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9>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9>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7.12.26 11:59
  • 업데이트 2017.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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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9>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애덤 스미스나 케인스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경제의 근본 동기가 된다고 말한 데 대해 E.F.슈마허는 이러한 탐욕과 이기심을 이용해서는 궁극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국부론』의 저자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개념에서 언급된 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생산․소비를 하는 행위가 시장을 잘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분업의 이점’을 강조했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남을 설득해 동의를 얻고자 하는 설득성향, 그리고 본성적으로 교환하고자 하는 교환성향,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인 자애심을 바탕으로 할 때 시장 시스템이 돌아간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무엇보다 국부의 개념을 종래 ‘무역에 의한 왕실의 금은 획득’에서 ‘국민노동의 생산력의 증대’로 전환함으로써 국민의 노동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는 근대 경제학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보다 더 애지중지한 책이 바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다. 실제로 애덤 스미스는 글래스고대학에서 논리학, 도덕철학 교수로 있었다. 『국부론』(1776년)보다 앞서 1759년에 『도덕감정론』을 발표해, 이미 명성을 쌓았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표지. 국부론의 '이기심' 은 도덕감정이 전제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다른 사람에게 ‘동감(sympathy)’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감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이며 이 동감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사람은 구체적인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고 했다.

이러한 ‘공정한 관찰자’의 시선에서 보아 문제가 없도록 사람들은 행동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적절한가를 판단함으로써 사회가 굳이 자선(beneficence)을 비롯한 상호 애정이 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고 논했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종래의 저임금론에 반대했다. 구성원의 압도적인 다수가 가난한 상태에서 그 사회가 행복해질 리가 없다며 고임금론을 전개했다.

이런 면에서 아담 스미스는 신뢰라는 사회자본을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율성을 강조한 셈이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새 정부 들어 역점을 두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이 왜곡한 애덤 스미스의 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애덤 스미스의 마음세계를 잘 소개하는 책이 미국 스탠포드대학 러셀 로버츠(Russell Roberts) 교수가 쓴『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원제: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 2014)』(세계사, 2015)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이와 반대되는 선한 본성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과 처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 이 책에서 러셀 로버츠는 『국부론』이 타인의 이기심을 중시하지만 그것은 타인이 원하는 걸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답례를 전제로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기적인 인간은 어떻게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게 된 것일까? 우리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타인이 답례로 무언가를 줄 거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정의한 ‘이기심’이라고 러셀 로버츠는 풀이한다.

애덤 스미스는 양심과는 다르지만 공정하게 나를 관찰하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비용과 이득만 생각하는 근대 경제학의 계산법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삶이 비참해지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장점이 신뢰이며, 이것을 애덤 스미스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본다고 했다. 러셀 로버츠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 지주들이 주민들에게 땅을 똑같이 나눠준 것처럼, 생필품도 똑같이 분배한다. 이런 식으로 지주들은 무의식중에, 부지불식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가 살아갈 수단을 제공해준다. 하늘의 섭리는 소수의 위풍당당한 지배자들에게 땅을 나눠줄 때, 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잊은 것도, 내버린 것도 아니다. (중략).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안락하고 정신적으로 평화로운 삶의 수준을 거의 동일하게 누린다. 큰길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거지조차도 안락을 맘껏 누린다. 이 거지들이 누리는 안락은 왕들이 전투를 해서라도 쟁취하려는 안정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고, 『국부론』을 통해서는 모르는 사람과의 교환이 이뤄지는 세상에서 인간 행동을 규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러셀 로버츠는 ‘사랑은 가까운 곳에서 찾고, 거래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자!’고 요약했다.

이처럼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도 상호신뢰나 공감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천민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서는 이러한 상호신뢰나 공감을 배제하고 오로지 이기심과 탐욕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호도한다. 슈마허가 제기했듯이 메타경제학에서 중시하는 정신 자체가 왜곡된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F.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경제적 토대는 인간을 서로 다투도록 만드는 원인인 탐욕과 시기심을 체계적으로 배양하는 것에 의존하는 바, 이런 토대에 기대어 평화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이중의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슈마허는 “과연 우리가 탐욕과 시기심을 버리려는 시도를 할 수나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이 시도는 우리의 탐욕과 시기심을 보다 약화시키고, 사치품을 필수품으로 전환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고, 우리의 욕구를 단순화하거나 줄일 수 없는지 찬찬히 점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속성을 보증하기 어려운 경제적 진보 유형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일을 멈추고, 나아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폭력을 옹호하는 사람들, 가령 자연보호주의자, 생태학자, 유기농업인, 분배제도 개혁자 등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지지를 보내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결국은 슈마허를 통해 오늘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에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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