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 특집>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0>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2018년 새해 특집>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0>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8.01.01 10:22
  • 업데이트 201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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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 특집>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0>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일출 부산 광안대교에서 본 2018년 1월1일 일출. 일출을 보며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사진=김동영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올해의 소망을 빌어본다. 가족이 더욱 건강하길, 사업이 잘 되길, 승진이나 입시에 성공하길, 멋진 애인을 만나길, 로또 대박이 나길, 나라가 평안하길…. 지난 한 해 우리의 바람은 어떠했나?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올 한 해 힘찬 출발을 다짐한다. E.F.슈마허는 ‘간디가 말했듯이 대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 타당하다’며 ‘욕망을 줄이는 경우에만 분쟁과 전쟁의 궁극적인 원인인 긴장상태를 진정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슈마허가 제기한 “충분하다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찾아보자. 우리들의 삶에 최소한 ‘필요한 것들’은 어떠한 것일까? 영국의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에드워드 스키델스키(Edward Skidelsky) 부자가 펴낸『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2012)는 슈마허가 제기한 물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스키델스키 부자가 내놓은 인간의 ‘끝없는 욕구’에 대한 반론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미 관심을 잃고 질문조차 포기한 ‘좋은 삶’이라는 과제를 되살리려는 묵직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또 이것은 케인스가 살짝 운만 뗀 ‘바람직한 미래상’을 바로 지금부터 구현해 나가자는 담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돈을 벌고 얼마나 성장해야 우리는 만족할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일까? 스키델스키 부자는 케인스가 1930년에 발표한「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자본축적과 기술진보 등에 힘입은 경제성장으로 100년 후면 선진국 국민의 생활이 4~8배 더 높아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당 15시간만 일하는 세상이 도래해 인류는 처음으로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자유와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자신의 진정한 문제를 만나게 된다고 한 ‘케인스가 본 100년 뒤’의 세상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케인스가 말한 100년 뒤는 바로 2030년으로 불과 12~13년 후이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철학자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부자는 철학과 역사, 경제학의 전망을 한데 합쳐 그 원인을 추적한다.

스키델스키 책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에드워드 스키델스키(Edward Skidelsky) 부자가 펴낸『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2012)의 원서와 번역서(김병화 역) 표지. 위키피디아

스키델스키 부자는 오늘날 일반적인 경제학이 ‘인간이 자신들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과정에서 제한적이거나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도록 선택할지를 연구하는 것’이라는데 대해,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욕구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결핍에 빠질 운명에 처했다’고 반론한다. 이들 부자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먼저 희소성을 욕구(wants)가 아니라 ‘필요(needs)’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 부자는 무엇보다 기본재(basic goods)를 중시한다. 이 기본재는 잘 사는 삶에 필요한 것으로 건강·존중·안전·신뢰와 사랑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더욱이 이 같은 기본재는 좋은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좋은 삶이라고 덧붙인다. 나아가 이들 부자는 이러한 기본재야말로 개인적 행동은 물론 정치적 행동의 적합한 목표라고 보고 있다. 이들 부자는 슈마허가 제시한 ‘굿 워크’ ‘좋은 삶’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 이들 부자가 제시한 7가지 기본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건강이다. 즉 신체가 온전히 기능하는 것을 말한다. 건강은 행복한 삶의 최우선 조건임에는 이의가 없을 것 같다. 둘째, 안전이다. 즉 자신의 삶이 전쟁, 범죄, 혁명, 기타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격변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대체로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세월호사고 이후 최근의 각종 대형사고에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셋째, 존중이다. 형식을 갖추든 다른 방식으로 든 개인의 견해와 관심사를 서로 배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사회에서 갑질문화, 성차별, 장애인 차별 등 무수한 차별이 얼마나 우리 삶의 근간을 흔드는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넷째, 개성이다. 자신의 취향, 기질, 좋음의 개념을 반영하여 삶을 계획하고 실행할 모든 능력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획일적인 군사문화로 인해 개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다섯째, 자연과의 조화이다. 도시가 그 주변 시골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적 삶이란 난개발에다 농촌과의 격리로 인해 궁극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여섯째, 우정이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공동체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겪고 있는 차별이나 정치적 억압이라는 정신적 억눌림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하겠다. 일곱째, 여가이다. 그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나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여가가 없다면 진정한 문명도 없고 기계적 문명만 남을 것이다. 여가의 경제적 조건은 고역의 감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가야말로 바로 슈마허가 ‘불교경제학’에서 말한 여가의 의미 그대로이다.

스키델스키 부자가 중시한 7가지 기본재란 바로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 부자가 이러한 기본재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하고 있다.

1920년대 말 마하트마 간디가 물레를 저어 손수 옷을 짓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첫째,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 그리고 안락의 이성적인 기준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경제조직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GDP가 아닌 GHI(국민총행복)을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일하라는 압력을 줄여야 한다. 주간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법정 휴일을 늘리는 식으로 노동시간을 꾸준히 단축시키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 후지무라 야스유키 박사가 제안한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처럼 욕심을 버리고 환경을 지키면서 이웃과 상생할 수 있는 ‘3만 엔 비즈니스’를 스스로 개발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구상을 실현할 필요 있다.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지금은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도 몇 년 전부터 ‘서울시 청년수당’ ‘성남시 청년배당’과 같은 시도를 좀 더 확대해 농촌에 들어가 일하는 청년에게 ‘농촌청년기본소득’같은 것을 적극 추진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넷째, 소비하라는 압력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는 일을 해야 하는 압력을 줄이는 중요한 방식이다. 금융부문을 규제할 한 가지 방법은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수단에 토빈세와 같은 거래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최근의 ‘비트코인 광풍’을 보면서 토빈세를 제대로 적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동산 보유세’를 제대로 과세해 부동산 투기를 막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광고 줄이기가 필요하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TV 아동프로그램에서는 12세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가 일절 금지되며, 유럽에서는 광고를 해도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끝나는 부분에다 잡지 형식으로 한 덩어리로 묶어 내보내기에 TV 광고가 주는 매력을 줄이고 있다. 또한 기업체가 광고비를 업무비로 편성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소비는 우리들의 ‘필요’가 아니라 광고주의 ‘유혹’에 넘어가 대량소비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여섯째, 경제적 통합을 강력히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들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국내의 생산자원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하고, 개도국의 시장경제는 선진국의 소비 수요증가에 의존하는 수출성장모델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출성장모델에서 벗어나 일본의 미야모토 겐이치 박사가 주창하는 ‘내발적 발전’을 실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국가가 고립된 소비자의 대리인으로서만 행동한다는 허상을 벗어 버리고 제대로 된 도덕적 논쟁을 통해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정책을 새롭게 설정하는데 종교의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종교적 영감을 완전히 배제한 사회가 공동선을 추구하는 쪽으로 길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는 E.F.슈마허가 주창한 메타경제학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키델스키 부자는 우리 세대가 질문조차 잊고 포기할 뻔한, 좋은 삶을 향한 ‘인류의 오래된 미래’을 적극 되살려 내고 있다. 2018년 새해, 올 한 해 우리는 얼마나 있으면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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