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2)‘상자 안의 시계’ 사고실험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2)‘상자 안의 시계’ 사고실험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09.17 21:41
  • 업데이트 2019.01.18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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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2>‘상자 안의 시계’ 사고실험

제6차 솔베이회의가 열린 1930년 브뤼셀을 걷고 있는 아인슈타인과 보어. 아인슈타인은 승리를 확신한 듯 여유로운데 비해 보어는 초조한 모습이다. 아인슈타인의 절친인 폴 에렌페스트가 찍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제6차 솔베이회의가 열린 1930년 브뤼셀을 걷고 있는 아인슈타인과 보어. 아인슈타인은 승리를 확신한 듯 여유로운데 비해 보어는 초조한 모습이다. 아인슈타인의 절친인 폴 에렌페스트가 찍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 -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라운드 2

1930년 제6차 솔베이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반박하는 두 번째 사고실험을 제시했습니다. 공격 대상은 이번에도 불확정성 원리였습니다. 물론 궁극정인 목적은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의 공격

아인슈타인은 이번에도 천재성이 번뜩이는 사고실험을 내놓았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은 상자를 상상합니다. 상자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데, 셔트를 통해 그 구멍을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셔트를 열고 닫는 시간 간격은 상자 안의 시계에 의해 제어됩니다. 상자는 극히 민감한 용수철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scale)의 눈금을 통해 질량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자에 빛을 가득 채우고 상자의 무게를 잰다. 광자 한 개가 상자에서 빠져나올 만큼의 짧은 시간 T 동안 셔트를 연 다음 닫는다. 그 다음 다시 상자의 무게를 잰다. 광자 한 개는 특정한 에너지(E = ℎν, 플랑크 상수 ℎ와 진동수 ν의 곱)를 갖는다. 그리고 E = mc² 공식에 따라 광자 한 개의 유효 질량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광자 한 개가 상자를 빠져나가면 상자의 무게는 그만큼 가벼워진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는 상자의 무게를 정확하게 잴 수 있다. 그러므로 광자의 질량, 즉 에너지 불확정성 ΔE는 0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생긴 데 걸린 시간의 불확정성 Δt는 T로 유한한 값이다. 그러므로 시간 불확정성과 에너지 불확정성의 곱(ΔE × Δt)은 0이다. 이 같은 결과는 상보적인 물리량인 에너지 변화와 시간 변화의 곱이 플랑크 상수값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만족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문제가 있다.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의 수식 ΔxΔp≥ℏ/2π는 수학적 조작을 조금 하면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의 수식 ΔEΔt≥ℏ/2π로 변환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논증을 통해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보어의 공동연구자인 레온 로젠펠트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보어에게 큰 엄청난 충격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처음엔 반박논리를 찾을 수 없어 무척 당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내내 보어는 극도로 불안해보였습니다. 보어는 물리학자들을 이리 저리 찾아다니며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요. 만약 아인슈타인이 옳다면 물리학은 끝장이에요.”라며 설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박논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대조적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조용하면서도 위풍당당하고, 약간 아이러니컬한 미소를 머금은 반면 보어는 매우 흥분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아인슈타인 곁을 종종걸음 치며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상황은 극적으로 역전되었습니다. 승자는 보어였습니다."

보어의 방어

보어는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해답 찾기에 골몰했습니다. 마침내 새벽 녘 영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 단초는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었습니다. 보어는 상자의 무게를 측정하는 과정을 명쾌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광자가 방출되는 시간과 광자 방출 전후의 상자 무게를 정확하게 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보어는 바로 그 대목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자 안의 시계’ 사고실험을 그림으로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논증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1930년 제6차 솔베이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이 보어에게 제기한  '상자 안 시계' 사고실험을 분석해 보어가 그린 그림(왼쪽). 오른쪽은 이를 한층 이해하기 쉽게 간략하게 그린 도해.
1930년 제6차 솔베이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이 보어에게 제기한  '상자 안 시계' 사고실험을 분석해 보어가 그린 그림(왼쪽). 오른쪽은 이를 한층 이해하기 쉽게 간략하게 그린 도해.

우리는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상자의 무게를 지시하는 계기판 바늘의 위치 불확정성 Δy와 이의 상보적인 물리량인 상자의 운동량 불확정성 Δp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Δp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 상자의 질량을 측정해야 하는데 그 정확도의 한계, 즉 불확정성 Δm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Δm×g×T>Δp의 관계가 성립합니다(g는 중력상수).

이쯤에서 보어의 결정타가 나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장은 시간의 흐름 속도를 변화시킵니다. 상자 안의 광자가 방출되고 나면 상자의 무게가 줄게 됩니다. 상자가 중력장 내에 있고 상자의 용수철이 움직이므로(눈금이 변화하므로) 상자 안의 시계바늘 속도도 변합니다다. Δy가 시간 간격 불확정성 ΔT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상자의 운동량 불확정성 Δp는 에너지 불확정성 ΔE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Δm×g×T>Δp에서 ΔE×ΔT>ℏ라는 수식을 유도해낼 수 있습니다. 즉 불확정성 원리가 성립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논증은 오류입니다.

이상과 같은 보어의 논증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일정 시간 간격 동안 상자의 에너지 변화를 정확하게 잴 수 있다고 했으나, 보어는 광자가 방출되면(에너지 변화) 중력장의 변화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시간 간격마저 변화하므로 여전히 에너지와 시간이라는 상보적인 물리량 사이에 불확정성 원리가 성립한다고 논증한 것입니다. 상자의 무게를 정확하게 재려면, 즉 계기판의 눈금 Δy의 불확정성을 작게 하려면 광자 한 개가 방출되는 시간 간격 T가 길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논증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막아냈고, 아인슈타인은 패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이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론이 완전하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로 더욱 정교한 논증을 개발할 결심을 했을 따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로부터 5년 뒤에 1935년 아인슈타인은 미국에서 그의 동료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양자론을 공격하는 강력한 논증(EPR)을 발표했습니다.

※참고문헌 : ♠Murdoch, D. (1990), Niels Bohr's Philosophy of Phys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7~159P
♠Spangenburg Ray, Moser Dianne K. (1995), Niels Bohr - Gentle Genius of Denmark, NY : Facts on File, 56~68P
♠Whitaker Andrew (1996), Einstein, Bohr and the Quantum Dilemm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17~219P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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