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고다이라 우정과 위안부 문제
이상화-고다이라 우정과 위안부 문제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3.03 14:09
  • 업데이트 2018.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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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고다이라 우정과 위안부 문제

이상화를 위로하는 고다이라의 우정어린 모습이 아름답다고 일본인들이 모두 아름다울까? 2월 18일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500m 결승전이 열린 강릉스피드스케이트장. 출처: KBS 중계 캡처

아름답다.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라이벌끼리의 우정은 아름답다. 인간은 본디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이 태생적 자기중심성, 곧 이기심은 인류가 빙하기의 엄혹한 자연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드디어 영장靈長으로 발전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만큼 이기심은 힘이 세다.

라이벌을 존중할 수 있으려면 이렇게나 드센 이기심을 넘어설 수 있는 더 큰 덕성을 길러야 한다. 이상화-고다이라의 우정은 그 덕성의 체현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화-고다이라의 우정이 아름다우니, ‘일본인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소나무 숲에는 소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물속에 물만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내 마음속에도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아베 수상은 일본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뿐이다. 이마저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일본인 가운데 소수 우파를 대변할 뿐이다.¹⁾

우리는 종종 부분과 전체를 혼동한다. 숲을 조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실의 맥락을 제대로 짚기 위해서는 나무 하나 하나에 대한 관찰도 그만큼 중요하다. 물론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지식을 숲 전체에 대한 이해로 가름하는 ‘지적知的 게으름’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합의’에도 불구하고, 주지하다시피 해결은커녕 더욱 꼬여가는 형국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또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일본의 진보 월간지 『世界』 2018년 3월호에 실린 변호사 카와카미 시로(川上詩朗)의 글은 필자에게 위안부 문제를 보는 정확한 안목을 주었다. 이에 혹몰라 독자제현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번역하여 싣는다.

한일합의의 재검증-‘위안부’문제의 ‘해결 방안’²⁾

2017년 12월 27일, 한국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양국의 합의(한일합의, 2015년 12월 28일)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집약하지 않고 합의에 이르렀다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검정 보고를 공표했다. 또 다음날인 28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합의에는 ‘중대한 흠결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하며, ‘이 합의로서는 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런 한국에 대응하여, 일본 미디어는 ‘일한합의의 <검증> 더 이상 책임전가는 허용할 수 없다’(산케이 신문)는 등 한국정부를 비판하고, 일본정부 관계자도 한일합의를 ‘1밀리도 움직일 수 없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고 하는 등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한국정부의 추가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는 일본정부의 자세를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은 83%라는 여론조사도 공표되었다(요미우리 신문).

이와 같이 일본 국내에서는 한일합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한일합의에 의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이미 곤란하게 되었고, 한일합의는 좌절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한일합의는 좌절에 이르게 된 것일까? 일본 미디어는 그 원인을 오로지 한국정부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책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좌절된 원인을 해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일본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대응을 검증하고 이 문제의 진정한 ‘최종적인 해결’이란 무엇일까를 밝혀보고 싶다.

<한일합의의 재검증-‘위안부’문제의 ‘해결' 방안>을 보도한 일본 진보 월간지 『世界』.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기본구조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일양국의 정치적·외교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확실히 이 문제에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일본군이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하는 인권문제이다.

위안부 문제를 국가 간의 정치적·외교적 측면만으로 파악하면, 위안부 문제의 기본구조가 국가(한국) 대 국가(일본)의 이극구조二極構造가 되어, 개인(전前 ‘위안부’)이 매몰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인권문제로 파악하면, 개인(전 ‘위안부’) 대 국가(한국), 개인 대 국가(일본), 국가(한국) 대 국가(일본)의 삼극三極構造가 된다.

한일합의가 좌절된 원인과, 일본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련의 대응을 검증할 때에는 이 문제의 기본구조를 이극구조에서 삼극구조로 고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인권문제인 이상 개인 대 국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개인의 시점에서 한일 양국의 대응을 검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에서 도출된 해결의 기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인권문제인 이상, 그 해결내용에 관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그 내용을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최종적인 해결이 된다. 또 인권문제의 해결에는 사회(국제사회를 포함)적으로도 관심이 지대하므로 해결의 내용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인권보장의 수준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국가 간에 아무리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해보았댔자 그 내용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인권보장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피해자 개인이 수용할 수 없으면, 최종적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정부의 일련의 대응 한일양국은 1965년에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 거기에는 한일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되어 있다(동 협정 2조1항). 이것으로 일본정부는 전 위안부 개인의 배상청구권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해결필론解決畢論).

1990년대에 들어 전 위안부 체험이 이야기되는 가운데, 피해자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1993년에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당시)가 담화를 공표(고노 담화)하고, 이어서 1995년에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에 의한 대처 등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서는 일본정부의 책임이 애매하다고 하는 비판을 낳았고, 최종적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한 후 일본정부는 2015년에 한일합의에 의해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현재 좌절되고 있다. 이처럼 일본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제까지의 대응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현재에도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해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일련의 대응의 출발점-해결필론解決畢論(법적法的 해결은 이미 끝났다는 주장-역자)

일본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련의 대응의 출발점에는,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문제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및 한일 간 조약에 의해 해결이 끝났다고 하는, 이른바 ‘해결필론’이 있다.

일본정부의 국회 답변에 의하면, 한일청구권협정 2조1항에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란 것은, 국가의 외교보호권을 포기했다는 것이고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도 일중日中공동성명의 청구권포기조항에 의해 피해자 개인이 손해배상을 ‘재판상 소구訴求할 권능’은 잃었지만, 청구권 그 자체는 ‘실체적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고재판소는 ‘재판상 소구할 권능’의 소멸은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주장했을 때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청구권 포기가 주장되기 전에는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고, 설령 청구권 포기가 주장되어도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실체적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게다가 한국정부 및 헌법재판소는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근대 법치국가에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배상청구권)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박탈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일본정부는 법적 해결이 끝났음을 소리 높여 주장하고,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일본이 법적 책임의 인정은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의 논리에 의하면, 일본정부가 스스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며, 임의로든 자발적으로든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데에 조약상의 법적 장애는 없다. 이 말은 전 위안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법적 해결을 위한 절차에 참가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노 담화의 유지・발전에 대한 요청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정부의 자발적인 조사에 기초하여 정리된 것으로 아베 정권을 포함하여 역대 정권은 이것을 답습하고 있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한 문제이다’고 말하고 있듯이, 인권문제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표명하고 있다.

또 그 인권침해가 ‘당시의 군의 관여 하’에서 행해졌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고, 이 사실에 의해 인권침해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또, ‘위안부’라 불린 여러분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금후의 자세로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역사연구,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고노 담화는, 인권침해의 사실(피해실태)과 가해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역사교육을 통한 교훈 전달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일정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취지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을 기대한다.

일본정부의 책임

한일합의에서, 일본정부는 모든 전 위안부 여러분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하며, 그 ‘조치를 착실히 실시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확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정부는 ‘조치’의 일환으로서 10억 엔을 재단에 갹출했다. 일본정부는 10억 엔의 갹출로 ‘조치’를 완전히 완료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으나, 10억 엔의 갹출은 피해자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고, 그것으로 조치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한일합의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피해사실을 인정하고,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앞의 고노 담화의 문언文言과 거의 같다.

피해자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정부는 사죄의 증거가 되는 언동을 해야 하며, 수상 자신이 사죄의 말을 표명한다거나 피해자에게 수상의 편지를 보낸다거나 하는 것도 고려되었다. 그러나 국회심의에서 아베 수상은 자신의 사죄의 말 표명을 거부했다. 또 수상의 사죄 편지에 관해서도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거부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수상의 언동은 도리어 피해자와 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한일합의에서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고 했는데, 그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언동은 한일합의가 좌절하게 된 요인인 것이다.

대응 실패의 원인과 진정한 해결의 길

이처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일련의 대응을 뒤돌아보면, 해결에 실패를 반복하여 온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 간의 합의만으로 해결한다는 대응의 기본적인 태도에 있다. 이것은 ‘해결필론解決畢論’(법적 해결은 이미 끝났다는 주장)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피해자를 해결 절차에서 배제하고, 오로지 국가 대 국가의 이극구조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인권문제인 이상, 피해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마땅히 해결 절차에 참여할 지위에 있다. 국가 간의 합의만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개인 대 국가(한국)·개인 대 국가(일본)·국가(일본) 대 국가(한국)의 삼극구조 가운데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일본은 인권침해의 가해자로서 마주보아야 하는 상대는, 한국정부가 아니라 전 위안부 피해자인 것이다.

한일합의에 의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조치’에 관해 일본이 10억 엔을 갹출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한다면, 한일합의의 내용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권보호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없다. 2017년 유엔의 고문금지위원회가 한일합의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재발방지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 의미에 있어서 타당하다. 또 재단의 현금을 받은 전 위안부가 일부 있다고 하여도, 수령을 거부하는 전 위안부도 있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인권보장 수준의 해결 내용이 아닌 이상,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인정받을 수 없다.

한일합의가 좌절된 현재,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는 오로지 국가 간으로만 해결하려는 자세를 고쳐, 고노 담화의 취지를 기본으로 하면서 피해자와 성실히 마주보고, 진정한 해결로 향한 절차를 밟아나가야 할 것이다.

※1)일본인은 우右가 3할, 좌左가 2할, 중도가 5할이다. 2012년 이래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보수 연합)이 승리하고 있다.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도 내각의 지지율이 낮은데도 의석의 2/3를 얻었다. 그 이유는 일본국민의 신임이 높다든가 경제정책이 지지를 받기 때문이 아니다. 보수연합이 유권자의 약 3할의 득표를 고정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율이 5할대 이하이면, 3할을 득표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다.(오구마 에이지, <‘3 : 2 : 5’ 構圖>, 『世界』, 2018년 1월호)

2)카와카미 시로, <日韓合意の再檢証 - ‘慰安婦’ 問題의 ‘解決’とは>, 『世界』, 2018년 3월호, 2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