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에 관한 진실(前篇)
최저임금에 관한 진실(前篇)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1.24 18:22
  • 업데이트 2018.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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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에 관한 진실(前篇)

미국 패스트푸드 근로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포린어페어즈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지난 3일 “최고경영자들이 근무일 기준 3일 이내에 노동자의 한 해 연봉과 맞먹는 임금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1월 1일이 휴일임을 고려하면, 경영자들은 4일 점심 무렵까지 노동자의 연봉을 다 번 셈이다.

런던 증시 주가지수(FTSE100·푸치100) 기업 최고경영자의 연봉 중간값은 345만파운드(약 49억6900만 원)로, 정규직 노동자 평균인 2만8758파운드(약 4141만 원)의 120배이다. 푸치100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지난해 시간당 평균 898파운드(약 129만 원)를 받았다. 법정 최저임금인 3.50파운드(약 5029원)의 256배 수준이다. 영국에서 25살 이상 최저임금은 시간당 7.5파운드(약 1만778원)다. 18살 이하는 시간당 4.05파운드(약 6466원)이지만, 실습생은 3.50파운드이다.¹⁾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상위 20%의 가계소득은 84% 증가하는 동안, 하위 20%의 가계소득은 42% 증가에 그쳤다. 서민의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소비를 하고, 소비를 해야 공장이 돌고 일자리가 생기며, 다시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 증가하였다. 심화된 양극화 구조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바탕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한 결과이다.

그러나 역풍이 거세다.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된 지 채 한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고용 위축과 물가 압박 같은 후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보도가 쏟아진다. 근거가 희박한 비관적인 전망을 전제로 현실을 과장, 왜곡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일부 보수 신문과 보수 정치인을 통해서다.

최저임금 문제는 경제 정책에서 가장 논쟁적은 주제 중의 하나이다. 많은 주와 도시에서 대폭 최저임금 인상을 실험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미국 전역에 걸쳐 다양한 변종들이 있다. 미디어나 씽크 탱크(think tanks)와 활동가들의 세계에서, 최저임금 찬성자나 반대자가 되는 것은 종교적 믿음과 유사하다. 경제학 연구의 세계에서까지 결론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²⁾

이해 당사자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누구는 찬성하고 또 누구는 반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지향을 떠나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본 적이 있는가? 찬반론자들 각기 자신과 대척점에 선 입장에 대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사상이나 믿음을 반대하는 상대에게 우리가 화를 내는 정도는, 우리의 사상과 믿음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을 때 증가한다고 한다. 플라톤은 진실을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이 왜 진실인지를 알아야 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 찬성론자이다. 종종 대화의 상대가 ‘시장경제’ ‘능력’ 등등의 논거로 반대할 때 분노가 치민다. ‘나도 단순히 믿음의 소유자일 뿐인가?’ 최저임금 인상의 찬반론에 대한 글은 많다. 여러 글을 읽다가 필자의 관견으로는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의 에세이를 발견했다. 《FOREIGN AFFAIRS》 2018년 1/2월호에 실린 알랜 매닝(Alan Manning)³⁾의 ‘최저임금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the Minimum Wage)이다. 눈 밝은 독자제현과 이해를 공유하고자 2회(1월 24일,1월 26일)에 걸쳐 번역하여 연재한다.

최저임금에 관한 진실 : ‘일자리 킬러’도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미국의 출납원, 접시닦이, 아파트 관리인, 인명구조원, 수하물 계원, 바리스타, 손톱 미용사, 소매상점 직원, 가정부, 건설 노동자, 가정 보건 보조원, 경비원, 그리고 다른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한 지가 8년도 넘었다. 연방 최저임금은 7.25달러에 머물고 있다. 실질적 의미에서 이 노동자들의 소득은 2009년 마지막 임금 인상 이래 거의 13% 줄어들었다. 실질 연방 최저임금이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11.38달러(그때는 단지 1.60달러였지만)로 정점일 때의 1968년 이래로는 1/3 이상 감소한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 2017년 한 여론조사를 보면 75%가 최저임금을 시간당 9.00달러로 인상하는 것을 지지했다 - 오늘날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미의회 의사당에서 진전이 없다고 하여 최저임금에 관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사실 많은 움직임은 없다. 그러나 주 정부 수준에서,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도시 수준에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시급 15달러 투쟁”("Fight for 15")은 좌파들의 집합 나팔이 되었고, 몇몇 주목할 만한 성공도 거두었다. 미국의 29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는 현재 연방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최저임금을 시행하고 있다. 약 40개 자치체도 그러하다.

최저임금의 찬성론자들은 높은 최저임금이 모든 미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생활수준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론자들은 높은 최저임금은 일자리를 파괴한다고 반격한다. 양진영의 토론에서 흔히 감정이 넘쳐난다.

그러나 감정의 이면에서, 이론경제학과 경험경제학 둘 다가 논쟁중인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핵심은 현재 미국에서 최저임금이 일자리 킬러라는 증거는 많지 않으며, 더 올라갈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가난을 극복하고 성장의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특별히 효과적인 도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최근의 실험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2013년 워싱턴주에 있는 도시 시택(SeaTac)의 유권자들은 미국에서 최초로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올렸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 이 조치를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들은 한 투표당 합계 264달러를 썼다. 이는 기록상 가장 높은 통계치 중의 하나이다.

반면에 27개 주는 주 안의 각 도시들이 주 최저임금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반격을 하는 사람들은 호소력 있는 주장을 한다. 즉, 시장가격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도록 강제된 고용주들은 종업원수를 감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반대론자들은 이 조치가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이론을 오래전부터 인용해 왔다. “어떤 물리학자도 ‘물이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지 않는 바와 같이, 어떤 자존감 있는 경제학자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늘린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부캐넌(James Buchanan)이 1996년 월 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Gournal)에 쓴 말이다. 그는 또 말했다.

“그러한 주장이 진지하게 발전한다면, 경제학에는 최소 과학적 내용이 있다는 것마저도 부정하는 것과 같게 된다. 결과로서 경제학자들은 이데올로기적 이익의 옹호자로서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강력하지만 잘못된 주장이다. 이 견해는 무지나 정직하지 못함(dishonesty)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캐넌이 진실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많은 초급 경제학 과정에서 표준으로 가르치는 완전경쟁의 교과서적 모델은, 시장이 지시하는 수준 이상으로 임금을 올리면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어떤 지점까지 경제가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수요가 공급 아래로 떨어지는 지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중력법칙으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수요법칙으로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틀림없이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경제학 초급과정(Econ 101)이라는 행성의 노동시장을 지구라는 행성의 노동시장으로 오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델의 예측은 물리학 법칙과는 다르다. 노벨상 수상자라 하더라도 물리학 법칙과 같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에게는 언제든 비상벨을 울려야 한다.

어떤 경제학 모델의 예측력은 그것이 전제한 가정이 올바를 때만 올바르다. 그리고 완전경쟁이라는 가정은 현실 노동시장에 대한 좋지 못한 근사치이다. 완전경쟁은 노동시장이 마찰이 없다는 것을 가정한다. 이는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있어 시간과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결원 상태가 없다). 그리고 노동자는 현재 일자리의 대체 일자리를 언제든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실업은 없다). 완전경쟁의 세계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나 잃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용주가 임금을 단 1센트라도 깎으려 하면 모든 노동자는 곧바로 그 일자리에서 떠나버릴 것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으면 축하를 받고 잃으면 의기소침해진다. 새 일자리를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도 새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시간과 돈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또한 임금을 낮추면 새 노동자를 모집하여 붙잡아 두기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임금을 낮춘다고 해서 현직 모든 노동자가 즉시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포착한 경제학 모델들이 있다. 이는 아마 경제학 초급과정(Econ 101)에서보다는 상급과정(Econ301)에서 가르친다. 이 모델들은 최저임금과 고용과의 관계는 완전경쟁 모델이 예측한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완전히 경쟁적인 시장에서, 자연적 수준 이상의 최저임금은 고용이 오직 노동의 수요만으로 결정되는 지점으로 노동시장이 움직인다. 어떤 사람들은 실직하게 되고, 회사는 최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결원을 보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좀 더 정밀한 모델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고용은 수요와 공급의 두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결원과 실업이 공존한다. 회사는 취직하려는 실업자를 결원 자리에 즉시로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면, 노동 공급을 늘릴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고용 수준은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경제학 이론은 최저임금이 항상 일자리를 파괴한다거나,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다. 경제학 이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자리에 대한 최저임금의 충격은 펜과 종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곧 이 문제는 실증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1월 26일에 ‘後篇’으로 이어집니다.)

※1)전정윤, 「3일만에 노동자 연봉 벌어들이는 영국의 ‘살찐 고양이’들」, 한겨레신문, 2018.1.5. 2)Noah Smith, 「Take caution when raising minimum wages」, 『The Korea Herald』, 2018.1.15. 3)런던경제대학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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