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지구촌 오지탐험 <2>은둔의 왕국 부탄㊥
도용복의 지구촌 오지탐험 <2>은둔의 왕국 부탄㊥
  • 도용복 도용복
  • 승인 2017.12.02 20:18
  • 업데이트 2017.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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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복의 지구촌 오지탐험 <2>은둔의 왕국 부탄㊥

푸나카 종 부탄의 옛 수도 푸나카에 있는 푸나카 종(Punakha Dzong). 종은 요새화된 사원인데 푸나카 종은 부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사라토가 김병찬

행복의 나라 부탄에 초대받다 

이른 아침 일어나보니 가까운 산에 짙은 구름이 걸터 앉아있다. 부탄의 주 수입원은 히말라야 깊은 협곡을 이용해 만드는 전기와 관광산업이다. 관광 인프라가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어 다니는 호텔이나 식당이 전혀 불편함이 없다. 특히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다 보니 간단한 단어만 구사해도 의사소통이 대부분 해결된다. 우리도 보고 배울 점이다.

오늘은 파로에서 수도 팀푸를 거쳐 부탄의 옛 수도 푸나카에 갈 예정이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나서는 길에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은 우리의 아이들과 다름이 없다.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도 호기심을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더 신기한 듯 보였다. 출근하는 선생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부탄은 아직 폐쇄적인 면이 많은 곳이라 학교를 방문한다거나 선생님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정식적인 공문과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주었다. 스며드는 인연으로 또 좋은 기회를 만든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이다.

낯선 이방인 앞에서 기타를 치며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는 부탄의 소년들. 그들은 물처럼 히말라야 계곡의 물처럼 맑았다. 사진=사라토가 김병찬

팀푸로 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깊은 협곡의 좁은 도로를 경험했다. 앞으로 여행 내내 나를 끝없이 긴장하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 부탄의 중요 국가 정책인 자연보호로 인해 터널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로 치면 터널을 통해 십 분이면 갈 수 있을 곳을 구불구불한 산길로 가야한다. 대부분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도로를 타고 몇 시간이고 이동을 했다.

나는 차에 탔을 때, 춥든지 덥든지 언제나 창문을 열고 다닌다. 창문을 열고 매 순간의 소리와 자연의 냄새를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런 사소한 습관이 축제나 제사, 오지의 진풍경을 마주하게 해주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팀푸에서는 새로운 통역과 가이드를 만난 뒤 지난 며칠간 탔던 차보다 작은 차로 바꿨다. 오지에는 큰 차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통역의 이름은 린첸, 가이드의 이름도 린첸. 알고 보니 통역을 맡은 린첸이 JTBC 방송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부탄 대표로 출연한 적도 있는 유명인이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완벽하였고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탄 역사에 대해 해박하였다. 한국을, 한국 사람을 이해하는 린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따뜻한 커피와 비스켓을 대접받고 다시 길을 나선다.

푸나카를 가기 위해 도출라를 지나게 된다. 이 곳에서 히말라야 유명한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도착해보니 짙은 구름이 가려져 있었다. 푸나카를 가기 전 치미라캉 이라는 곳을 찾았다. 이 곳은 아이를 갖고자 하는 부탄인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곳이라고 한다. 꾀자고승이 지은 사원으로 가는 길 곳곳에 남근상이 그려져 있다. 남녀의 육체적 합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한다.

사원 내부에 고승의 남근이라는 뼈가 불상 앞에 자리잡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몇 시간의 차를 타고 온 새댁을 만나서 물어보니 아들을 낳고 싶어 기도하러 왔다고 한다. 부탄 사람들은 이 곳에서 기도하면 아이를 꼭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푸나카 종(Punakha Dzong)은 아름다웠다. 히말라야 계곡물이 양쪽으로 흘러 하나로 합쳐지는 곳에 자리잡았다. 종은 부탄의 요새화된 불교 승원(僧院)을 말하는데, 우리의 행정관청과 사원이 합쳐진 곳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내일을 기약하며 호텔로 향했다.

아침에 푸나카 종을 다시 찾아 나섰다. 다른 일행들은 푸나카 종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계곡을 따라 래프팅을 즐기기로 하고 나는 푸나카 종을 둘러보는 동안 그 곳에서 여고생들과 그들 중의 아버지 두 분이 일요일 점심 도시락을 펼치고 있었다. 나에게 부탄의 가정식 도시락을 함께 하길 권한다. 역시 먹을 복은 국가대표 급이다.

부탄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적 영향인지 아니면 깊은 산속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지리적 환경 때문인지 히말라야 계곡물만큼 맑다. 낯선 이에게 주저 없이 젓가락을 건네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여행에서 느끼는 사람냄새. 맛있게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자연스럽게 호구조사에 들어간다.

두 아버지 모두 직급이 높은 군인이었다. 내 눈에도 그들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장들로 보였다. 또한 일요일 딸과 그 친구들에게 피크닉을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있었다. 한 아버지는 한국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어느 호텔에 있는지 물어보고 오늘 저녁 부탄에서 만든 위스키를 가지고 찾아 가겠노라 약속한다. 반신반의 하지만 말만이라도 고맙다.

래프팅을 간 일행들과 다시 만나 비구니 스님만 계시는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을 이끄는 분이 남자 스님이란 사실이 이채롭다. 그 분께 인사를 드리고 이 곳의 모습이 궁금하다고 하니 사원 안으로 초대하여 예불 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한국에서도 많은 스님들이 다녀가시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예불을 끝내고 사원 주변을 둘러보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75년 살아온 인생에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아름다웠다. 호텔의 배려로 점심은 사원 근처 풍경 좋은 곳에서 우리들만을 위한 만찬이 펼쳐지는데 그 정성이 너무 감사해서 작은 금전적 성의를 보이는 내가 멋쩍었다.

부탄에서 미슐랭 쓰리스타에 못지않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재래시장에 들렸다. 호두가 너무 싸고 맛있어 보여 한 봉지 가득 샀는데 먹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고 내용물도 들인 수고에 비해 작아서 실망이었다.

푸나카에 있는 린첸(통역) 외삼촌집을 방문했다. 현지인들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오지탐험 땐 언제나 가정집을 찾는다. 사진=사라토가 김병찬

푸나카에 통역 린첸의 외삼촌댁이 있어 저녁시간 잠시 찾아갈 예정이란 이야기를 듣고 따라 붙었다. 부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요즘 TV 프로그램에 부자지간에 부탄 일반 가정집에서 먹고 자며 같이 생활하는 것을 봤는데 그때 내가 가 본 곳과 모든 것이 흡사했다. 일층은 사람이 살지 않고 거의 90도에 가깝게 가파른 계단을 딪고 2층으로 올라야 비로소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온다. 그들은 손님에게 버터 티와 인도에서 수입하는 비스켓을 대접한다. 예외 없이 이 집에도 부탄 국왕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날이 어두워져 호텔로 돌아오니 낮에 보았던 군인 아버지 두 분이 위스키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사람에 취하고 정에 취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니 받거니 국왕을 위해 히말라야 청정수로 만들었다는 위스키는 술을 잘 모르는 내 입에 달게 느껴졌다. 부탄의 하루가 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동행한 카메라 기자는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번 여행에 또 하나의 수확은 전문가가 영상 찍는 방법을 옆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로 오지를 홀로 다니다 보니 잘하든 못하든 나만의 방법으로 최대한 많이 찍다보면 그 중에 좋은 것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큰 가르침을 몰래 받고 있었다.

오늘은 푸나카에서 쫑사로 이동한다. 우리 일행에게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가는 길에 만난 야크 무리와 인사하고 길가에 핀 먹을 수 있는 꽃잎도 따먹고 쫑사까지 약 한 두 시간을 남겨둔 간이 휴게소에서 인도에서 수입한 라면도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우리의 목적지까지 눈에 보였다. 다만 계곡을 돌고 돌아 그 곳에 가야할 뿐 오늘 하루의 일정은 이동하며 그렇게 끝나는 듯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짙은 구름이 끼는 풍경 역시 아름다웠다. 호텔을 이십여 분도 채 남기지 않은 포장되지 않은 산길에서 차들이 밀려 서 있는 줄 끝에 우리차가 닿을 때까지는 모든 게 아름다웠다. 왜 섰지? 하는 순간 통역과 가이드 린첸이 내려 사태를 파악하고 우리에게 알려준 소식은 산사태가 일어나 도로를 집채만 한 돌들과 흙으로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때렸다.

산사태로 발길이 묶였던 나와 여행객들은 마침내 도로가 트였다는 소식에 함께 환호했다. 사진=사라토가 김병찬

부탄에서 며칠 지내온 터라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산사태가 난 곳으로 걸어가 보니 다행히 포크레인이 와서 큰 돌들을 긴 협곡 아래로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럴 때마다 천둥같은 소리를 내며 돌들이 계곡으로 쓸려 내려간다. 인파들과 함께 구경하는 사이 갑자기 누군가 큰소리를 친다. 본능적으로 산사태가 또 났구나 싶어 반응하는 순간 장난이라는 걸 알고 다들 한바탕 웃고 나서야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됐다.

어느덧 날은 저물고 칠흙 같은 어둠속에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 깊은 산 계곡 허리쯤 언제 움직일지 모를 차안에서 일행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흘렀는지 갑자기 저기 앞 차들이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브라보. 최악은 면했다. 어렵게 도착한 호텔은 어두웠지만 멋진 풍광을 품고 있음이 느껴졌다. 부탄에서도 한국인들이 잘 오지 않는 그 곳에서 여행을 온 노부부를 저녁식사 자리에서 뵙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이후로 수도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가 다니는 곳에서 한국인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셋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