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음주도 기억을 손상한다
적당한 음주도 기억을 손상한다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7.12.23 06:40
  • 업데이트 2017.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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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음주도 기억을 손상한다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를 주제로 강연하는 매튜 교수. 오른쪽은 그의 저서 표지. 출처: 유튜브, 아마존.

그동안 ‘술과 건강’ 방정식의 정답은 ‘적당히’였다.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도움을 준다! 애주가에게 이 말보다 더한 위안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폭음으로 필름이 끊길 때(블랙 아웃)가 많을지라도.

그런데 애주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적당히’가 아니라 아주 조금만 술을 마셔도 학습과 기억 능력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디 아틀랜틱’의 보도에 따르면, ‘수면 전도사’라는 별칭을 가진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신경과학 및 심리학과 매튜 워커(Matthew Walker) 교수가 최근 펴낸 ‘왜 우리는 잠을 자는가(Why We Sleep)'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워커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잠을 잘 때 기억은 접착되어 저장된다. 그런데 알코올은 ‘렘(REM) 수면’을 방해한다. 따라서 음주는 새로운 정보가 뇌에 저장되기 전에 그것을 잊게 만든다. 심지어 학습한 지 며칠이 지난 뒤 음주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렘 수면’이란 수면의 여러 단계 중 빠른 안구 운동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뇌 활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놀라운 현상에 대한 증거로써 워커 교수는 지난 2003년 캐나다 트렌트대학의 카라일 스미스 교수의 실험을 인용했다. 실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5명의 학생에게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새로운 문법을 가르쳤다. 그런 뒤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A그룹은 적당 양의 보드카에 오렌지를 탄 칵테일을 공부한 그날 저녁에 마셨다. B그룹은 같은 칵테일을 이틀 후에 마셨다. 그리고 C그룹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며칠 후 이들은 배운 새로운 문법에 관해 시험을 쳤다. 결과는 어땠을까? 배운 당일 칵테일을 마신 A그룹의 성적이 술을 전혀 먹지 않은 C그룹보다 나쁘게 나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결과 역시 예상대로였다. C그룹이 배운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데 비해 A그룹은 50%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학습 이틀 후 마신 B그룹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이들은 학습 후 이틀이 지나서 술을 마셨는데도 학습 당일 칵테일을 마신 A그룹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들은 학습 내용의 40%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기억은 며칠 동안 알코올의 충격에 취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상태로 있기 때문입니다.” 워커 교수의 말이다.

소량의 음주가 기억에 손상을 준다는 연구는 최근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도 나왔다. 정신의학과 임상센터의 선임연구원인 아냐 토피왈라 교수는 ‘적당한 음주’를 30년간 생활화한 550명를 대상으로 인지기능 테스트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술을 상대적으로 많이 마시는 참가자일수록 학습·기억·인식 기능을 하는 뇌의 해마부위가 더 작았다. 그리고 하루 맥주 1병쯤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휘의 유창함’이 16%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결과는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다’는 기존 술과 건강에 관한 상식을 뒤엎는다.

맨 앞에 소개한 실험을 진행한 카라일 스미스 교수는 ‘꿈 텔레파시’를 연구한 심리학자인데, “알코올은 기억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면서 “알코올은 아주 민감한 렘 수면 상태의 안구운동을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스미스 교수는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음주 후 수면과 기억과의 흥미로운 관계를 내놓았다. 즉, 학습을 한 뒤 음주를 하고 잠을 자면 기억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주 후 잠을 자기 전에 신진대사를 통해 알코올을 배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음주 후 침대로 직행하느니 차라리 ‘낮술’이 낫다는 게 스미스 교수의 주장이다.

워커 교수와 토피왈라, 그리고 스미스 교수도 모두 알코올이 렘-수면을 방해하고 기억에 손상을 준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인다.

한편 수면 전도사인 워커 교수는 자신은 하루 8시간의 ‘협상불가의 수면 기회’를 갖고 있다면서 “잠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건강보험정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