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간과 말의 힘
문제적 인간과 말의 힘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7.12.26 13:11
  • 업데이트 2017.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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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간과 말의 힘

백인들의 잔인성과 폭력성을 고발한 영화 '늑대와의 춤을' 중 인디언의 버팔로 사냥 장면. 인디언은 먹을 만큼만 사냥했다. 하지만 백인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4000만 마리를 단 50년 만에 멸종시켰다. 출처: 유튜브

마크 트웨인은 미국의 여러 대평원을 누비며 사냥에 전념했다는 한 영국 백작의 여행담을 들은 후 에세이를 썼다. ‘열등 동물’이라는 제목의 이 에세이에서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이 스스로를 꽤나 위대하다고 믿는다고 비난했다.

정오 무렵이 되었을 때 사냥꾼들은 벌써 들소를 72마리나 잡았으므로, 백작의 하인들은 큰 어려움 없이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등뼈 뒷부분 살을 한 점 베어 적당히 구워 주인에게 완벽한 안심 스테이크를 만들어 올렸다. 사냥꾼 일행은 온전한 들소 71마리와 살점 한 점이 떨어져 나간 들소 한 마리의 사체를 들판에 버려둔 채 네브래스카 주 링컨에 위치한 그들의 호텔로 돌아갔다.

아나콘다와 영국 백작을 결정적으로 구분 짓기 위해서 마크 트웨인은 실험동물생태학을 창설했다. 그는 런던 동물원에 있는 아나콘다 우리 안에 송아지 일곱 마리를 들여보내도록 했다. 파충류 녀석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즉시 송아지 한 마리에 달려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놈을 삼켰다. 그러더니 배가 부른 아나콘다는 기분이 좋은지 몸을 길게 펴고 누웠다. 녀석은 나머지 여섯 마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을 해치려는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영국 백작은 잔인하며, 브라질 출신 파충류는 합리적이다.1)

북미대륙에 살던 4000만 마리의 버팔로가 영국 백작 같은 백인들에 의해 불과 50년 만에 멸종되었다. 그들이야말로 열등 동물이자 '문제적 인간'들 아니겠는가?

허우대가 우람하다. ROTC 장교 반지를 아직도 끼고 있었다. 사립고등학교 행정실장이라고 듣고 있었다.

“강 팀장은 군대 생활 어디서 했소?” ‘님’자도 없고 초면에 ‘했소’는 숫제 낮추보고 말을 까는 것과 진배없다. “고향 면사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방위? 아 ‘똥방우’ 했다는 말이구나.”

고개를 젖히며 크게 헛웃음 치며 손가락질에 가까운 손사래를 쳤다. 눈찌에 힘을 주고 응시했다. 그는 약간 당황한 듯 웃음빛을 거두고는,

“방위 출신이 방위 근무했다고 하는 사람이 없던데... ‘팀장님’은 어디를 봐도 방위한 것 같지는 않는데요.” “방위가 어때서? 탁 실장, 같은 위관尉官 급 아닌가!”

같이 씰룩 한 번 웃는 것으로 분위기를 눙쳤다. 학군단(학생군사교육단, ROTC) 출신 친구들과의 기수로 가늠해 보니 내가 한 해 선배였다.

‘자資,본本,주主,의義’라서 그럴까? 호텔 소유주는 힘이 세다. 한때는 농사짓는 사람이 세상의 근본(農者之天下大本)이었다. 그러나 한때였고 옛날의 일이다. ‘자본주의’는 글자그대로 ‘돈이 제일’이라는 이론이다. Capitalism은 '돈+주의, capital+-ism'이고, 이를 일본인이 ‘資本主義’로 번역했고, 우리도 거부감 없이 쓰고 있다.

소유주와 ‘아는 사람’까지 힘이 세다. 탁 실장은 소유주와 일주일 걸러 한 번씩은 저녁 식사를 하는 사이였다. 친인척 관계는 아니다. 소유주는 온천이 있는 호텔의 사우나와 단체 숙박 손님 유치에 탁 실장이 요긴할 만도 했다. 탁 실장은 자신의 얼굴 내는 데 소유주와의 친분이 안성맞춤일 터였다.

허울 좋은 하눌타리라고 이름만 ‘관리팀장’이지 나는 호텔 잡부에 불과했다. 그것도 최저임금 약간 웃도는 봉급 받으려 50대 말에 객지에서 온 신입이다. 힘이 실린 탁 실장에게는 내가 아랫것으로 보임은 어쩜 당연한 세상인심이리라.

“팀장님, 사우나 좀 하고 오겠습니다.”

탁 실장이 딴에 멋 부린답시고 프론트에 있는 나에게 느린 동작의 거수경례로 티켓을 대신하고 사우나로 향했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명색이 장교 출신이고 행정실장쯤 하고 자식 다 거두었으면 호주머니가 별로 궁하지 않을 법도 한 일이다. 공짜 목욕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그 많은 ‘월 이용권’은 어디에 삶아 먹었을까?

종종 학교 관계자를 숙박시키려 데리고 왔다. 반드시 탁 실장이 카드로 결제한다. 아마 법인 카드일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결산을 한 번 더 한다. 지인이라고 호텔에서 직원 맞잡이로 20%로 할인을 해준다. 그는 그 차액만큼 호텔 사우나 월이용권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우나 하러 올 적마다 그 이용권을 이용하는 법이 없다. 참 이해하기 힘든 ‘문제적 인간’이다.

“군인 정신은 제 정신이 아니다.” 루소가 말했다고 하던가. 그러나 육십갑자를 일순하기 직전인 지금까지 오롯이 기억하는 장군將軍과 예비군이 있다.

1979년 9월 말에 창원 39사단에 방위 훈련병으로 입소했다. 평소 ‘힘’에는 자신이 있는 터라 ‘남자라면 해병대에...’라는 선배의 말이 마음 한편에 걸리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경위는 내밀한 사정이 있으니 일단 제쳐두고, 하여튼 방위 복무를 선택(?)한 것이다. 친구들은 물론 선후배들도 모두 내가 방위병이 된다는 것을 의아해 한 것만은 사실이다. 입소 점호를 할 때 지역에서 호가 난 ‘농땡이’ 선배들이 몇 보여 ‘방위’에 사람들이 ‘똥’이라는 있지도 않은 성姓을 붙인다는 게 실감이 났다.

좋은 사단장님 만나서 너희들은 운이 억세게 좋은 놈들이다, 라는 조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몰랐다. 그러나 차츰 내무반 한쪽에 책장이 있고 듬성듬성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니 얼추 감이 잡혔다. 1979년 10월은 국군의 날, 개천절, 추석 3일, 한글날 등 공휴일이 즐비했다. 지금도 그 이름이 선명하다. 조옥식 육군 소장, 39사단장. 그의 지휘방침은 모든 장병은 일과 시간에만 훈련이든 근무든 하고, 그 외의 시간은 휴식을 취하든지 책을 읽으라는 거였다. 일과 시간 이후나 공휴일에는 일체 사역이 없었다. 그야말로 ‘자유시간’으로 주어졌다. 그 덕에 내무반 책장에 있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었고, 『성경』도 독파했다.

매주 목요일에는 국기하강식을 거행했다. 행사 한 시간 전쯤 해서 예행연습을 했다. 정렬 순서는, 연단에서 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현역병, 현역 훈련병, 동원 훈련 중인 예비군, 방위 훈련병 순이었다.

교관은 누누이 강조했다. “‘국기에 대해 경례’ 할 때는 ‘충성’이라는 구호를 하지 않고, ‘임석 상관님께 대해 경례’할 때에만 힘차게 ‘충성’한다, 알겠나?” “옛!”

“자 그럼 다시 한 번 연습한다. 국기에 대해 경롓!” “충성!”

“에이 씨발, 또 어떤 놈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어떤 빙신 같은 새끼들이...”

특히 바로 옆줄의 예비군들 중에서 욕지거리가 난비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잊지 못할 명언 튀어 나왔다. 어느 예비군 왈,

“야야, 놔 나라. 똥방우들 아이가.”

아마 지금까지 책을 가까이 함은 그 사단장의 바탕, 지휘방침에 그 예비군의 무늬, ‘똥방우들 아이가’라는 ‘말의 힘’ 덕인지도 모른다.

※1)다니엘 S.밀로/양영란 옮김, 『미래중독자』(추수밭, 2017),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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