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옷에 따르다
술을 옷에 따르다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7.11.20 19:48
  • 업데이트 2017.1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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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옷에 따르다

혜원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 28.2×35.6㎝ 지본채색. ⓒ 간송미술관

어느 대가大家에서 큰 잔치를 벌였다. 원근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한 선비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잔칫집을 찾았다. 그러나 선비의 행색을 훑어보던 문지기가, 당신 같은 거지는 들여보낼 수 없다며 대문을 막아섰다.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한 선비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해 한옆에 비켜서서 문지기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그는 의복을 근사하게 입은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허리를 굽실거리며 안으로 안내했다. 선비는 집으로 돌아와 의관을 깨끗하게 갖추어 입고 다시 문지기 앞에 섰다. 문지기는 누구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깍듯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선비는 안내 받은 자리에 앉았다. 큰 잔칫상이 좁을 정도로 그득한 산해진미를 한 번 둘러보고는 정좌를 했다. 그리고 술잔을 채우고는, 높이 들어 쭈르르 옷에다 술을 부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술을 왜 옷에다 따르십니까?”

선비가 대답했다.

“내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오로지 이 옷 덕분이라서 옷에다 먼저 한 잔 따랐습니다. 자, 많이들 드십시오.”

벌써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간다. 귀향이 늦은 탓이다. 승용차를 가질 형편이 못 돼 기차 시간에 대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구와 모처럼 만나 밤 9시경 늦은 저녁밥에 술을 곁들였다. 고향 친구와 만나면 무슨 표차로운 내용은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섬진강보다 길어진다.

수풀 속의 꿩은 사냥개가 몰아내고 오장의 말은 술이 내몬다. 또한 술은 본능의 강력한 우군이다. 뿐 아니라 악마의 유혹을 감미롭게 합리화한다. 대말 타고 놀던 고우古友와 모처럼 정담을 수작할 때, 그때 그 추억의 ‘뽀얀 담배 연기’가 빠져서야! 억누르고 억눌러서 금연 작심 5일째, 도저히 흡연욕구를 참을 수가 없다. 외려 작은 ‘건강 배려’는 큰 ‘추억 젖기’를 방해하는 거침돌일 뿐이다.

이 시각 불 켜진 곳은 지구대 앞 편의점뿐이다. 이삼백 보 발품을 팔아야 한다. 고향 선후배를 의식해 넥타이를 고쳐 매고 뒤축 꺾어 신은 구두를 바로 하고 점잖게 걸어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사위가 어둔 만큼 실내는 더욱 환하다. 의외로 손님이 몇몇 있었다. 담배를 주문하고 다른 사람들의 계산을 기다릴 동안 시선 둘 곳이 마땅찮아 뒤로 돌아다봤다. 상품진열대 옆으로 의자가 네 개씩 달린 테이블이 두 쌍 있다.

두 사람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뒤쪽에 앉은 젊은이는 먹는 데 열심이었다.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앞쪽의 중년은 면발을 고기 씹듯 아래위 입술을 다문 채로 아래턱만 움직였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머리칼도 가지런했다. 시선은 앞으로 두었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 눈길은 아니었다. 생각이 많은 듯했다.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께에 ‘무슨 무슨 택배’라를 글씨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서늘한 감정이 밀려왔다. 새벽 두 시, 편의점, 컵라면, 택배기사. 이 말들의 조합은 각 단어들이 지닌 의미의 합체가 아닌, 한겨울 칼바람보다 매서운 세상살이를 함의한다. 그 함의가 서늘해진 가슴에 예리한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러왔다.

흠칫, 그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렸다. 겸연쩍은 듯 엉거주춤 그가 일어서며 인사를 하려 했기 때문이다. 거스름돈 5500백 원을 받고 서둘러 편의점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은 이삼백 보였지만 상념은 이삼백 리였다. 분명 그도 나도 시선과 마음속의 생각은 따로 놀았다. 그러나 그는 무심결에서나마 타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래 머물자 상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감색 양복의 신사가 눈에 잡혔겠지.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수배하기 위해 헝클어진 기억의 가닥들을 정리하는 수고를 했을 것이다.

마음이 시리다. 왤까? 그는 왜 내게 인사하려고 엉거주춤 일어나려 했을까? 대개의 경우 이성은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시린 이유를 찬찬히 따져볼 성찰적 이성이 필요하다. 별 애쓰지 않아도 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마 내 4~5회 후배였을 것이다. 이 정도 연차가 나면 고향 작은 읍에서는 선배는 몰라봐도 후배는 알아본다. 하여 엉킨 기억의 갈피를 헤쳐서 선배를 알아보고 알은 척을 하려 했을 것이다. 한데 선배는 목을 외로 꼬아버렸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후볐을 것이다. 껍데기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더러운 세상, 하며 그는 컵라면 다음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케케묵은 금언을 나이 들면서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어떤 종류의 노동이건 노동은 고귀하다. 힘들수록 힘든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노동가치설을 우직하게 믿는 골샌님이다.

그러나 어울려 사는 세상살이에서 타협 또한 필요하다. 새벽 두 시, 편의점, 컵라면, 택배 기사. 모르면 몰라도 별 자랑하고픈 모습은 아니다. 하여 내가 못 본 척함은 그가 숨기고픈 일상을 묻어두고자 한 내 본능적 배려였을 뿐이었다.

시린 마음은 시린 추억을 끄집어 올린다.

학창 시절 한때 막역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명절 때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멀리서라도 찾아가면 말은 반가워하는데 말투는 영 살갑지 않았다. 그날 기분 탓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거듭되니 작정을 하고 한날은 단도직입으로 따져 물었다.

“네가 예전에 엄마를 보고도 못 본 척했다며. 엄마가 되게 서운해 하더라. 시골에서는 드물게 흰 얼굴에 양복 쏙 빼 입은 아들 친구와 손이라도 잡고 싶었는데, 너는 모른 척하며 차에 올라가 버렸다며. 몸뻬 입은 촌뜨기라 무시당했다고 울먹이며 다시는 상종 말라 하더라.”

아뿔싸, 이렇게 오해를 살 수도 있구나. 친구 말대로 모친을 알은 체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친구는 부농은 아니었으나 중농은 되었다. 방학 때 밤늦게 술내를 풀풀 풍기면서 찾아가도 모친은 정성스레 따뜻한 밥상을 봐줬다. 자식과 그 친구를 섬기듯 대우했다.

한데 몇 다리 건너들은 얘기로 친구 모친이 차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다는 거였다. 억척스런 농부가 논밭을 떠나 임노동을 하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엔 그랬다. 친구의 가정일 내막이야 알 리 없었다. 다만 ‘몸뻬 입은 식당 종업원’으로 전락한 모습을 자식 친구에게 들키는 걸 창피해 하지 않을까, 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여 내 깜냥으로는 스치는 모친의 눈길을 못 본 척하는 것이 모친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지 않는 길이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 딴에는 모친의 사정을 헤아려 그 스치는 눈길을 보고도 못 본 척한 것이다.

“이 친구야, 담배 사러 가서 담배를 만들어 오나?”

“응, 좀 늦었지? 큰 형님 생각 좀 하다가...”

이 친구에게 이삼 백 리 상념을 풀어놓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상념의 말미는 큰 형님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큰 형님은 국졸 학력에 나보다 13살 위다. 농기계가 없던 시절, 그의 지게질이 내 학비의 밑천이었다. 고등학교 방학 때, 큰 형님과 함께 들일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신작로에서 관광버스를 만났다. 형님이 움찔, 걸음을 늦췄다. 형님 얼굴을 묻는 눈길로 바라봤다.

“일반 버스들은 다 헌털뱅이 차들이고, 손님들도 제나 내나 똑같겠지. 그래서 부끄럽지 않아, 이 작업복이. 그런데 저런 관광버스는 고급이거든. 아마 탄 사람들도 꽤 잘 입은 사람들일 거야. 그래서 저런 차들을 보면 내 꼬락서니가 들킨 것 같아 주눅이 들어.”

“자 친구야, 한 잔 하자.” 잔을 높이 들었다. 술잔을 친구는 입으로 가져갔고, 나는 가슴 정중앙의 넥타이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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