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21>편지
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21>편지
  • 김창욱 김창욱
  • 승인 2018.02.23 09:39
  • 업데이트 2018.02.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21>편지

<편지>를 노래한 어니언스(이수영·임창제).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이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 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들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를 보낸다

임창제가 작사·작곡한 <편지>(1973)는 이수영·임창제의 포크 듀엣 ‘어니언스’가 불러 힛트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남성 듀엣의 화음이 돋보인다. ‘어니언스’(Onions)는 ‘양파들’이라는 뜻인데, ‘아무리 벗겨도 양파 그대로’라는 의미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벌써 45년이라는 긴 세월이 감쪽같이 지났다. 당시 외삼촌은 교육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 근방 단칸방에서 자취를 하는 중이었다. 외가는 살림살이가 여의치 않았으나, 대처(大處)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외할매가 가끔씩 밑반찬이나 해조류(海藻類) 따위를 부려놓고 가곤 했다.

외삼촌의 단칸방에서 하루를 묵던 날, 그는 옥상에 올라가 장독에서 된장이며 고추장을 떠다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집에 얹혀살면 끼니때마다 밥상을 받고 살 수 있는 건데, 외삼촌은 혼자라서 밥상도 직접 차려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힘들다기보다 오히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든 먹고 싶은 것 다해 먹을 수 있으니까.

라디오에서 <편지> 노래가 흘러 나왔다. 부드럽고 풋풋한 목소리였다. 음악을 좋아했던 외삼촌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이따금씩 콧소리로 흥얼거렸다. 요즘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구나. 그런데,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눈물에 편지까지 다 젖었을까, 울어버릴 만큼의 진실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많았다.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입을 닫는다. 봉투 앞면에는 받을 사람, 반대편에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각각 나눠서 쓴다. 그런 다음, 봉투 앞면 오른쪽 상단에 침을 묻혀 우표를 붙이면, 서울·광주·대구·부산·대전… 배달이 안 되는 곳이 없었다.

편지는 보내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이에 못잖게 받는 즐거움도 컸다. 어디서 왔을까, 누가 보냈을까, 무슨 내용일까? 편지에는 느림과 기다림, 설렘과 떨림의 미학이 있다. 마치 밥이 다 된 뒤에도 뜸을 들여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달은 편리함과 안락함을 우리에게 허락했다. 그런 한편 문명의 발달은 도리어 우리의 삶을 바쁘게 만들고, 여유나 낭만같은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잃게 만들었다. 더 이상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유치환, 행복) 쓸 일이 없고,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안도현, 바닷가 우체국)의 우체국을 바라 볼 까닭도 없다.

편지는 무슨! 메일도 있고, 문자메시지도 있고, 카톡도 있지 않는가? 편지 보내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우체통이 무에 필요할 것인가. 이제 빨간 우체통마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으니, 어찌 기다림과 설렘이 있을 수 있으리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집 우편함에는 간간이 편지가 날아든다. 예컨대 지방세 납부 고지서, 자동차세 연납 고지서,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 신용카드 고지서 따위가 그것이다. 편지는 어김이 없고, 빈틈도 없다.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

편지 https://youtu.be/KOWDNqGhd-U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