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어회 한 접시와 식은 밥 한 덩이
광어회 한 접시와 식은 밥 한 덩이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7.12.01 14:40
  • 업데이트 2017.1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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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회 한 접시와 식은 밥 한 덩이

성철 스님 성철 스님. 출처: 소원사 홈페이지.

성철스님은 6·25전쟁 후 마산 근방 성주사라는 절에서 서너 달 머문 적이 있었다. 거기서 성철의 시선을 끈 것은 법당 위의 큰 간판이었다. ‘법당 중창 시주 윤00’라고 굉장히 크게 써져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마산에 ‘윤 약국’이라고 있는데 그 사람은 신심이 돈독하여 법당을 모두 중수했다고 했다. 성철이 다른 말은 안 하고, “그 사람이 언제 오는가?”고 물으니, “스님께서 오신 줄 알면 내일이라도 인사하러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 이튿날 그가 왔다.

“소문 들으니 당신 퍽 신심 있다고 다 칭찬하던데, 나는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여기 와서 보니 당신 신심 있는 줄 알겠어. 법당 위에 보니 돈을 많이 내서 중창했다고 그 표가 얹혀 있는데 그것으로 당신 신심 있다는 것 증명되는 것 아니겠어.”

성철은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윤 약국’은 무척 기분이 좋은 듯 했다.

“그런데 간판 붙이는 위치가 잘못된 것 같애.” “왜 그렇습니까?”

“간판이란 남 많이 보기 위해 한 것인데, 이 산중에 붙여두어야 몇 사람이나 와서 보겠어? 그러니 저 간판을 떼어서 마산 역 앞 광장에 갖다 세우자고. 그러면 몇 천만 명이 보고서, ‘마산 윤00이라는 사람이 법당을 고쳤어’ 하고 칭찬해 줄 것 아닌가. 이 산중에 붙여두고 구구하게 이럴 것 무엇 있어. 내일이라도 당장 옮기자고.”

“아이구 스님,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겠어? 당신이 참으로 신심에서 돈 냈어? 저 간판 얻으려 돈 낸 것 아니야?”

성철은 일찍이 본 바가 있었다. 어떤 신도들은 절에 시주할 때, 비석을 세워달라는 등의 조건을 내걸곤 한다. 그래서 절에서는 비석을 먼저 세워준다. 그러면 돈을 내지 않고 비만 떼어먹어 버린다.

“간판 내걸어 자랑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신심이야. 지금이라도 저 간판 떼어서 마산 역으로 싣고 가자구.”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몰라서 그랬다구? 몰라서 그런 것이야 허물 있나, 고치면 되지. 그럼 이왕 잘못된 것을 어떻게 해야지?”

윤 약국은 자기 손으로 그 간판을 떼어내려 탕탕 부수어 부엌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손님, 쓰신 수건은 손님이 좀 가져 나와 주시죠.” 한 달여 벼르고 벼르던 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묵히고 묵힌 지적이었다. 이 손님은 60살 전후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허우대가 건장하다. 얼굴도 불독 상이다. 한 일자로 꾹 다문 입매는 ‘한 성질’을 직감케 한다.

“아니, 내가 여기 몇 년씩이나 단골인데, 아침부터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도대체 단골을 어떻게 보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댓바람에 삿대질을 곁들이며 눈망울을 사납게 굴리며 호령질이다. 일전에 남탕을 관리하는 ‘세신사’洗身師(때밀이)가 우리 호텔 사우나를 이용하는 손님들 가운데 ‘진상 탑 10’을 꼽아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세신사는 관리팀장님이 어떻게든 ‘정리’를 좀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진상질하는 몇 손님 때문에 이 호텔을 뜨고 싶다고까지 했다. 이 손님은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진상이다. 내 자신도 이 손님이 사우나를 이용하는 행태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 하여 그는 나를 잘 모를지언정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는 탈의실에 비치해 둔 수건을 탕으로 들어갈 때 꼭 두 장을 챙겨간다. 한 장은 어깨에 걸치고 한 장은 목욕탕 안장의자에 깔고 앉는다. 일반 손님들은 탕에서 탈의실로 나와 한두 장으로 몸을 닦는다. 그는 탈의실로 나와서도 두세 장을 쓴다. 쓴 수건을 수거 카트에라도 담으면 좋으련만 평상이든지 거울 앞이든지 그냥 내던지듯 버려둔다. 더구나 탕으로 가져들어간 수건을 가져나오는 법도 없다.

“이 사람아, 이놈 저놈 아무나 앉는 의자에 수건을 깔고 앉아야지, 어떻게 그냥 앉나?” “그러면 대중탕을 이용하면 안 되지요. 개인전용 목욕탕을 이용하세요.”

나도 결김에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세신사의 불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 번...’ 하고 속타점해 둔 탓이리라. 마침 세신사가 결근이어서 남탕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세칭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서비스업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기본 선은 있다. 목욕탕 안장의자에 수건을 깔고 앉는 것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는 범위에 든다. 대중탕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유달리 결벽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러나 남과는 유별나게 깔고 앉은 수건을 탕에서 갖고나와 탈의실의 수거 카트에 넣는 정도의 수고는 결벽증 소유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단골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말이야. 어디 사우나가 여기뿐인 줄 알아.” 이렇게 말하고 사우나를 황망히 빠져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에 또 한 사람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십 수 년 전 ‘낙원쌈밥’ 집을 나서던 선배의 모습이다. 그때는 교사였다. 군자 말년에 배추 씨 장사라 했던가. 사직을 하고 이런저런 세파에 떠밀려 지금은 거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온천이 있는 호텔에서 잡무를 하고 있는 처지이다.

학교 근처 국민시장 한 모퉁이에 테이블 세 개만 놓여있는 자그만 식당이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외관과는 달리 음식이 아주 깔끔했다. 무엇보다도 보쌈 맛은 일품이었다. 덤으로 주인아줌마가 퍽이나 친절하고 손이 컸다. 저러다 남는 게 있을까, 되레 손님인 내가 걱정할 정도로 야채며 반찬을 듬뿍듬뿍 줬다. 맛도 있기도 했지만 마음결이 고마워 동료, 선배 교사와 자주 이용했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가 한 5년 만에 다시 찾은 그 식당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신흥하는 ‘먹자골목’에 번듯한 3층짜리 건물에 ‘낙원쌈밥’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단체 손님이 들었는지 식당 안은 시끌벅적하고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 일행도 다섯이나 되었다.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이 와중에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서빙을 주관하랴 주방에 지시하랴 분주해 하는 주인아줌마는 우리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서성이는 우리 옆을 한 번 스쳐지나가긴 했다. 에이 그냥 나가자, 며 선배가 돌아섰다. 내가 팔을 잡았다. 선배는 내 손을 뿌리치며, 사장님 우리 가요, 라고 골부림하듯 크게 고함을 치고 문을 나서버렸다.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머물지도 나가지도 못해 엉거주춤해 있는 나를 알아본 ‘사장님’은 미안하다면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딱 그 짝이야. 시장통 골목에 있을 때 우리가 갈아줘서 이만큼 큰 것도 모르고.”

식사 후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선배가 아직도 서운한지 분한지 내뱉은 일성이었다. 나는 선배의 얼굴을 빤히 봤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그 속내를 읽어내고 싶었다. 잔가지를 떨어버리고 줄기만 가지고 이야기하자. 이익의 합치일 뿐이다. 손님은 자신의 취향과 처지에 가장 합당한 식당을 이용할 뿐이다. 그 식당, 식당 주인을 위해 그 식당의 단골이 되는 법이란 없다.

조카 결혼식에 참석 차 고향에 들렀다가 모처럼 친구를 찾았다. 그렇잖아도 옹색한 살림살이에 몸까지 안 좋다고 들어서였다. 차에 태웠다. 드라이브나 시켜줄 요량이었다. 한 시간가량 이곳저곳 누비다가 광양시 다압면 망덕포구에 이르렀다. 회라도 한 접시 먹이고 싶었다. 차를 대고 길가에 내걸린 메뉴판을 보았다.

‘광어회(大) 120,000원. 광어회(中) 100,000원. 광어회(小) 80,000원’

더럭 뭔가 짚이는 게 있다. 더구나 80,000원이면 내 하루 일당이다. 회가 고픈 것도 아니다. 친구는 더 고픈 게 있을 것이다. 다시 차를 몰아 중국집을 찾았다.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친구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나도 맛있게 먹고 카운터에 만 원을 지불하고 봉투를 한 장 얻었다. 그리고 7만 원을 넣어 돌아오는 길에 친구 주머니에 몰래 슬쩍 찔러 넣었다.

“길가에 병들어 거의 죽어가는 강아지가 배가 고파 낑낑댈 때, 조그마한 식은 밥 덩어리 하나를 그 강아지에게 주는 것이 부처님께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무수 백 천 만 배 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이 크다.” 성철의 법문 한 토막이다.

*참고문헌. 김정휴(편), 역대종정법어집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대원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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