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4>자원과 교육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4>자원과 교육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8.01.30 15:38
  • 업데이트 2018.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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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4>자원과 교육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두 문화와 과학혁명'의 저자 C.P.스노(왼쪽)와 E.F.슈마허. 출처: 브리태니카(스노), Alchetron(슈마허)

E.F.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모든 경제개발의 결정요인은 인간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것을 지속, 강화시키는 방법이 바로 교육이다. 그러므로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슈마허는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C.P. 스노(Charles Percy Snow)의『두 문화와 과학혁명(The Two Cultures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을 이야기하면서 “서구사회 전체의 지적 생활이 인문학적 지식인과 과학자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집단으로 분할되어가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며 “과학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알고 있는 정치가, 행정가, 공동체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노는 이 책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의사소통의 단절이 세계 문제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교육이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 즉 가치관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슈마허는 오늘날 전 인류가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해 있는 이유는 과학기술 노하우 부족이 아니라 지혜가 결여된 채 이러한 지식을 파괴적으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점에서 인문학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 취업전선에도 상대, 공대 출신에 비해 소위 ‘문·사‧철(문학, 사회학, 철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 졸업생의 진로는 앞이 잘 안 보인다. ‘상아탑’이니 ‘학문의 전당’이라던 대학은 ‘취업 준비학원’이 돼버린 지 오래다. 더욱이 고교시절에 문과 이과가 나눠지고, 과목을 입시에 맞춰 전략적으로 선택해서 배우다보니 요즘 학생들은 전반적인 지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문과 출신은 과학적 지식에 약하고, 이과 출신은 사회적 인식이 취약하다.

슈마허가 스노의 말을 빌려 이야기한 ‘인문학적 지식인과 과학자의 양분’을 막아내고 전인으로서의 지식 습득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2018학년도 고등학교 진학대상 학생들부터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고는 하는데 이 또한 논란을 빚으면서 입시에 미칠 영향에만 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의 경우 1970년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에 다행히 고3때까지 문·이과를 나누지 않고 모든 교과를 공부했다. 국어 한문은 물론 국사 사회 세계사 지리, 수학Ⅱ는 물론 물리, 화학, 생물, 지학을 두루 배웠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두루 배운 것이 지식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

E.F.슈마허는 『굿 워크』에서 노동과 관련해서도 교육의 방향을 다음 3가지 과제로 들었다. 첫째, 사회와 전통으로부터 배우고 여기서 제시된 길을 받아들임으로써 행복을 찾아 나간다. 둘째, 배운 지식을 내면화하고 거르고 솎아내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린다. 셋째, 앞의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한 뒤 가능한 한 자아의 소멸, 각자가 느끼는 호불호의 소멸, 자기중심적인 모든 선입견이 소멸되는 경지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슈마허는 또 사람이면 이뤄야 할 세 가지 욕구가 있는데 여기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영혼을 가진 존재로 산다는 것은 ‘영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도덕적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동료들을 섬기는 행위를 말한다. 셋째, 자율적 개인으로 산다는 것은 ‘남자로서, 여자로서’ 신이 베풀어준 재능을 창조적으로 사용하고 계발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은 이 세 가지 기본욕구가 충족되어야 행복은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대 현대사회는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되기 어렵게 하거나 심지어 전혀 충족될 수 없게 만든다며 고등교육을 포함한 교육이 이런 욕구에 무지하다고 지적했다.

E.F.슈마허는 “경제학 교육은 오늘날 경제이론의 전제조건인 인간관에 대한 인식 없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 속에 그러한 인간관이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고, 이것이 변하면 경제이론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며 “물리학이나 수학과 같은 수렴적(convergent) 문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교육, 결혼 등 발산적(divergent) 문제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타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F.슈마허는 산업자원과 관련해서도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그는 인류의 위기에 관한 로마클럽 보고서인『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를 인용하면서 “현재와 같은 자원 소비율과 그 증가율을 전제한다면 오늘날 재생불가능한 주요 자원들 대부분이 백년 후에는 굉장히 비싸질 것이며 최근 남미지역의 광산 국유화나 중동의 유가 인상 압력은 궁극적인 경제문제가 생겨나기 훨씬 전에도 정치문제가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 편재하는 천연자원으로 인해 국제분쟁 발발 소지가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슈마허는 “모든 고찰의 출발점은 빈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빈곤 수준이 부과하는 경계선이나 제약조건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며 빈곤의 요인 중에서 자연자원 부족, 자본부족, 하부구조의 불충분성 같은 물질적 요인은 완전히 2차적인 것이다. 극단적인 빈곤의 주요 원인은 비물질적인 것으로 교육, 조직, 규율(discipline) 등의 결함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개발은 재화로부터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교육, 조직, 규율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심하게 파괴되었더라도 교육, 조직, 규율 측면에서 높은 수준을 확보했던 국가들은 모두 경제기적을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슈마허는 빈곤 완화는 무엇보다도 교육, 조직, 규율 등의 결함을 제거하는데 있으며 개발의 중심문제가 바로 ‘교육, 조직, 규율’에 있다고 주장했고, 개발문제를 논할 때도 재화가 아닌 ‘사람’을 가장 우선순위에 넣었다.

다나카 유 등 일본 NGO활동가들이 엮은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번역서(왼쪽)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번역서 표지.

슈마허는 제3세계 원조에 있어서도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은 세계의 빈곤이 주로 200만 촌락, 20억 농민의 문제라는 분명한 사실로 농촌생활이 좋아지지 않는 한 세계의 빈곤은 해결될 수 없다”며 “최상의 원조는 지식 원조, 즉 유용한 지식의 증여이며 이러한 지식의 증여를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수령인을 자립적이면서 독립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발원조 과정에는 지원국과 수혜국 모두 ‘A-B-C연합’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는 관료(administration), B는 상공업자(businessmaen), C는 정보전달자(communiators)로 이 연합이 제대로 확보되었을 때 어려운 개발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해외원조(ODA)에 있어도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해외원조의 바람직한 모습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수혜국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지원국의 경제개발을 위한 기술적용 등으로 오히려 현지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면도 많이 보이고 있는 오늘날의 해외원조의 문제점을 미리 잘 짚어낸 것이다. 유엔 특별식량조사관을 역임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다나카 유 등 일본 NGO활동가들이 엮은『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에서 한결같이 빈곤의 원인으로 개발원조와 다국적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받은 자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슈마허는 “교육받은 인간이란 단순히 특권을 위한 보증수표를 획득한 게 아니라 자신의 교육을 위해 직간접 도와준 민중에게 의무를 짊어지는 것”이라며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역설했다. 새 정부 들어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큰 가운데 최근 대법관 13명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조작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주대 시인이 SNS에 올린 ‘법관 위에 시민 있다-반박성명 발표한 대법관 13인에게 고함’이라는 부제의 시 끝에 붙인 촌철살인 한마디 ‘건방진 놈들’은 읽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이런 ‘건방진 놈들’을 양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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