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1921년도 노벨물리학상 업적은 ... 상대성이론 or 광양자 가설 ?
아인슈타인의 1921년도 노벨물리학상 업적은 ... 상대성이론 or 광양자 가설 ?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7.21 20:07
  • 업데이트 2018.11.13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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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광양자 가설'

 

미국의 물리학자 콤프턴(왼쪽)과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이 1905년 제기한 광양자 가설을 18년 후인 1923년 콤프턴이 X선-전자 산란 실험으로 증명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의 물리학자 콤프턴(왼쪽)과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이 1905년 제기한 광양자 가설을 18년 후인 1923년 콤프턴이 X선-전자 산란 실험으로 증명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 - 광양자 가설

20세기의 여명과 함께 벼락처럼 등장한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은 흑체복사 문제를 잘 해결해 주었지만 ‘도대체 양자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의문을 던져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 심지어 제안자인 플랑크 자신마저 양자 가설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젊은 물리학자만은 이를 진지하게 수용했습니다. 그가 바로 혁명적인 천재 앨버트 아인슈타인입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해 플랑크의 양자 가설은 탄생한 지 5년 만에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사에서 ‘기적의 해’로 불리는 1905년 양자 가설의 토대 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빛이 작은 알갱이(광자)라는 광양자 가설(light-quanta hypothesis)을 세워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의 메커니즘을 시원하게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에서 빛을 파동인 전자기파로 간주하고 ‘광속불변의 원리’를 공준으로 내세웠는데, 이번엔 그 전자기파(빛)를 입자로 가정한 것입니다. 가히 혁명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플랑크의 양자 가설과 함께 양자론의 싹이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의 탄생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양자론을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이제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가설로 수수께끼를 푼 광전효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흥미로운 물리적 현상 하나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빛이 금속판에 대전된 전자를 떼어내는 현상입니다. 이는 ‘광전효과’로 불렸습니다. 당시 통용되던 파동이론에 따르면 입사되는 빛의 파동이 금속 안의 전자를 흔들어서 금속판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빛을 비춘 후 전자를 묶고 있는 끈을 흔들어 끊어내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광전효과는 빛을 비추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빛을 파동으로 간주했을 때 광전효과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이뿐 아닙니다. 광전효과에 의해 밖으로 튀어나오는 전자들의 행태도 물리학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빛의 세기를 키우면(빛을 더 밝게, 혹은 더 많이 쪼이면) 그만큼 더 많은 양의 에너지가 전자에 전달되어 튀어나오는 전자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빛을 강하게 쪼여주면 표면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만 많아질 뿐 전자의 속도는 조금도 빨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진동수가 다른 빛을 금속 표면에 쪼였더니 그제야 전자의 속도가 변했습니다. 독일 물리학자 레나르트(Philipp Lenard)가 매우 정밀하게 수행한 실험 결과, 방출된 전자 에너지는 빛의 세기(빛의 양)와는 무관하며 빛의 색깔, 정확히 말해 빛의 진동수(파장)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진동수가 큰 빛을 쪼이면 튀어나오는 전자의 속도가 빨라지고, 진동수가 작은 빛을 쪼이면 튀어나오는 전자의 속도는 느려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쪼여준 빛의 진동수가 어느 임계값보다 작아지면, 아무리 빛을 많이(강하게) 쪼여도 전자는 금속 표면에서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쪼여준 빛의 강도가 아닌 진동수가 전자의 표면 탈출 여부를 좌우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쪼여준 빛의 진동수는 튀어나온 전자의 에너지(속도)를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빛(전자기파)을 파동으로 간주하는 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양자 가설에 영감을 얻어 빛 자체가 작은 알갱이(입자)로 구성돼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빛 입자 즉, 광자가 금속의 전자에 충격을 가해 곧바로 떼어낸다는 논리입니다. 그는 이렇게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광전효과가 일어나는 원인, 즉 물리적 메커니즘을 시원하게 설명했습니다.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가 금속 표면의 전자를 때리면 전자는 구속에서 풀려나 표면에서 이탈합니다. 이때, 튀어나온 전자의 에너지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요?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개개의 ‘광자가 갖고 있는 에너지의 양이 빛의 진동수에 비례한다’는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금속 표면에서 탈출하는 전자의 속도(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빛의 진동수에 의해 좌우되며, 빛의 세기는 탈출하는 전자의 총 개수에만 영향을 줍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논리를 통해 플랑크의 양자 가설이 전자기파의 근본적인 성질임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빛이 분명히 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광자라고 불리는 기본입자는 바로 빛 에너지의 최소단위, 즉 광양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동수가 큰 빛은 크고 무거운 구슬, 진동수가 작은 빛은 가볍고 작은 구슬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벽에 수십개의 풍선이 달려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작고 가벼운 구슬은 풍선을 흔들리게 할 수는 있겠지만 터뜨리지는 못합니다. 한꺼번에 수십 개를 던진다고 해도 많은 풍선을 흔들리게 할 뿐 하나도 터뜨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겁고 큰 구슬을 맞은 풍선은 터지게 될 것입니다. 풍선을 흔들리게 하는 데서 나아가 터지게 하려면 (던지는 속도가 일정하다는 전제 하에) 구슬이 어느 정도 크고 무거워야 하는 것입니다.

플랑크는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어떤 최소 단위의 알갱이 다발로 이루어졌다는 양자 가설을 도입해 흑체복사 문제를 풀었습니다. 플랑크는 그때 그 가설의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 그 가설의 근거가 분명해졌습니다. 빛 자체가 광자라는 아주 작은 에너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전자를 튀어 나오게 하는 것은 빛 알갱이의 개수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크기의 문제입니다. 빛의 진동수가 작은 전등불은 아무리 많이(혹은 오래) 쬐어도 피부가 타지 않지만 진동수가 큰 자외선은 조금만 쬐어도 피부가 타고 기미가 생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계승함은 물론 ‘왜 에너지가 최소 단위의 알갱이로 되어 있는지’에 대한 플랑크의 의문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광양자 가설로 광전효과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공로로 1921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1922년 11월에)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해 세계 여행 중인 관계로 시상식에는 불참했고, 이듬해인 1923년 7월 11일 스웨덴에서 노벨상 수상 기념강연을 했습니다. 물리학계의 급자탑인 상대성이론이 노벨상에서 제외된 데는 광전효과 발견자인 필립 레나르트의 방해공작설 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제시한 작은 빛 알갱이인 광양자는 후에 영국의 화학자 길버트 루이스에 의해 ‘광자(photon)’이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광자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을까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의 에너지 공식 E=hυ(υ는 진동수)에 따라 햇빛(가시광선) 알갱이 하나의 에너지를 계산해보면(플랑크 상수, 10⁻³⁴joule sec × 가시광선 진동수, 10¹⁴/sec) 대략 10⁻²⁰ joule입니다. 백열전구 옆에 서면 약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전구가 뿜어내는 초당 1000억×10억 개의 광자 에너지 때문입니다. 광자 1개의 에너지가 얼마나 작은지를 짐작할 만하지 않습니까?

아인슈타인의 영감 어린 분석은 미시물리학 연구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특히 광전효과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면서 빛의 입자설을 제기한 것은 물리학사에서 새로운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에 의해 빛은 전자기파, 즉 파동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이 빛을 전자기파의 하나인 파동으로 간주하고 광속불변의 원리를 공리로 삼아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안했습니다.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물리학자는 없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빛의 파동성을 확인한 주인공인 아인슈타인이 빛이 입자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빛의 입자성 확인 - 콤프턴 산란(효과)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이 발표된 지 18년 후인 1923년 빛이 광양자라는 입자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연구가 나왔습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물리학교수인 콤프턴(Arthur Compton)의 X선 산란(scattering) 실험이 그것입니다.

콤프턴은 진동수가 가시광선보다 훨씬 큰 X선을 전자에 쪼인 뒤 산란된 X선의 진동수를 조사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산란된 X선의 진동수가 쪼일 때보다 작아졌습니다. 빛(전자기파)의 일종인 X선을 파동으로 본다면 산란 전후에 파장과 진동수의 변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험에서는 X선의 진동수가 작아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당구대 위의 당구공을 상상해봅니다. 백구(흰공)로 적구(붉은공)을 칩니다. 큐대로 백구를 쳐 적구를 맞힌 순간을 상기해보겠습니다. 정지해 있던 적구는 움직이고, 대신 백구는 처음보다 움직임이 느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구의 운동에너지 일부가 적구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제 X선을 백구, 전자를 적구라고 가정합니다. X선을 정지해 있는 전자에 충돌시키면 전자는 튀어나갈 것이고, Χ선은 충돌 전보다 힘(에너지)이 줄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에너지 일부를 전자에게 전달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콤프턴이 실험에서 확인한 현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전자기파(빛)의 일종인 X선이 입자가 아니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콤프턴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전자와의 산란 후에 X선의 진동수가 산란 전에 비해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에너지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왜 진동수가 줄었느냐고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에 의하면 X선의 에너지는 진동수(ν)에 좌우됩니다. 그 값은 플랑크 상수(ℎ)와 진동수(ν)의 곱(E = ℎν)입니다. 따라서 X선의 에너지가 감소한다는 것은 바로 그 진동수가 작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진동수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당연히 전자에게 전달돼 전자의 운동에너지로 바뀌었습니다. 정밀한 실험을 해본 결과 처음 X선에서 줄어든 에너지와 전자가 얻은 운동에너지는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에너지보존법칙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콤프턴은 X선과 전자와의 충돌실험에서 나타나는 요상한 현상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이용해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아인슈타인이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이용해 광전효과의 메커니즘을 시원하게 규명한 것처럼 말입니다. 콤프턴의 X선 산란실험은 물리학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두 가지를 입증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빛(X선)이 입자라는 것, 다른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사실로 확인한 것입니다.

이 실험은 ‘콤프턴 산란(Compton Scattering)'이란 이름을 얻었고, 이 실험의 현상은 ‘콤프턴 효과 (Compton Effect)’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실험 이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가설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광양자의 존재가 실험으로 입증되면서 물리학자들은 빛이 입자의 성질( 입자성)도 띠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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