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이재용과 '철부지'들
석방된 이재용과 '철부지'들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2.06 10:39
  • 업데이트 2018.0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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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된 이재용과 '철부지'들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이 5일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출처: jtbc 캡쳐

작약芍藥의 사자使者¹⁾

요시오까 덴시찌로는 검성劍聖 야규 세끼슈사이에게 검담劍談을 신청한다. 병법의 가문으로서 요시오까 가家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야규 가家보다 격이 높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덴시찌로는 이런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세끼슈사이는 간단한 편지를 써서, 편지를 병에 꽂아 놓았던 작약 한 가지에 말아, 접어서 양끝을 붙이고는 사자使者에게 건네주면서,

“세끼슈사이는 약간 감기 기운 때문에 대신해서 대답을 갖고 왔다고 하고, 애송이의 인사를 받아 가지고 오너라.”

사자는 한 송이 작약을 덴시찌로 앞에 내어 놓았다. 그는 편지를 풀어 읽어보았다. 완곡히 거절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덴시찌로는 편지를 둘둘 말았다. 그리고 작약의 가지를 되돌려 주자, 사자가 정중히 말했다.

“저, 이것은 여행 중의 위로로 가마라면 가마 끝에, 말이라면 말안장의 어딘가에 꽂고 돌아가시라는 세끼슈사이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아니, 이게 선물이라고?” 덴시찌로는 눈을 떨구고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분노의 기색을 띄었다. “흠! 작약은 교또에도 피어있다고 말해 주시오!”

“작약은 버리고 왔느냐?” 세끼슈사이는 사자에게 물었다. 덴시찌로가 머무는 여관집 소녀에게 주고 왔다고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그런데, 요시오카의 아들 덴시찌로라고 하는 자가 그 작약을 손에 들고 보더냐?” “네, 편지를 풀 때······.” “그리고 나선?” “그대로 돌려줬어요.” “가지의 자른 곳을 보지 않더냐?” “별로······.” “아무도 그곳에 눈을 멈추며 말하는 사람이 없더냐?” “예.”

세끼슈사이는 벽에다 대고 말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역시 만나지 않기를 잘했군. 만나 볼 만한 인물이 못 돼. 요시오까 가家도 겐보 일대一代로 끝나겠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풀려났다. 그래서 그는 행복할까?

‘안태근 성추행 사건’의 장본인 전 검사장 안태근, 강제성추행은 2012년 말까지는 친고죄여서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행복할까?

여상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81년 ‘간첩 조작’ 사건의 고문 피해자 석달윤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4년 재심은 석달윤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SBS 제작진이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는데 책임을 느끼지 못하냐”고 묻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여상규는 행복할까?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의 주역 양승태 전 대법원장, 법학교수 등 120명에게 이 의혹과 관련해 고발당했다. <더 팩트> 취재진이 성남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정책과 사법부 체계 등에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낸 법관들의 목록을 작성·관리했다는 의혹에 대해 말해 달라”고 물었지만 오히려 역정을 냈다. 재차 물음에도 말이 없다가 취재진의 취재에 “예의가 있어야지”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교회를 빠져 나갔다.²⁾ 양승태는 교회에 다니면서 ‘예의’를 지키니 행복할까?

법원은 이건희에 이어 이재용에게도 면죄부를 줬다. 36억 뇌물을 인정하고도 이재용을 풀어줬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사상 최악의 ‘재벌 봐주기’ 판결로 기록될 것이며, 이는 ‘정치권력 위에 재벌’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나뭇잎 하나 떨어짐만 봐도 가을이 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물며 춥고 어둔 밤 1700만 촛불을 보고도 세상이 바뀌었음을 모른단 말인가!

어쩜 그들은 떨어지는 낙엽을 무더기로 맞으면서도 가을이 왔음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어차피 호랑이 등에 탄 신세가 아니던가. 그렇게 권력과 자본에 따리꾼으로 살아왔다. 자신들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학습한 ‘경험의 감옥’에 갇힌 어리석은 영혼들이 것이다. 하여 낙엽을 헤치며 씨앗을 뿌리려는 철을 모르는 철부지不知들에 다름 아니다.

권력이 건재하다고? 특히 자본권력은 더욱 막강하다고? 천만에!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이 아니고 ‘안태근 성추행 사건’이라고 한다. 여상규 국회의원직 박탈 청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양승태는 고발에 고발을 당해 모두 7건이나 검찰에 접수되었다.

앞으로 촛불은, 재벌 회장이나 대주주 개인 등 오너(총수)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해를 끼치는 오너리스크(owner risk)는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하위층의 체력이 튼튼해지면,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논의도 힘을 받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석방으로 의분義憤을 품을 수는 있으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서울 구치소에 353일 간 구속 수감했지 않은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다는 사람이 자식에게 물려준 유산이 고작 구치소 수감이었던가? 장삼이사도 자식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하지 않는다. 재벌보다 더 많은 부는 축적할 수 없지만, 더 행복할 수는 있다. 재벌 회장보다 더 많은 부를 물려줄 수는 없어도 더 많은 사랑은 남겨줄 수 있다.

역사는 장기적으로 봐, 결코 후퇴하는 일이 없다.

※1)에이지 요시까와 지음/신동욱 역, 『미야모도 무사시』(고려문화사, 1993) 2)이원석 외 2, <더 팩트>, 2018.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