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그물은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¹⁾
하늘의 그물은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¹⁾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2.01 11:38
  • 업데이트 2018.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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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그물은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¹⁾

숲에서 본 은하수. 출처: 사이언스익스플로러.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 같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새들은 두피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게임이 있다. 대부분의 피부기생충은 자기 부리로 잡아낼 수 있지만, 위치가 머리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동료가 잡아주는 수밖에 없는데,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머리 청소를 부탁받은 상대 입장에서는 진드기를 잡아주어도 좋겠지만 상당한 시간과 정력이 드는 데다, 다음에 자기가 필요할 때 상대가 은혜를 갚아줄지도 신경이 쓰인다.

‘선심파’는 상대가 누구든 부탁받기만 하면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성심성의껏 진드기를 잡아준다. 그러나 자신이 부탁했을 땐 우연히 같은 선심파를 만난 경우가 아니면 거절당하기 일쑤다. 이에 비해 ‘이기파’는 자기밖에 모르니까 상대가 선심파건 같은 이기파건 간에 남의 진드기를 잡아주는 일은 일절 안 한다. 그런데도 자신이 부탁했을 때는 상대가 마침 선심파면 무난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드기를 잡아주는 데 드는 정력과 비용을 1회당 5점, 진드기가 없어짐으로써 생기는 건강상의 이익을 1회당 10점으로 계산하는 반복 게임을 해 보자.

선심파는 비용은 높지만 이익은 보통이고, 이기파는 비용은 0이고 이익은 보통이다. 이래서야 이기파가 유리하므로, 몇 만 년이 지나면 이 종류의 새는 거의 이기파로 채워질 게 뻔하다. 자연의 법칙은 단순·명쾌하다. 되도록 효율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살아서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생물의 편을 들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일단 이기파만 남게 되면, 거기에는 돌연변이나 이동에 의해 선심파가 끼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용만 당하고 비용만 늘어나 망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반면 선심파만 사는 집단에는 이기파가 얼마든지 끼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기파만 살게 되면 머리 청소를 해줄 새가 없어지므로 머리가 진드기투성이가 돼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노름판 주인인 자연이 빙그레 웃으며 이 종을 멸종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멸종하기 전에 조화가 일어나 기억력이 좋은 ‘원한파’가 출현한다고 치자. 이 유형은 자신이 받은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서, 잘 도와준 상대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갚고, 배은망덕한 자에게는 똑같이 앙갚음해주는 행동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선심파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이지만 이기파에게는 거북한 상대이다. 이기파는 원한파를 처음 한 번밖에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원한파는 상대가 같은 원한파이거나 불쌍한 선심파이면, 반드시 서로 머리 청소를 해주면서 매회 이익 10점에서 비용 5점을 빼고, 플러스 5점을 확보해 간다(상대가 이기파면 2회째부터는 속지 않으므로 이익·비용 모두 0점으로 결코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 선심파로서도 자기와 다른 유형인 원한파를 만날 경우에도 플러스 득점을 올린다.

이렇게 해서 몇 만 년이 지나면 원한파의 비율은 증가하고, 이기파는 소수로 전락한다. 이기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선심파도 원한파의 번영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 꽤 많이 살아남으므로 그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과반수의 원한파, 그보다 적은 수의 선심파, 더 적은 수의 이기파라는 비율로 낙착돼 안정될 것이다.

어딘가 인간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은가!²⁾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평소 뜸하게나마 내왕을 하는 친구들보다 가물거리는 얼굴들이 더 많은 모임이니 가슴 설레기까지 한다. 회칙과 양복을 챙겨들었다. 인근이거나 멀어도 시간 낼 수 있는 고등학교 동기들이 두 달에 한 번씩은 보고 지내자며 모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회칙은 나에게 떠맡겨졌다. 자기들 보기에 글 몇 줄 읽고 지내는, 백수 비스름한 내가 안성맞춤이었을 터였다.

모처럼 넥타이를 매보려다 낭패를 봤다. 그래도 꼴이 좀 나는 순모 양복을 꺼내보니 좀이 슬었다. 윗도리 옷깃과 하의 발목께 깨알만한 구멍이 서너 개씩 나 있다. 입을 일이 없어 몇 년을 옷장에 묵히고 관리를 안 한 탓이다. 안타까웠다. 적어도 이 양복만큼은 볼품도 볼품이려니와 사연이 있는, 개인적 감정이 서린 물건이었다.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이건 짜깁기도 못해요. 버려야 되겠네. 통째로 갈려 해도 오래되어 맞는 천을 구할 수가 없소.” 참 명쾌한 처방이다. 대수롭지 않게 쓰레기 취급을 한다. 내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정형외과 의사가 손가락 한두 개 절단하는 수술에 별 감정을 싣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 환자는 평생 한으로 남을 악몽이겠지만, 의사는 팔뚝도 뎅겅 떼어낸 이력도 있을 테니까.

도탑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면 있는 세탁소에 찾아갔는데, 상대의 감정을 조금은 살펴 말할 수는 없는 일일까? 간단명료한 처방을 내린 후 내 양복에는 더 이상 언급이 없다. 그리고 누구는 쫄딱 망해 귀향 했느니, 또 누구는 마누라가 어떠니 운운, 시시풍덩한 소재를 아주 진지하게 대화랍시고 한다. 이 세탁소 주인은 좀 먹은 양복에 대한 아픔 너머 자신의 무정한 마음결이 아픈 가슴을 더 후벼 판다는 이치는 염두에도 없으리라. 어차피 사람들은 죽어봐야 저승을 알 터, 타인의 아픔에 매정한 사람, 자신이 아플 때 홀로 울고 있음을 보리라.

동기회든 동호회든 회칙은 여기서 저기였다. 각종 회칙을 10종류 이상을 모아서 정독해본 결과였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 바람직하지 몇몇 못한 조항이 읽어본 모든 회칙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우리 형편에 맞춰 10여 종의 회칙을 짜깁기하고, 내 색깔을 입혀 몇 가지 조항을 고치고 삽입했다.

저녁식사에 곁들여 소주잔이 몇 순배 돈 후, 시독회試讀會를 가졌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복사본을 한 부씩 돌리는 것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한데 별스레 서너 친구는 각 조항을 하나씩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동의를 구하자고 했다. 물론 나도 여느 회칙과 색다른 조항이 있으므로 확인 절차를 거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내 색깔을 드러낸 4가지 중 처음 것은 비교적 군말 적게 넘어갔다. 회비는 2만 원으로 한다는 거였다. 적다는 의견이 많았다. 모아서 단체 여행도 가자면 5만 원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럴 때는 그때 가서 각자 거출하여 가자며 누구나 부담이 없도록 하자며 2만 원 안을 밀어붙였다.

5만 원을 주장하는 친구들은 매정한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무심한 사람들이다. 내가 작정을 하고 회비를 2만 원으로 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농사를 짓든 정년을 맞든 호주머니 문제에서 벗어난 이들이 많으리라. 그러나 물려받은 애옥살림에서 못 벗어난 친구들도 있다. 우리 모임은 사치스런(?) 동호회가 아니다.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과 교제의 편안함을 갖고자 하는 모임이다. 이런 모임의 기준은 중간이 아니다. 상중하에서 ‘하’에 맞춤이 옳지 않은가! 내 속셈을 언표言表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돈 세상이라지만 그들이 자존감을 몇 푼에 저당 잡히지는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항에는 핏대를 올리며 땡고함을 치며 반대하는 친구들이 여럿이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들은 대체로 학창시절에 교무실에 많이 불려가던 치들이었다. 그들 중 도덕책과는 거꾸로 살아 사회 우등생이 되었는지 성공이란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불참 벌금은 없다”, “1차는 아무도 낼 수 없다”

회비 2만 원 중에서 1만 원은 적립하고, 1만 원은 당일 식사대로 사용한다. 3회 연속 빠졌을 경우, 참석한 4회째 회비는 당회 회비 2만 원, 적립금 3만 원, 합계 5만 원만 내면 전부 해결된다. 불참하여 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적립금만 보충한다는 의미이다.

불참 벌금으로 매회 3만 원을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회비 정도는 돼야 한다고 약간 톤을 낮추는 친구도 있었다. 벌금이 없으면 동기회를 소홀히 생각하여 모임이 깨진다는 구실도 덧붙였다.

어떤 모임이든 조직이든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하 많은가! 가난해서 힘없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가장 의지가지가 되어야 할 곳은 법 전문가요 집행자인 검찰과 경찰이다. 한데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곳이 검찰과 경찰이다. 왜 그럴까?

우리 모임은 강제적인 의무 단체가 아니다. 그냥 스스럼없이 그리운 얼굴들 보고 싶어 정기적으로 만나고자 할 뿐이다. 참석을 강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 벌금이라니! 취지에서 너무 멀리 간 게 아닌가. 세상사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여가선용의 모임을 개인사의 첫머리에 두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가의 주인으로서 투표는 포기가 불가능하고 불행사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임의 모임에서 참·불참의 자유까지 박탈당하고 살아서야 어디 쓰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에 넘치는 부 축적자는 대개 상속과 운과 그리고 약간의 능력과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을지언정 자신의 가족을 건사할 정도의 그만그만한 부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 자기 인격을 돈으로 칠갑한 이들이 정기 모임에서 회비와 상관없이 1차 식사대를 낸다? 모욕이다. 아무런 꿀림 없는 동기회 모임에서 나름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이 남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이래서야 어디 밥맛이 나겠는가.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1차는 정해진 1만 원으로 식사에 간단히 소주 몇 잔 기울이며 정담 나눈다. 그리고 1차 공식 모임을 파하고 나서, 더 어울리고 싶으면 2차를 가면 된다. 거기는 공식 동기회와 무관한 자리이다. 돈깨나 있는 친구가 돈지랄을 하든, 품위 있게 간만의 친구들에게 대접을 하든, 공동부담을 하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용무든 기분이든 간에 1차 마치고 돌아가고 싶으면 ‘바이바이’하는 것도 각자의 마음먹기일 뿐이다.

무위최귀無位最貴라 했던가. 직위가 없으니 나보다 높은 친구도 낮은 친구도 없다. 거침없이 살아왔으니 동기들 중에서는 내 말발이 좀 세다. 말발이 제법 먹히는 편이다. 하여 쑥덕거리는 뒷공론을 뒤로 하고 짝짝짝 박수로 내 원안을 통과시켰다.

기어이 터질 게 터졌다. 문제의 네 번째 조항이다. “감사를 두지 않는다. 영수증 첨부도 없다.” 덧붙여 초창기 1년은 내가 총무를 맡는다고 했다.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이들은 내가 총무 맡는 것은 인정하나, 감사를 하지 않고 영수증 첨부를 하지 않는 법은 없다고 아주 자신에 차 반박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언성을 높이며 지론을 개진했다.

그런 법이 없다고? 법法이 뭔데? 글자 그대로 물(水)이 흐르는(去) 것이다. 회비 2만 원에서 1만 원은 적립한다. 그 결과는 감사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나머지 1만 원, 당일 다 쓴다. 좀 남을 수도 모자랄 수도 있겠지. 그건 총무가 알아서 하면 된다. 기천 원, 기만 원 땜에 영수증 모으랴 계산하랴, 시간은 공을 생기는 건 줄 아나. 다 돌아가면서 총무를 할 것인데 비용과 편익관계를 볼 때, 그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한단 말이냐.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임의 취지가 뭐냐? 얼굴 한 번 보고자 하는 것 아니냐. 못 미더운 사람이 왜 보고 싶냐? 같은 교복 입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스승께 배웠다 해도 다 다르다. 인정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총무 맡은 친구가 좀 비리해서, 심보가 나빠서 비리를 저질렀다고 치자. 그게 얼마가 되겠노? 차라리 그런 친구가 안쓰럽지 않나? 우리가 보듬어 줘야 할 친구가 아니냐. 아니라면, 안 보면 될 게 아니냐. 안 나오면 돼. 그리고 감사를 안 해도 영수증 안 붙여도, 다 안다.

미안하다, 문자 하나 쓸게. 뇌물에 대한 양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각설하고 『소학』에, 천지지지 아지 자지 하위무지(天知 地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라 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 어찌 알지 못한다고 하는가, 정도로 새긴다. 또 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고, 하늘 그물은 넓고 넓어 엉성한 것 같지만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고 했다.

믿자. 어떤 모임이든 감사 없는 회칙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없애자. 믿었다 낭패를 봐도 손해 날 게 별 없다. 이런 기회는 다시 없다. 약간의 다름은 개 물려 보내버리고 우리 이번 기회에 서로 믿어 더욱 그리운 사람이 되어 보자. 내가 이 조항을 마련한 이유다.

“씨발, 공자왈 맹자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아 새끼야! 네, 똑똑한 줄 알았는데, 겉똑똑이였구만. 씨발, 감사도 없고 영수증도 필요 없다니, 그런 법은 없어 얄마!”

하면서 주먹을 들이댄다. 술병까지 들었다 놨다 한다. 종만이다. 취기가 핑핑 돌아 있었다. 건건이 트집을 잡아 시비조로 대거리하던 친구이다. 모르는 바가 아니다. 종만이가 참석한다기에 애당초 각오하던 바였다. 그와 나는 학창시절부터 노는 물이 달랐다. 그 후 지금까지의 역정歷程도 판이하다. 친구들이 사위하는 듯하니 이런 식으로라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으리라.

“야 종만이 새끼야. 말로 해. 꼭 한 번 뛸래? 나도 성질이 지랄 같으니까 송림에 가서 한 판 뛰자. 씨발놈이 제만 성질이 있는 줄 아나.”

삼권이가 나섰다. 그는 체질 상 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정말 대판을 벌일 기세다. 내가 어깨로 삼권이 가슴을 밀어붙여 제지했다. 그리고 손목을 잡아끌어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나는 아직도 세상물정에 어둡고(‘不惑’이 아니라 惑), 살아가는 뜻도 모르며(‘知天命’이 아니라 不知天命), 싫어하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내며(‘耳順’이 아니라 逆耳), 심지어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而立’이 아니라 不立).

그러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란 말을 좋아한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어디로 가도 결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의 격, 인격 말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더러 새벽 홀로 앉아 있을 때 그 맑은 양심만은 그러하다.

종만이가 밉지 않다. 자신이 살면서 학습하며 성립된 세계관에서는 당연한 반응일 터이다. 삼권이도 고맙다. 평소 그의 융통성 없으리만치 꼿꼿한 인품을 존중해 왔다. 내 자신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일에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게 내 정체성이니까.

길, 사람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된다. 가지 않고 길이 없다고 한다. 길에 특허가 있을 리가 없다. 잡목 우거져 있어도 헤치고 걸어 나아가면 길이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했지. 자신의 친구는 제 그림자와 양심뿐이라고.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욱 총총히 빛나는 하늘을 다시 쳐다본다. 저 하늘을 믿는다. 내 양심과 더불어 물리적인 하늘이 아니라 하늘이라 이름 하는 세상의 이치를 말이다.

※1)『노자』, 제73장. 본문 참조. 2)요리후지 가츠히로 지음/노재현 옮김, 『현명한 이기주의』(참솔, 2001), 149~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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