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라고?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2.15 15:52
  • 업데이트 2018.02.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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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라고?

복은 주고 받을 게 아니라 우리가 지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픽 출처: 유튜브

경허 스님이 천장암에 있을 때의 일이다. 속가의 형님인 주지 태허 스님과 함께 어머니를 천장암에 모시고 있었다. 하루는 경허가 공양 시간에 즈음해서 어머니 박 씨의 방으로 갔다.

“어머니께서 요사이 좀 이상하십니다.” “내가 이상하다니?” “법당에 들어가시지도 아니하고, 염불 외우시는 것도 하지 않으시고, 부처님께 예불조차 드리시지 아니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아, 그거야 늙고 귀찮아서 그렇지. 그리구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배운 것이 없어서 그런지 그 염불도 잘 외워지지가 않아.” “그러실수록 더 열심히 일구월심日久月深 외우시고 정성을 들여야지요.” “아, 그렇다구 설마한들 내가 극락왕생 못할라고. 아들을 둘씩이나 부처님께 바쳐서 스님이 되어 계신데, 안 그런가?”

“어머니.” 경허는 간곡하게 어머니 박 씨를 불렀다. “아들들은 아들들이고, 예불 드리고 마음을 닦고 정성을 드리는 공부는 어머니 당신께서 하셔야 합니다.” “아들들이 밤낮으로 염불하고 예불 올리고 하는데 나까지 해야 한다구? 부처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청상과부가 되어 아들 둘을 고스란히 바쳤는데 그만한 것도 모르실려구. 그리고 염불이건 예불이건 그런 건 이 에미를 생각해서 아들들이 대신 해주면 될 것 아니겠어?”

늙은 어머니는 두 아들을 출가시켜 스님이 된 것만 자랑으로 여길 뿐 막무가내였다. 그때 마침 사미승이 아침 공양상을 들고 들어왔다. 모친이 수저 들기를 기다린 경허는 나지막이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오늘 아침 공양은 어머니 몫까지 두 그릇을 다 제가 먹으면 어떻겠습니까?” “무엇이라고 내 밥까지?” “아니면 어머님께서 제 밥까지 두 그릇을 다 잡수시든지요.”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 “어머님과 저는 모자지간이니 어머니께서 제 대신 제 몫까지 밥을 두 그릇 다 잡숴주시면, 저는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부를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신 먹어주면 배가 부르다니 무슨 말씀이신가?”

“어머님이 저 대신 잡숴줘도 제 배는 부르지 않게 되나요?” “아, 그야 이를 말씀이신가. 원, 세상에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들어보겠네.” “허허허 그것 보십시오. 어머니, 어머님이 제 밥까지 잡숴주신다고 해도 제 배는 불러지지 않을 것이니, 제 밥은 제 입으로 제가 먹어야 제 배가 불러지는 법입니다. 예불을 드리는 것도 염불을 하는 것도 불공을 드리는 것도 꼭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시구먼. 내가 마음 공부 닦지 아니하고 내가 불공을 드리지 아니하면, 아무도 대신해서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신가?”¹⁾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라고? 누가 주는데 복을, 그것도 많이 받으라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그 ‘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쨌든 우리는 복을 참 좋아한다. 살아서 받는 복도 모자라 죽어서 받는 복, 곧 명복冥福까지 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한국인에게 양반, 상민 가릴 것 없이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가장 보편적인 행복관, 곧 복의 표상이란 다른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돈이 많고, 높은 벼슬을 하고, 자식을 많이 두고, 오래오래 사는 것을 복으로 여겨왔다. 예전에 베갯모 같은 데에 흔히 수를 놓았던 여섯 글자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가 그것이다.²⁾

한국의 기층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복을 비는 사상’(祈福思想, 기복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글로 미루고, 부富와 귀貴에 대해 현실적으로 살펴보자.

부 곧 재화는 무한하지 않다.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복이란 말에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전제하는 게 아니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느닷없이 돈벼락을 맞고 싶은 바람이다. 로또 복권을 예로 들어보자.

억세게 운이 좋아, 혹은 복을 받아 당첨되는 사람이 매주 나온다. 그렇지만 그 당첨금은 ‘꽝’인 복권을 산 사람의 희생으로 모인 돈이다. 전체 복권 판매 금액의 얼추 반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새어나간다. 1등 당첨 확률 1:8,145,060이 문제가 아니다. 복이라는 게 남의 불복不福, 곧 희생으로 결과하는 것이라면, 그런 복을 비는 행위는 비도덕적이지 않은가! 남의 불행을 행복의 원천으로 삼으라는 기복祈福 덕담은 반사회적이라 대단히 위험한 말치레일 뿐이다.

귀貴에 대한 현실적 용어는 ‘승진’이나 ‘취직’일 수 있겠다. 아까도 말했지만 복이란 말에는 정당한 대가라는 의미가 제외되어 있다. 승진 자리나 취직 자리 역시 무한하지 않고 한정되어 있다. 자, 그렇다면 승진이나 취직 복을 비는 행위는 정당한 남의 자리를 빼앗으라는 의미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비약일까? 그러나 분명한 건, 자격 없는 내가 복을 받아 취직이나 승진을 하게 되면, 자격 있는 취업 희망자나 승진 대상자는 억울하게 탈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라는 덕담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주기도문을 떠올린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 6:12) 너희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14-15)

신앙 여부를 막론하고 세상의 철리를 담은 금언이 아닐까? 용서를 받고 싶으면 먼저 용서를 하라, 곧 복을 받고 싶으면 먼저 복을 베풀라는 소중한 예수의 가르침이다.

불교의 가르침 또한 마찬가지이다. 복을 순전히 수동적, 운명적인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 인위적으로 만들라는 복전福田, 복인복과福因福果가 그것이다. 누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면 복밭에 복을 심어서 열심히 가꾸면, 복이라는 결실을 얻게 된다. 복의 원인을 자신이 만들어야 복이라는 과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아니 현재에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다. 가당찮고 천박한 입발림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그 위하고자 하는 마음결은 보듬을 만하지만, 성찰이 없는 덕담이다.

내일이 설날이다. ‘새해 복 많이 받게/받으셔요/받으십시오’란 덕담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나는 ‘새해 복 많이 짓게/지으셔요/지으십시오’란 말을 많이 할 것이다.

두루두루 새해에는 복을 많이 지읍시다. 그래서 무술년 내내 복을 많이 결실하기를 빕니다.

※1)윤청광, 『고승열전 14. 경허큰스님』(언어문화, 1996), 158~161쪽. 2)최정호, 『복에 관한 담론』(돌베개, 2010), 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