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9>존재 인식과 문제를 보는 눈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9>존재 인식과 문제를 보는 눈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8.03.06 15:20
  • 업데이트 2018.03.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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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19>존재 인식과 문제를 보는 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슈마허(왼쪽)의 철학이 집약된 책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표지. 출처: 새로운 경제학을 위한 슈마허 센터.

‘우주의 크기를 1광년이라고 하면/ 태양은 직경 14cm짜리 멜론/ 거기서 15m 걸어가면/ 직경 1.3mm 좁쌀 한 알/ 그게 지구란다. 그 좁쌀에서 3.8cm 떨어진 곳에/ 직경 0.35mm 티끌 같은 한 점/ 그게 달이란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가려면 950m쯤은 걸어가야 돼/ 태양과 지구는 15m 거리/ 1200m쯤 가다보면 태양계도 끝이 보인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켄타우르스 자리의 알파성/ 1.3mm 지구에서 4000km 떨어진 곳에 있는 별.

그 별빛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별 볼 일없는 우리 인간이 말이다/ 아니 그 별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다. 진짜 별을 보고 살자/ 인생 백년을 살지 말고/ 45억 년의 지구/ 50억 년의 태양을 살자. 200억 년 전 초고온 초고압 불덩어리 빅뱅의 우주/ 한 점 소우주로 살자/ 1광년의 한 해 한 해를 살자.’

예전에 과학책을 보고 우주의 신비를 느끼면서, 어느 새해를 맞아 필자가 써본 ‘우주의 크기를 1광년이라고 하면’이라는 제목의 어줍잖은 시이다. 무한한 우주에 지구는 ‘좁쌀 한 알’,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티끌 한 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하루하루 살다보면 이러한 유한성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우리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만 드러나는 일상을 느낄 수 있다. 찰나적 인생의 무한한 욕망, 과연 우리의 내면의 넓이는 얼마나 될까? 과연 우리 인간은 소우주라고 할 수 있을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본 E.F.슈마허의 ‘작은 것’의 가치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슈마허의 내적 탐험이 궁금하다.

환경 저술가인 다이애나 슈마허(Daiana Schumacher)는『내가 믿는 세상』서문에서 ‘1온스의 실천이 1톤의 이론만큼 가치가 있다’는 제목을 붙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녀는 슈마허가 자신의 내적인 탐험을 추구할 기회를 놓친 적이 없으며, 슈마허의『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는 그의 가장 심오한 영적인 믿음을 개관한 책이라고 썼다.

슈마허가 숨지던 해인 1977년에 내놓은『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그의 철학을 정리한 것이다. 슈마허는 세상을 넓게 보려고 했다. 그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연구해야 할 것으로 첫째 세계, 둘째 인간-그가 세계와 만나는 준비, 셋째 그가 세계에 대해 배우는 방법, 넷째 이 세계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찾기’를 들었다.

E.F.슈마허는 세계를 네 개의 ‘존재단계’로 이뤄진 계층구조로 봤다. 존재의 네 단계는 광물(Mineral), 식물(Plant), 동물(Animal), 인간(Man)으로 각 단계가 아랫단계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윗단계의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역 피라미드에 비유될 수 있다고 했다. 슈마허는 인간이 생명을 ‘창조하지는 못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존재의 네 단계를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표현했다.

‘인간(Man)’ = m(광물) + x(생명) + y(의식) + z(자기인식). ‘동물(Animal)’ = m + x + y. ‘식물(Plant)’ = m + x. ‘광물(Mineral)’ = m. 여기서 육체는 m, 에테르는 x, 영체는 y, 나, 자기, 자아 또는 정신은 z에 상당한다고 했다. 슈마허는 인간을 육체(m+x), 영혼(y), 정신(z)의 세 겹의 존재로 설명한 현인들의 지혜가 어느새 사라지고,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존재로만으로 설명됐고, 게다가 유물론적 과학주의의 출현으로 인간에 대한 설명에서 영혼마저 사라져버렸다. 우주를 원자의 우연한 배열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예로부터 소우주로 간주돼온 인간을 더 이상 하나의 세계, 즉 불가사의하지만 의미 있는 창조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을 개탄했다.

슈마허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지어주는 자기인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과 그러한 욕구까지도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교도들이 이야기하듯이 삶을 통찰하는 ‘마음의 눈’의 힘이 의견을 낳는 생각의 힘보다 월등하다고 말했다.

슈마허는 인간의 배움에 관한 대진리는 ‘지식의 네 영역’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영역 1 나-안, 영역 2 세계(너)-안, 영역 3 나-바깥, 영역 4 세계(너)-바깥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나 자신의 내적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가?-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둘째, 다른 존재들의 내적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너는 어떻게 느끼는가? 셋째, 다른 존재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나는 어떻게 보이는가? 넷째,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무엇을 보는가?-너는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E.F.슈마허는 이 네 가지 영역 중 영역 1과 4의 지식만 직접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직접 알 수 없는 영역 2와 3의 지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 지에 관심을 가졌다. 영역 2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아는 것인데, 남은 자신이 자기를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역 3은 객관적 현상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으로 영역 1의 지식은 우리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만 영역 3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균형감각과 자기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슈마허의 ‘지식의 네 영역’은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조하리의 창은 1955년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하리 잉검(Harry Ingham)이 발표한 ‘대인관계에 발견할 수 있는 그룹모델’ 을 가리키다. 자신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 타인에게 알려진 부분과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엮어 공개영역(open area), 맹인영역(blind area), 비밀영역(hidden area), 미지영역(unknown area)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조하리의 창의 개념도. 출처: 위키피디아

슈마허는 또한 이 세계에서 삶에 관한 대진리로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가 두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수렴적 문제(convergent problems)와 발산적 문제(divergent problems)로 나눴다. 수렴적 문제는 물리학, 화학, 천문학, 기하학, 수학과 같이 어렵기는 하지만 노력하면 누구나 같은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인 반면, 발산적 문제는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 것으로 주로 교육, 정치와 같이 생명체와 관련된 것이라고 했는데 인간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 또 어떻게든 극복해야만 하는 발산적 문제들의 연속이라고 덧붙였다.

슈마허는 인간이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먼저 외부에서 주어지는 방향을 따라가서 얻는 행복은 덧없는 것이라는 진실을 사회와 전통으로부터 배워서 깨닫는 게 중요하다. 다음으로 자신이 얻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좋은 것은 간직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중심의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다고 역설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사회는 여러 문제들이 대부분 발산적 문제라는 사실을 잊고, 이를 수렴적 사고로만 풀어가는 데만 익숙한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오로지 효율성, 경쟁력으로만 문제를 보는 것이 미래를 얼마나 어둡게 하는 일인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부제의『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2014)에서 행복사회를 이해하는 6개 키워드를 제시했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 그것이다. 이러한 6개 키워드는 앞서 슈마허가 말한 ‘발산적 사고’를 통해 덴마크가 풀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6개 키워드가 행복한 일터, 행복한 사회, 행복한 학교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도 이러한 ‘발산적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고 학교, 일터, 사회에서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풍토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수렴적 사고’에만 밝은 사람이 아닌 ‘발산적 사고’를 함께 지닌 우리 사회 리더들을 많이 길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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