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개구리(井外䵷·정외와)
우물 밖 개구리(井外䵷·정외와)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7.12.07 11:39
  • 업데이트 2017.12.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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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밖 개구리(井外䵷·정외와)

'장자'에 나오는 상상의 새 대붕(大鵬)이 남쪽 바다로 날아가고 있다. 출처: YouTube '莊子說故事'(蔡志忠漫畫).

삼성 사장들의 행태는 가관이었다. 삼성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은 회의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소변이 마려울까봐서다. 이건희 회장이 화장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 비리에 관한 검찰 수사가 안건으로 올라오면, 사장들이 일제히 충성맹세를 한다. 자신들이 회장을 대신해서 감옥에 가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조폭 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다. 푸른 꿈을 품고 삼성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이런 풍경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존심에 상처가 날 게 뻔하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전하는 게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계속 덮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1)

2009년 미국의 시사전문 인터넷 매체 <글로벌포스트>의 수석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제프리 케인은 다른 외신기자들처럼 북한 문제에 주로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삼성의 한 사업장을 방문했다가 받은 ‘충격’이 그의 마음을 바꾸게 했다. “사내 곳곳에 이건희 회장을 찬양하는 글들이 넘쳤고, 몇몇 고위 임원들은 회장의 연설이나 어록을 달달 외우더라. 마치 북한 사회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케인은 ‘범삼성가’의 고위 관계자를 포함해 삼성 임직원, 국내외 경쟁업체 직원, 학자 등 1000여 명을 두루 만났다. 그는 그동안의 취재 내용을 담은 책 『삼성 제국』(Samsung empire・가제)을 내년 2월 미국에서 출간한다.

“한국 출판사 14곳에 문의를 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단 한 군데만 출판 의사를 밝혀 왔는데, 이마저도 이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자 무산됐다.”2)

조카가 결혼을 한단다. 집안의 경사다. 마흔이 넘어서도 배필을 만나지 못했으니 누나의 끌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차였다. 소식을 전하는 누나의 상기된 얼굴이 전화기의 저쪽에서 그대로 묻어왔다. 경사임에 틀림없다. 한데 내 마음은 왜 이리 무거워질까?

친구들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한 지가 벌써 여러 해다. 친구가 이사를 한다고 먼 데 살더라도 마다않고 달려갔다. 몸수고만으로 옛정 잊지 않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조사에는 봉투가 필요하다. 몸으로 때울 일이 아닌 것이다.

김해는 멀다. 우선 하동읍으로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읍에서 진주까지, 진주에서 김해로 거듭 버스를 타야 한다. 승용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차비를 고려하면 승용차 기름 값이 싸게 먹힐 수도 있다. 그러나 친구에게 폐차 값 주고 이전한 2000년산 헌털뱅이는 장거리 운행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모험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새벽밥 먹고 서둔 덕에 제때 예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나를 찾았다. 시골로 낙백하여 궁상스럽게 사는 동생을 마냥 안쓰럽게 여기는 정 많은 여인이다. 반가워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뿐, 하객 맞는 일로 돌아갔다. 자형은 응, 왔냐며 짧은 눈길을 주었으나 인사에는 온기가 없었다. 조카에게 악수라도 건네야 했다. 무슨 덕담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말없이 잡은 손에 힘만 주었다. 자기의 결혼식을 빛낼 처지에 있지도 못한 삼촌의 말은 차라리 잔소리가 될 터였다. 일단 소임은 끝냈다. 참석한 것을 증명은 한 셈이니까.

예식장 로비 소파에 앉았다. 하객들로 북적였지만 나는 한갓진 시골집에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니라 군중 속에 홀로 있음을 느낀다. 내가 지금껏 추구해온 자유가 이런 종류의 자유였을까?

절대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자유인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바로 ‘구경究竟에 이른’ 지인至人이요, 신인神人이다. 달리 표현하면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없고, 공로가 없고,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에 집착하거나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아나 공로나 명예의 굴레에서 완전히 풀려난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 독서를 시작할 무렵 맨 처음 잡은 책이 『장자』였다. 아마 ‘현재의 나’를 형성하는 데 자양분을 가장 많이 제공한 책이다. 덕택에 초로에 서 있는 나는 존재감 없고, 공로도 없고, 이름도 없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자아나 공로나 명예의 굴레에 속박되어 조카 결혼식에서도 나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해 뒷구석 소파에서 혼자 앉아 있는 신세이다.

갑자기 떠들썩하다. 결혼식장의 활기라고 해야 하나? 양복 깃에 배지를 단 사람을 중심으로 일단의 양복쟁이들이 식장에 들어섰다. 누나와 자형도 입구까지 나가서 반가이 맞았다. 고향 동네 선배다. 그가 김해시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김해에서 건설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그 기반에서 시의원에 출마했고 당선되어 고향 동네에서 잔치까지 벌였다. 김해시의원 경력을 바탕으로 조만간 고향에서 군수 자리에 출사표를 던질 거라고들 했다.

“철학 책 백 권 읽는 것보다 법률 책 한 권 읽는 게 인생살이에는 더 도움이 된다.” 40여 년 전 지금 시의원이 된 선배의 말이 뚜렷이 기억났다. 대화를 하던 장소까지 눈앞에 선히 그려진다. 내가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 마을 당산나무 그늘에서였다. 그는 전투경찰로 병역을 마치고 집에서 진로 탐색을 하고 때였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하필 국문과에 갔나, 법대에 가지 않고.” 그때 나는 아마 『장자』를 떠올리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우물 안 개구리(井底䵷. 정저와)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외편外篇 <추수秋水>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 출전이다. 시의원과 나, 누가 더 자유로울까? 그는 시의원이라는 인격에다 에쿠스라는 ‘차격’까지 갖췄다. 일용할 양식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는 적어도 ‘우물 밖 개구리’ 쯤은 된다. 나는? 낙백에 낙백을 거듭해 시골 초가에 갇혀 있는 아직도 개구리도 되지 못한 ‘우물 안 올챙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가 머문 시간이 5분이나 되었을까? 내가 인사하러 가려하자 그는 벌써 자형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예식장에 가봐야 한다며 총총걸음으로 예식장을 나서려 했다. 차라리 잘 됐다. 애써 만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소파에서 일어나 몇 발짝 옮기다가 그대로 그의 작아지는 뒷모습만 눈에 담았다.

“삼촌 오셨어요? 잘 계시지예. 시골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조카의 친구인 것 같았다. 조카도 시골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해로 이사를 갔다. 조카 친구들도 친구 삼촌을 거의가 아는 게 좁은 시골동네의 사정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조카 친구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유난히 깍듯했다. 후배들에게 대우다운 대우를 받아본 적이 한참이나 되어서인지 그의 살가운 태도가 되레 마음에 걸렸다.

마음에 걸림은 돌아오는 조카 친구의 승용차 안에서 해소되었다. 차가 없는 것을 알고 그는 고집스럽게 고향으로 자기 차로 ‘모셔 주고’ 싶다고 했다. 너무 과분한 대우라 거절하자 간곡하게 신세 갚을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꼭 삼촌 때문만이 아니라 고향에 부모님을 이 번 기회에 찾아 뵐 것이라는 거절 못할 이유도 댔다.

나는 면사무소 병무보조로 방위 근무를 했다. 그래서 ‘병역필’이 아니라 ‘소집해제’이다. 그 당시는 출생신고서 등을 모두 손으로 썼다. 그것도 순 한자만으로. 하여 촌로들이 면사무소에 호적부를 떼는 등 볼 일을 보러 오면 면사무소 직원들의 유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기억에 없지만 이 조카 친구의 출생 신고를 내가 해 준 모양이었다. 면직원이 미적거릴 때 방위복 입은 내가 쭈뼛쭈뼛 하고 있는 그의 할아버지에게 먼저 볼 일을 물어 서슴없이 당장 출생신고를 해줬다고 했다.

“저는 삼촌이 판검사나 하다못해 변호사라도 할 줄 알았어요. 삼촌이 억수로 공부를 잘했다고 하데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28) 씨가 국내 로펌 김앤장의 신입 변호사들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월 말 서울 종로구 한 술집에서 신입 변호사 10여 명이 친목 모임을 가졌다. 김 씨는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지인의 소개로 중간에 들어왔다. 술자리 막바지에 김 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변호사들이 부축하자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는 등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피해 변호사들은 김 씨를 고소하지도 않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럴까? 질문에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클라이언트‘님’을 어떻게 고소하느냐”며 “변호사 업계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답했다.

“희동이라고 그랬지? 희동아, 내가 말이야, 만약에 변호사가 되었다면 당연히 차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너는 평생 신세 갚을 기회가 없을 게 아니야.” “삼촌, 듣고 보니 그렇네요.”

둘은 얼굴을 마주 보며 호쾌하게 한 번 웃어 젖혔다. 올 때 거무칙칙하던 하늘이 어느덧 새파란 게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1)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 2)김포그니, 「인터뷰/<삼성 제국> 출간하는 제프리 케인 기자」, 『한겨레신문』, 2017년 12월 2일. #참고문헌. 오강남 풀이, 『장자』,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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