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론적 우주관 ... ③비국소성, 관계론적 우주관
양자론적 우주관 ... ③비국소성, 관계론적 우주관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11.05 16:25
  • 업데이트 2018.05.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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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론적 우주관 ... ③비국소성, 관계론적 우주관

과학철학자 막스 야머(왼쪽)과 유기체 철학을 창시한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출처: 위키디피아,하버드대학 아카이브.

양자론이 밝힌 사실 중에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우주가 국소성을 벗어나 비국소성을 갖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국소성(locality)이란 한 공간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이와 분리된 다른 공간적 영역에서 일어난 작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비국소성(non-locality)은 위의 국소성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양자론은 국소성의 위배를 전제로 합니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관측은 전 우주에 걸쳐 있는 파동함수를 순간적으로 붕괴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국소성의 위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빛보다 빠르게 정보가 전달될 수 없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볼 때 국소성을 위반하는 양자역학의 기술 방식인 파동함수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EPR 논쟁에 대한 벨의 부등식과 아스페의 실험은 양자론의 비국소성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공간의 새로운 특성

우주가 비국소적인 성질을 가졌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위반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론은 이를 공간의 새로운 특성으로 이해합니다.

양자역학에서는 관측 과정을 관측 대상과 분리시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EPR의 실험 결과는 모순이 아니며, 자연 자체의 한 모습일 뿐이라고 봅니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관측 입자와 관측자는 분리될 수 없는 동일 체계입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 대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자기 동일성을 갖는 시공간 속에서의 독자적인 개별 입자의 의미를 거부합니다. 과거에 서로 연관되어 있던 물체들은 지금 우주의 반대편에 있다 해도 양자적으로 얽힌 ‘한 몸’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이런 물체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획일적인 무작위성’을 갖습니다. 즉, 이들의 특성을 관측하면 매번 다른 값이 얻어지지만 이들끼리는 항상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공간의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게 양자론의 해석입니다. 고전역학 및 상대성이론에서 공간의 핵심적인 특성은 하나의 물체와 다른 물체를 각종 영향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우주의 반대편에 있는 두 물체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양자적 연결고리는 두 물체를 하나로 묶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공간은 이렇게 상호 연관된 물체를 구별하지 않으며,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두 물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양자적 연결고리는 결코 그들 사이에 놓인 공간 때문에 약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양자론에 의해 새롭게 제기된 공간의 개념입니다.

공간의 비국소성이 확인됨에 따라 “우리를 포함한 우주 전체는 어떤 식으로든 얽힌 관계가 아닐까.”하고 상상하는 것은 전혀 허황한 게 아닙니다. 하나의 칼슘원자에서 방출된 두 개의 광자처럼, 우주에 산재하는 모든 만물은 태초에 한 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따라서 우주의 근원까지 추적해 들어간다면 모든 만물은 양자적으로 얽혀 있다는 양자론의 주장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빅뱅에 의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물질이 한곳에서 쏟아져 나왔으므로, 지금 우리의 눈에 다른 지점으로 보이는 ‘공간’도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동일한 지점이었다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관계론적 우주관

지금까지 양자론에서는 고전역학과 상대성이론의 결정론, 실재론 그리고 국소성의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비결정론, 비실재론). 양자론의 출현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과학사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그렇다면 양자론이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우주관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로서 고전적 양자론의 교과서를 완성한 막스 야머(Max Jammer)는 닐스 보어의 양자론의 우주관을 관계성과 전체성으로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관계성이란 관찰자 및 관측 장치와 관측 대상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이 전체성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주는 비국소적이며 양자적으로 연결된 단일체입니다.

보옴과 벨도 양자론을 통해 전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 우주는 부분을 전체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망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양자론의 우주관이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유기체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는 과학철학자 최종덕의 연구는 흥미롭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자연은 과정과 관계의 망(nexus)일 뿐.”이라며 자연을 관계망의 총체로 정의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우리의 자연을 사건들의 상호 관계적 구조로 본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심지어 이런 말도 했습니다.

“존재하기 위하여 오직 그 자신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신일지라도 없다(There is no entity, not even God, which requires nothing but itself in order to exist.).”

이처럼 과정과 관계 속에서 우주와 인간을 이해하려는 사유체계가 유기체 철학입니다. 관계가 진정한 실재이며 대상은 추상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양자론의 관계성 혹은 전체성과 맥을 같이합니다.

보어의 상보성 원리 역시 유기체적 패러다임으로 연결됩니다. 보어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그에 대한 과학 기술의 관계에 상보성을 적용시켰습니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 대한 완전한 물리적 이해를 위해서는 정교한 실험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실험을 통해 그 유기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생세포를 관찰하기 위해 그것을 떼어내 현미경 앞에 갖다 놓으면 그 세포는 이미 생세포가 아니라 죽은 세포일 뿐입니다. 이처럼 고립된 단위체가 아니라 전 체계의 관계 요소로서 이해될 수 있는 실재의 속성을 담은 실재론을 전체론적 실재론(holistic realism)이라 부릅니다.

결국 양자론은 관계성과 전체성을 본질로 하여 우주를 하나의 관계망 속에서 파악하는 관계론적 우주관과 자연관을 제시합니다. 이는 고전역학에 제시하는 기계론적 자연관·우주관과 대비됩니다. 다시 말해 우주는 부품들로 분해하거나 조립할 수 있는 거대한 시계라기보다 모든 부분이 전체와 분리 불가능한 거대한 유기체적 관계망의 총체라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관계론적 우주관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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