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7>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7>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김창욱 김창욱
  • 승인 2018.01.18 10:09
  • 업데이트 2018.0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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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7>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작곡한 가수 김목경 출처: 다음블로그 오래된 박물관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중략>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가수 김목경이 영국 유학시절 어느 노부부를 보고 작사·작곡한 노래다. 그는 ‘한국 블루스의 대가’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오히려 낮다. 그런 까닭에, 이 노래도 김광석이 만들고 힛트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노래의 내레이터는 어느 60대 할배다. 갓 숨을 거둔 할매를 앞에 두고 지금껏 함께 나눈 시간을 추억한다. 신혼시절에는 출근길 넥타이를 매어 주고, 막내아들 대학시험 때는 불안과 초조 속에 뜬 눈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큰딸 결혼식 때 함께 눈물을 흘렸고, 세월이 흘러 모두들 떠나갈 때 우린 헤어지지 말자며 손을 꼭 잡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엊저녁, 몇몇 지인들이 모여 신년회를 가졌다. 새해로 접어든지 열흘이나 지났으나 모처럼의 만남은 차라리 반가움을 더했다. 약속한 장소까지는 지하철로 40여 분이 걸린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페이스북을 열었다. 누군지 모르는 페북 친구가 어느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택시에 탔더니, 누군가 조수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목적지가 비슷한 손님과 동승한 것이려니 했는데, 조수석 뒷면에 손글씨로 큼직하게 쓴 안내문이 붙어 있다. 거기에는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 알츠하이머(치매)를 앓고 있는 제 아내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는 내용이다. 글씨를 쓴 사람은 택시기사였고, 그는 치매 걸린 아내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조수석에 싣고 다니며 손님을 맞는 터였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그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고, 일부러 뭔가 많은 말을 시키는 것 같았다. 사탕을 달라는 아내에게 사탕을 건넸더니, 도중에 아내가 또 사탕을 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기사가 “아까 줬는데… 아, 그래 그래. 여기 있어. 맛있게 먹어”라면서 아내를 달랜다. 이따금씩 기사가 콧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아내에게 뭔가 물어보기도 했다. 기사가 “집에 빨래를 널고 나올 걸. 당신이 널 수 있겠어?”라고 했더니, 아내는 “싫어. 난 그런 거 안해!”라며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벌써 너댓 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40년 동안 이곳저곳 문화회관의 무대감독 일을 해 왔던 분도 자리를 함께 했다. 그는 오는 3월에 61세의 정년을 앞두고 있으며, 요즘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했는데, 공교롭게도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밖에 나갔던 아내가 집을 못찾아 동네 마트 앞에서 서성거리는가 하면, 집에 오면 방문 뒤에 웅크리고 숨어 있기도 하고, 출근하고 나면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와 한시라도 안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집안 맏며느리로 들어와 소처럼 일했던 아내, 그래도 시가에서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못 받은 아내, 대접은커녕 식구들로부터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 듣지 못했던 아내. 그런데 남편은 매일같이 공연이다 뭐다해서 밤 늦게 들어오고, 여자가 이것도 제대로 못하냐며 짜증을 내고 타박한 일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스치고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연민과 동정, 후회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런 마음이 없는 남정네가 어디 있을까? 한 이불 속에서 몸 비비고 살아온지 20년, 어렴풋이나마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20년 더 살면 철이 좀더 들겠지. 그리고 20년을 더 살게 되면 마침내 확철대오(廓徹大悟)의 경지에 오를 테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https://youtu.be/eNTbdlEiU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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