학(양자역학)을 잉태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전물리학(맥스웰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열역학)을 충실히 구현한 레일리-진즈 이론이 봉착한 문제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도자기를 전기로 가열한(에너지가 1만 줄 Joule 소요되었다고 가정하자) 뒤 콩알만 한 뚜껑을 열었더니 복사파가 방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복사 에너지를 계산해보니 무한대였습니다! 세상에, 겨우 1만 줄(Joule)의 열을 가했는데, 무한대의 에너지가 방출된다니! 그 도자기는 무슨 에너지 화수분이라도 된단 말인가요? 아무리 화수분이라도 무한대의 물리량을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학 이론이나 상식적으로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당시 절대법칙으로 여겨졌던 맥스웰의 전자기이론과 볼츠만의 열역학을 적용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고전물리학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일까요?

(joule(줄)은 일의 단위로 1줄은 1뉴턴(기호 : N)의 힘으로 물체를 1m 옮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말한다. 1N은 1kg의 질량을 가진 물체를 매초 1m/s²(가속도 단위) 가속시키는 데 필요한 힘으로 정의된다.)

이제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세기 물리학자들은 잘못된 이론을 적용했던 것입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흑체에서 방사되는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며, 빛은 곧 파동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에 개발된 열역학이론에 의하면 뜨겁게 달궈진 도자기의 내벽에는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가 ‘무한개’ 존재합니다. 이들 전자기파는 ‘에너지 등분배 법칙’에 따라 파장(또는 진동수)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양은 도자기 내벽의 온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도자기 속의 주어진 온도에서 발생 가능한 전자기파들은 에너지의 측면에서 볼 때 모두가 동등한 관계라는 결론이 얻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도자기에서 방출되는 총에너지 양을 계산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에너지를 운반하는 전자기파가 무한개 있으면, 개개의 전자기파가 운반하는 에너지의 양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 총량은 무한대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요?

이 문제는 마침내 1900년 흑체로부터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극히 작은 ‘에너지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양자 가설(quantum hypothesis)’을 제시한 막스 플랑크에 의해 해결되었습니다.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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