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3)EPR 논증 ②EPR 논문 요지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3)EPR 논증 ②EPR 논문 요지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10.24 23:55
  • 업데이트 2019.01.18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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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3> EPR 논증 ②EPR 논문 요지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논증하려고 시도한 EPR 논문의 저자들. 왼쪽부터 아인슈타인, 보리스 포돌스키, 나단 로젠. 이 논문은 존 휠러의 평가를 빌면, "지식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논증하려고 시도한 EPR 논문의 저자들. 왼쪽부터 아인슈타인, 보리스 포돌스키, 나단 로젠. 이 논문은 존 휠러의 평가를 빌면, "지식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 - EPR 논문 요지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Albert Einstein, Boris Podolsky, Nathan Rosen: EPR)은 양자역학의 이론적 예견치가 실험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자역학 자체는 미시세계를 서술하는 궁극적인 이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양자역학이 틀렸다기보다 불완전하다는 점을 논증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EPR은 모든 입자들이 임의의 순간에 명확한 위치와 속도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한계가 아니라 양자역학 자체의 한계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모든 입자들이 명확한 위치와 속도를 갖고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는 양자역학은 우주의 일부만을 서술하는 불완전한 이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양자역학은 ‘엄연히 존재하는 실재’를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이론이며, 기껏해야 ‘완전한 이론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디딤돌’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 EPR의 주장이었습니다.

EPR은 물리학과 철학에서 온전하게 수용돼 온 ‘실재성(reality)’과 ‘국소성(locality)’의 개념이 물리적 실재에 관한 양자역학적 기술과 양립가능하지 않음을 논증하였습니다. 즉 양자역학은 현상을 잘 설명하긴 하지만 실재를 완전하게 기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EPR의 논증은 다음과 같은 완전성 기준, 실재성 기준, 국소성의 원리 등 세 가지 기준과 원리를 전제로 합니다.

(1)특정 물리이론이 완전하다면, 그 이론은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의 각 요소에 대응하는 부분(counterpart)을 가져야 한다.

(2)특정 물리계(대상)를 어떤 방식으로든 교란시키지 않고 그 계에 속하는 특정 물리량의 값을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면, 이 물리량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재의 한 요소가 존재한다.

(3)한 물리계에 대한 측정이 이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물리계에 속한 물리적 실재의 요소, 혹은 이의 실제 상태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도 가할 수 없다.

EPR은 이들 가정을 통해 양자역학이 불완전한 이론이란 것을 논증하기 위해 삼단논법으로 진행시켰습니다.

(대전제)만약 물리 이론이 완전하다면, 그리고 만약 위치(x)와 운동량(p)이 물리적 실재라면, 이 이론에는 이들 요소에 대한 완전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소전제)양자역학에는 이들 물리적 실재에 대한 기술이 없다.

(결론)그러므로 양자역학은 완전한 이론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공격 포인트는 앞의 두 논쟁과 마찬가지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였습니다. 양자역학은 불확정성이 ‘측정방법에 상관없이 원래 물체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한계’라고 선언하였으나, EPR은 불확정성의 근원을 원리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마침내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모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역시 사고실험인데 내용은 원리적으로 간단합니다. 이제부터 EPR이 제기한 사고실험을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발생하는 물리적 현상 가운데 정지해 있던 한 입자가 두 개의 입자로 붕괴(decay)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운동량 보존법칙에 의해 두 입자는 반드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며, 그들의 운동량의 절대값은 꼭 같습니다(두 입자는 질량이 정확하게 반분되고, 속도는 크기는 같고 방향이 반대입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 한 입자의 위치를 측정해서 알아내면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 다른 입자(이 입자의 짝)의 위치도 자동적으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한 입자의 상보적인 물리량인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EPR 논증의 요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앞서 두 번의 논쟁(라운드1, 라운드2)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공격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표준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는 우리가 관측하기 전에는 ‘정확한 값’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면 그 측정 행위가 운동량의 변화를 일으켜 정확한 운동량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앞의 두 논쟁에서 확인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은 패배를 자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EPR 논증은 한층 더 정교했습니다.

이제 EPR 논증을 따라가 봅니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정지한 입자가 두 아기 입자(S₁, S₂)로 붕괴하는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S₁의 운동량을 측정하면 우리는 S₂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S₂의 운동량의 정확한 값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EPR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소성을 공리로 삼았습니다.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물체는 절대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EPR 논문에서 국소성은 핵심 전제입니다. 이 공리에 따라 S₁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행위가 입자 S₂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EPR에 따르면 우리는 입자 S₁ 측정을 통해 S₂를 측정하지 않고도 입자 S₂가 정확한 운동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또 EPR의 논증에 따르면 우리는 이들 입자의 위치에 대해서도 꼭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S₁을 측정해 S₂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냅니다. 국소성의 원리에 의해 이 관측 행위는 입자 S₂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S₂의 위치 값은 S₁을 측정하기 전에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이 EPR의 주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EPR의 결론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고실험에 의하면 어떤 측정을 하기 전에 이미 입자 S₂는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입자는 물리적 실재로서 두 가지 물리량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론은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이들 두 가지 값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불완전한 이론이다.’ 이것이 바로 EPR 논문의 결론입니다.

보옴이 각색한 EPR 논증

EPR의 논문은 강력하면서도 원리적으로 간단합니다. 그러나 막상 이 이론을 실험에 적용할 경우 기술적인 난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쌍입자 S₁, S₂의 운동량 고유함수(운동량을 나타내는 파동함수)가 원리적으로 온 우주에 퍼져 있게 되므로 공리로 내세운 국소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보옴이 EPR 논증을 위치와 운동량 대신에 스핀을 도입해 각색했습니다.

EPR의 논증을 스핀에 적용하면 ‘입자는 임의의 축에 대한 명확한 스핀 값을 갖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치환됩니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두 가지 이상의 스핀 성분을 동시에 결정할 수 없습니다. 스핀은 각 축에 대해 세 가지 성분(x, y, z 방향 성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만약 x 성분의 스핀을 정확하게 결정하고 나면 y, z성분의 스핀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이는 위치와 운동량의 두 가지 상보적인 물리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과 개념적으로 같습니다.).

불확정성을 스핀에 적용할 경우, 비록 정확하게 결정할 수는 없더라도 ‘임의의 축에 대한 모든 스핀 성분’이라는 속성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아니면 결정할 수 없는 상태 자체가 입자의 궁극적인 실재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입자는 ‘어떤 스핀 성분을 가질 확률’로 존재하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스핀을 관측하면 그때 비로소 명확한 하나의 스핀 값을 나타낸다는 것이 양자론의 표준해석입니다. 반면 EPR은 입자는 원래부터 정확한 스핀 값을 속성처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보옴이 스핀에 적용한 EPR의 논증을 알아보겠습니다. 보옴은 스핀이 0인 입자가 스핀 -1/2, 1/2인 두 입자 S₁, S₂로 붕괴해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 사고실험을 제시했습니다. 스핀각운동량 보존법칙에 따라 각 성분(x, y, z 성분)의 총합은 원래 입자의 상태인 0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입자 S₁의 z방향의 스핀 성분을 측정한 값이 1/2이었다면 S₁과 쌍입자인 S₂의 z방향 스핀은 즉각 -1/2임을 알게 됩니다. S₁의 z방향 스핀값이 -1/2이었다면 S₂의 스핀값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1/2입니다. 왜냐하면 스핀의 합이 0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소성의 원리에 의해 입자 S₁에 대한 측정이 입자 S₂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S₂의 스핀은 S₁을 측정하기 전에 이미 고유한 값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게 EPR의 주장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S₂의 x성분 스핀과 y성분 스핀도 S₁을 측정하기 전의 정확한 값을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즉, 입자 S₂는 세 가지 스핀 성분의 정확한 값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세 성분의 스핀 중 어느 한 성분의 스핀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나머지 두 성분의 스핀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은 불완전한 이론이라는 주장입니다.

보옴의 논리는 앞서 설명한 EPR의 원리와 꼭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옴의 각색본은 기술적인 면에서 EPR보다 훨씬 간편해 물리학자들은 흔히 이를 이용해왔습니다. 특히 EPR 논증을 확인하는 존 벨(John Stewart Bell)의 논문과 50년 후에 나온 알랭 아스페(Alain Aspect)의 실험은 모두 보옴의 각색본을 사용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보옴의 각색본을 확인하고는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물리학사, 나아가 인류 지성사의 위대한 논쟁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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