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호의 법정구속과 플리바게닝
장시호의 법정구속과 플리바게닝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7.12.10 21:18
  • 업데이트 2017.1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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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호의 법정구속과 플리바게닝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출처: 연합뉴스 TV 방송 캡쳐

지난 6일 법원(서울중앙지법형사22부. 재판장 김세윤)이 검찰 구형(1년 6개월) 의견보다 높은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장시호를 법정구속했다.

장시호의 구속을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장시호는 그간 ‘특검 복덩이’로 불리며 국정농단 수사에 적극 협조해 왔기 때문이다. 검찰도 복덩이에 보답했다. 법정 하한형인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 것이다. 사실상 플리바게닝((Plea-bargaining, 유죄협상제도)을 적용한 것이다. 반면 법원은 검찰의 플리바게닝에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플리바게닝이란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춰주거나 가벼운 죄목을 적용하기로 거래하는 것으로 유죄협상제도 또는 사전형량조정제도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에는 플리바게닝이 없다. 그러나 기소 과정에서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해 주고 있어 사실상 플리바게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있다. 수사 협조자에 대해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기소를 하더라도 형을 낮춰 구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시호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장시호 재판부는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적극 협조했다”면서도 “범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것도 장 씨”라고 지적하며 법정 구속한 것이다.

장시호의 혐의는 직권남용, 업무상 횡령, 사기, 보조금관리법 위반 등 많다. 종합하면 최소 징역 1년 6개월에서 최대 징역 15년에 처해질 수 있었다.

검찰은 양형기준 상으로 가장 낮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 것은, 국정농단자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그 협조자를 최대한 선처한 것으로 적폐청산에 대한 검찰의 의지로 읽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무리 협조자라 하더라도 국정농단의 부역자는 부역자다. 법원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것은, 국정농단자 처벌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법원의 엄벌주의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신뢰할 만하다.

장시호 재판을 계기로 플리바게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면 어떨까? 때마침 2017년 11월 11일자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에 ‘그림자 사법제도’(The shadow justice system)라는 도움이 될 만한 기사가 있어 번역, 소개하고자 한다.

형사사법제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수많은 법정 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형사가 목격자를 인터뷰하고 범행 장소를 조사한다. 법의학자들이 혈흔과 담뱃재에서 비밀을 찾아낸다. 판사와 배심원은 사실관계를 저울질해 유・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는 이 제도 이면에 더 신속하고 더 거친 제도가 있다. 플리바게닝이다. 검사는 가벼운 혐의 적용이나 감형을 약속하며 유죄 인정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증언을 요구한다. 미국의 사법제도 운영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온 제도이다.

그런데 이 ‘그림자 사법제도’가 이제 세계화되고 있다. 1990년에 이 제도를 허용한 국가는 19개국이었는데, 현재는 66개국이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유죄평결의 대부분이 플리바게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미국 연방법원에서 유죄평결은 거의 100% 플리바게닝에 의해서 내려진다.

이 제도는 때때로 오직 무늬만 사법제도인 결과를 낳는다. 검사는 있는 혐의 없는 혐의를 쌓아놓고 유죄협상을 하도록 협박한다. 피고가 유죄협상을 하지 않고 재판에 임한다면, 몇 십 년 철창신세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혐의 근거가 희박할 때라도 피고는 유죄협상 외 다른 선택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의뢰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목격자에게 1달러를 제공한 변호인은 뇌물죄를 범하게 된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를 불지 않는다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목격자에게 협박하는 검사는 자기 직분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게 공정한 일인가?

플리바게닝이 근거한 가설은 이렇다. 무죄인 사람은 법정에 떳떳이 서서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강간이나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뒤에 무죄임이 밝혀진 미국인들 중에서 상당수는 유죄협상을 했다.

재판 전 구속은 이럴 위험성을 높인다. 사람들은 감옥을 나가기 위해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가벼운 처벌이라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학업 위반을 자백한다는 것이다.

플리바게닝은 포기하기에는 너무 유용한 제도이다. 유죄협상을 할 인센티브가 없다면, 현행범으로 체포된 범죄자마저도 재판을 선택한다. 감옥에 가지 않을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하여 재판은 느려지게 되고 돈도 더 많이 들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씻어야 할 희생자들이 더 많이 증인석에 앉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플리바게닝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조직범죄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무기를 버리는 것이 된다. 우두머리 등 중추인물을 체포하는 데 도움을 준 조무래기에게 보상할 권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리바게닝이 사법제도를 전복하는 게 아니라 사법제도에 봉사한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제약조건이 있어야 한다. 우선 걸맞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복역기간을 조금 줄여주는 것으로 유죄 피고인이 재판을 포기하도록 유인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나 감형이 너무 관대하게 되면, 거짓 자백이 더욱 자주 일어나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유죄 증언의 인센티브에는 엄격한 조건을 붙여야 한다.

브라질이 모범적이다. 최근에 플리바게닝의 확대 적용으로 부패 정치인을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증을 방지할 장치를 마련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유죄 증언에 대해서는 보강증거를 요구했다. 그리고 피고의 증언이 거짓말로 밝혀지면 이 협상은 무효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무엇보다도 플리바게닝이 형사사법제도를 왜곡시킬 정도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검사가 폭넓은 재량권을 가진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범죄는 종종 느슨하게 정의해 두고 판결은 가혹하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사법제도는 피고가 유죄협상을 하도록 협박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이 재판에서 검증을 받지 못한다면, 경찰은 엉성하게 수사하고 변호인은 게을러지며 판사는 변덕스러운 판결을 한다. 무고한 사람들이 감옥에 갈 것이냐 아니냐를 협상하도록 위협 받는다면, 모든 사람에게 사법 정의 실현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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