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 우주 검열(cosmic censorship), 그리고 물리법칙 파탄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 우주 검열(cosmic censorship), 그리고 물리법칙 파탄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18.01.31 18:52
  • 업데이트 2018.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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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 우주 검열(cosmic censorship), 그리고 물리법칙 파탄

전하를 띤 블랙홀에서 물리법칙의 파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출처: NASA, ESA

물리법칙은 미래를 예견하는가? 뉴턴역학은 초기 조건만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말해준다. 간단한 미분방정식인 뉴턴의 운동방정식(F=ma)이 그 비밀, 인과율 혹은 결정론적 의미를 품고 있다. 뉴턴역학을 보면 답은 당연히 ‘예스’이다.

전자기학은 어떨까? 맥스웰방정식에 따르면 전기장과 자기장의 초기 상태를 정확하게 알면 미래 전자기장의 상태는 정확하게 예측된다.

양자역학은? 양자역학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좀 까다롭다.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다. 즉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데 한계가 지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확률적이긴 하지만 슈뢰딩거방정식은 초기상태를 정확하게 알면 미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해준다. 양자역학도 미래를 예견하느냐는 질문에 ‘예스’라는 답을 내놓는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우주의 시공간 구조를 결정짓는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까? 일반상대성이론도 초기 시공간 상태와 그 변화율을 정확하게 알면 미래의 시공간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최근 영국물리학회(IOP)가 운영하는 Physics World.com에 따르면 포르투갈 리스본대학의 비토르 카르도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일반상대성이론이 미래를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전하를 띤 블랙홀,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Reissner-Nordstrom black holes)에서다. 이 논문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최근호에 실렸다.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은 구대칭이고 전하를 띠는 별에 대한 아인슈타인 중력장 방정식의 풀이로 탄생한 개념이다. 발견자인 독일의 한스 라이스너(Hans Jacob Reissner)와 핀란드의 군나르 노르드스트룀(Gunnar Nordström)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은 두 개의 지평선, 일반적인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과 코시 지평선(Chauchy horizon)이 존재한다. 문제는 코시 지평선 안에는 초기 조건으로 결정되지 않는 시공간이 생긴다는 것, 다시 말하면 물리학 법칙이 파탄된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에게는 특이점도 문제이지만 물리학 법칙을 파탄내는 코시 지평선은 큰 골치거리였다. 그런 차에 1969년 로저 펜로즈가 물리학의 수호천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바로 우주 검열 가설(cosmic censorship hypothesis)을 제창한 것이다. 자연적인 우주에서 물리학 법칙을 파탄내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열한다는 가설이다.

우주 검열 가설에는 약한(weak) 검열과 강한(strong) 검열 두 가지가 있다. 약한 우주 검열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특이점은 모두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숨겨져 있다는 가설이다. 특이점의 문제를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한정시키겠다는 타협인 셈이다.

강한 우주 검열 가설은 ‘초기 조건으로 결정되는 최대 시공간보다 더 큰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력장 방정식에 초기 조건을 대입해서 구할 수 있는 시공간 외에 시공간이 생긴다면 이는 곧 일반상대성이론의 결정론이 파탄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강한 우주 검열은 일반상대성이론의 결정론에 어긋나는 현상은 우주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가설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블랙홀 개념은 펜로즈의 우주 검열 가설이 나오기 훨씬 전에 나왔다. 물리학 법칙을 붕괴시킨다는 우려를 자아냈던 코시 지평선은 외부의 섭동에 의해 매우 불안정해져 이내 특이점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동안 물리학자들은 코시 지평선을 가진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물리적 개념일 뿐이라고 안도했다.

그런데 이번 가르도소 연구팀은 코시 지평선의 불안정성이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 Λ)가 개입될 경우 불안정성이 약화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코시 지평선의 유령을 되살린 것이다.

우주 상수 Λ(람다)는 우주 팽창을 가속시키는 역할을 하는 어떤 에너지, 즉 암흑 에너지로 간주된다. 연구팀은 우주 상수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 경우 코시 지평선의 불안정이 완화된다는 사실을 보였다.

코시 지평선 불안정의 강도는 블랙홀 외부의 섭동이 얼마나 빨리 붕괴 되는가에 달렸다. 즉 블랙홀 외부의 섭동이 빨리 붕괴되면 그만큼 코시 지평선의 불안정이 더 약화된다. 그런데 여기에 양(positive)의 우주 상수 값을 대입하면 블랙홀 외부의 섭동 붕괴가 더욱 빨라지고 코시 지평선의 불안정은 더욱 약화된다. 바꿔 말하면 우주 상수로 인해 코시 지평선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현상을 블랙홀의 감쇄 진동을 나타내는 쿼지노르말 모드(quasinormal modes)라는 수치분석 방법으로 풀어냈다. 이들은 블랙홀의 질량과 전하 값과 코시 지평선의 관계를 도출했다. 전하가 최대치인 블랙홀의 경우 코시 지평선이 존재하고, 코시 지평선 너머는 초기 조건으로 정해지지 않는 시공간이 존재한다. 강한 우주 검열 가설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 따르면 만약 누군가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의 코시 지평선 안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그의 미래 운명을 얘기해줄 수 없다.

연구팀은 라이스너-노르드스트룀 블랙홀의 코시 지평선 문제를 대전되지 않고 회전하는 블랙홀(커 블랙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대 속도로 회전하는 블랙홀 역시 강한 우주 검열을 위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