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숨 죽어 세 목숨 살리다
한 목숨 죽어 세 목숨 살리다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7.12.29 12:45
  • 업데이트 2017.12.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목숨 죽어 세 목숨 살리다

장자가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장자 고분이가(莊子 鼓盆而歌 )'. 출처: 매일두조(KKNews)

장자의 아내가 죽어, 혜자가 문상을 갔다. 그 때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아내와 살면서 아이들을 기르고 이제 늙은 처지일세. 아내가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도 너무한 일인데, 거기다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 시작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본래 삶이란 게 없었네. 본래 삶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것이지. 본래 형체만 없었던 게 아니라 본래 기氣가 없었던 것이지.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변해 죽음이 된 것인데, 이것은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맞먹는 일. 아내는 지금 천지라는 ‘큰 방’에 편안히 누워 있지. 내가 시끄럽게 따라가며 울고불고한다는 것은 천명을 깨닫지 못한 짓을 하는 꼴이 되네. 그래서 울기를 그만 둔 거지.”1)

“아저씨는 참 효자요.”

지난 여름은 꽤 무더웠다. 한 줄기 소나기가 그리울 정도로 가물기까지 했다. 하루해 보내기가 오뉴월 보리타작보다 힘들었다. 바람 없는 그늘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신체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모처럼 들른 고향의 팔순 노모의 기력이 심상치 않았다. 무엇이든 간에 보양이 필요한 듯했다. 하여 작정을 하고 읍내 ‘순천집’으로 모시고 갔다. 본래 그 식당은 보신탕이 전문이지만, 삼계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내가 이용한 햇수만도 30여 년이나 된다. 주인 아주머니는 모친만큼 흰머리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친구들에 껴묻어 들르니 나를 알 턱은 없다.

“주인 할매, 무슨 황송한 말씀을. 고작 엄마와 삼계탕 한 그릇 하는 것을...” “아저씨, 그런 말씀 마이소. 남정네가 자기 부모와 식사하러 오는 사람은 없습디다. 부부가 모시고 온 어른들 중 열에 아홉은 여자 쪽입니다. 아들이 제 엄마와 밥 먹는 것 보니 보기 좋아 하는 말입니다.”

더럭 맥주 생각이 났다. 냉방이 잘된 방이니 더위 탓은 아니다. 서글펐다. 이까짓 정도의 가벼운 일상이 ‘효자’와 연결되는 세태가 좀은 서러운 일 아닌가. 일하는 할머니가 맥주 한 병을 덜렁덜렁 가지고 와서 테이블에 던지듯 놓으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요새 놈들은 나온 구녕은 모르고 허는 구녕만 알아, 씨부랄 것들.”

모친을 동네 ‘여름나기 쉼터’에 모시다 드리고, 내처 서너 동네 건너로 차를 몰았다. 그 친구가 보고 싶었다. 효자란 이름에 걸맞은 상대와 막걸리라도 한 잔해야 기분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 상점에서 자당慈堂 군입 거리로 과자 몇 봉지와 막걸리 두 병을 사 들었다.

“과자는 뭘라 샀노, 많이 있는데. 여기 있는 과자 봉다리 전부 내 차지다. 엄마, 술상 좀 봐 주소.”

나는 일어서려다 아차, 싶어 그대로 퍼질러 앉았다. 거동 자체가 노동일 자당이 챙겨올 술상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나 친구의 탁월한 효행을 익히 아는지라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었다.

친구는 지지리도 각박한 인생살이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 탓에 초등학교만 다녔다. 물려받은 땅뙈기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몸뚱이 하나로 남의 논을 빌려 비닐하우스 채소 농사를 지었다. 그런 대로 소득이 쏠쏠했다. 장가도 들고 딸도 둘 얻었다. 그러나 원체 박복한 팔자인가, 아내가 귀천해 버렸다. 한동안 방황했다. 농사일도 엉망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농협 채무 상환 독촉장과 중고생인 두 딸과 죄스러워하는 모친이 현실이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채귀債鬼를 감당하면서 딸들을 무탈히 학교에 보냈다. 문제는 모친이었다. 아들의 모진 인생이 모두 당신 탓으로 돌리며 죄인 같이 처신하는 모친이 자신보다 더 가엾어 보였다고 한다.

“엄마, 오늘 일 많이 했다. 피곤하니 발 좀 씻어줘.”

언젠가 해질녘 비닐하우스로 찾아가니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며 친구의 오막살이에 갔을 때였다. 친구는 대충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발을 대야에 담근 채 자당이 씻어주기를 기다렸다. 나는 뜨악했다. 그러나 아들의 발을 씻어주는 자당의 얼굴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 정말 이 친구 효자구나. 인생의 고수가 바로 여기 있구나!

막걸리를 한 병 더 사 왔다. 입가심으로 방에 이미 있던 과자를 먹었다. 이건 엄마가 드이소. 친구가 사 온 것이니, 하며 비닐봉지를 자당에게 안겼다. 그러마, 하며 자당은 방 한 구석으로 과자 비닐봉지를 알뜰히 간수했다.

“친구야, 이 과자가 어데서 난지 아나? 우리 엄마가 얻어온 거야. 아직도 자식 먹을 거리를 챙기신다니까. 아마 부처님이 정말 있다면 아마 ‘엄마’ 같은 사람일 거야.”

과자의 출처는 이랬다. 옆집에 혼자 사는 자당의 또래 할머니가 있었다. 아들들은 간혹 내왕을 하고 딸들은 혼자 있는 모친이 안쓰러워 반찬이며 주전부리를 택배로 보내왔다. 그리고는 보내준 과자가 맛있느냐고 전화로 물어온단다. 그 할머니는 맛없다고 하면 다른 것도 안 보낼까 싶어 먹지도 않으면서 맛있다고 하니 자꾸 보낸단다. 그렇게 모아둔 것을 자당이 살뜰히 챙겨서 친구에게 갖다 준다는 것이다.

“자네는 참 복 받은 노인이네. 아들을 곁에 끼고 있으니. 소갈비를 보내면 뭐하나, 옆에 있어야 자식이지. 돈이 효잔가, 사람이 효자지.”

장자가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 싶다고 했다. 장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내게는 하늘과 땅이 안팎 널이요, 해와 달이 한 쌍 옥이요, 별과 별자리가 둥근 구슬 이지러진 구슬이요, 온갖 것들이 다 장례 선물이다. 내 장례를 위해 이처럼 모든 것이 갖추어져 모자라는 것이 없거늘 이에 무엇을 더 한다는 말인가?”

장자가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다 ... 장자 고분이가(莊子 鼓盆而歌)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대답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거늘 어찌 한쪽 것을 빼앗아 딴 쪽에 주어 한쪽 편만 들려 하는가?”2)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자라는 나무가 무엇일까? 빚(債)나무이다. 이 나무는 밤에도 자라고 낮에도 자란다. 토요일에도 공휴일에도 자란다. 여름에도 자라고 겨울에도 자란다. 눈이 와도 자라고 비가 와도 자란다. 비가 안 와도 자란다. 하여 귀신 중에서 가장 악랄한 귀신이 채귀債鬼일 것이다.

한동안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객지와 고향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하는 일이 다르니 몸이 소원해졌다. 시제를 모시려 고향에 들렀다가 한 친구를 만나 차를 한 잔 하게 됐다. 문득 그 친구 안부가 궁금해 물었다. 빚에서는 헤어났는지, 아마 참 어려울 것인데.

“아마 빚은 청산했을 것이다. 그 어머니가 가시면서 해결한 셈이니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차실에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하늘을 우러러 봤다. 정녕 하늘의 뜻이란 게 있는 것일까?

※1)『장자』, <외편, 至樂> 2)『장자』, <잡편, 列御寇>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