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대한민국 주류 교체'가 시대정신
이젠 '대한민국 주류 교체'가 시대정신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3.08 10:58
  • 업데이트 2018.03.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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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대한민국 주류 교체'가 시대정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이승만 정권, 아니 그 이후에도 철저히 박해당했다.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박해한 자들이 대대로 주류로 살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99주년 삼일절 기념사 장면. 출처: 국회방송

“‘십만양병설’이 다 사실인 줄 알죠? 다 거짓말이에요. 존재하지 않는 얘깁니다. 없던 십만양병설을 왜 만들었을까요? 서인의 정신적 지주인 율곡을 띄우려는 거예요. 원래 임진왜란 극복의 영웅을 따지면 무인 중엔 이순신이고 문인 중에는 유성룡이거든요.십만양병설의 요체가 뭡니까? ‘율곡이 10년 전에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는데 서애 유성룡이 반대해서 안 됐다’ 이거 아니에요. 없던 사실을 만드는 건 범죄죠. 율곡 이이의 자료도 다 조사해 봤어요. 10만 양병은커녕 1만 양병도 주장한 적이 없어요.”

“조선 후기 율곡 이이의 제자들인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주도하면서 서인들의 뿌리가 노론으로 바뀌고 노론 일당 독재체제가 돼요. 인조반정 이후에는 국왕들의 권력이 극도로 약화되어 왕은 허수아비 비슷한 존재가 되죠. 이 국왕들이 당시 집권당인 노론과 맞서보겠다고 특정 사안을 두고 노론과 충돌하려다가 그 직전에 왕이 죽는 걸로 정리가 되거든요.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돼요. 효종이 40세에 갑자기 죽고, 효종의 아들 현종이 34세에 정권을 노론에서 남인으로 뒤집으려다가 또 갑자기 죽어요. 경종이 독살당하고, 또 사도세자가 반노론 정변을 꾀하다가 뒤주 속에 갇혀 죽고, 정조가 독살당하고······. 일정한 패턴이 있거든요. 그만큼 노론이란 세력이 조선 후기에 대단했어요. 특히 영조 말년에는 지금의 국회의석으로 따지면 300석 중에 290석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1910년에 일제가 76명에 달하는 조선인에게 작위를 주고 돈을 줘요. 나라 망하게 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은사금을 준 거죠. 그 76명의 소속 당을 조사해봤어요. 왕족 빼고, 당파를 알 수 있는 사람이 64명인데, 그 중에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 나머지 56명이 다 노론이에요. 조선 후기 이후 왕권도 무력화하고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한 이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나라 팔아먹는 데 일조를 한 거죠. 이들이 원래 시대 퇴행적 집단이다 보니 당시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데는 실패하는데, 대토지 소유자들이라 일본으로 유학 가서 ‘학문 권력’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역사학계는 조선 총독부 산하의 역사이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고 지금은 그것을 정설의 체계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은 한 뿌리거든요.”¹⁾

“현직 국회의원 중 독립유공자의 직계 가족으로 김원웅 의원이 유일하다. 친일 세력이 기득권을 장악한 데서 비롯된 ‘역사적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선친의 영향에서 비롯된 건가?

김원웅 의원²⁾ : 친일 청산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프랑스가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철저히 단죄한 후 드골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프랑스가 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패하더라도 민족반역자들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목격한 한 가지 사례를 전해주고 싶다. 당시 선친의 광복군 동지들이 평소 우리 집에 자주 모였는데, 이승만 정권하에서 그들은 독립운동을 했던 사실을 숨겨야 했고, 정권으로부터 탄압받고 있었다. 하루는 광복군 한 분이 돌아가신 상가喪家에 옛 동지들이 문상을 한 뒤 우리 집에 모여 밤새 술을 드시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문상객들에게 국밥 한 그릇 내어놓기 어려울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집에서, 돌아가신 어른은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이런 마지막 유언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 가문에서는 독립운동을 하지 마라. 일본놈들이 오면 친일을 하고, 미국놈들이 오면 친미를 해라.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서야만 자손들이 번창한다.’ 유족들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와서 광복군 동지들이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됐는가?’ 하며 밤새워 통곡하시더라.”³⁾

“네가 언제부터 그런 일까지 챙겼냐?” 이십 여 년 전이 일이다. 고향 시냇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땀을 들이며 한더위를 나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은사 한 분이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온다는데 같이 찾아뵙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알만한 분이었다. 경남 모 도시의 교육장이었다. 내 가시 돋친 되물음에 전화한 친구는 별 놀라지 않았다. 내 반응을 익히 짐작한 터였을 것이다.

우리 동기 가운데 교사가 유난히 많았다. 궁벽한 시골 고등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대개 졸업한 해에 바로 9급 공무원으로 나갔다. 그 중에 살림이 조금 나은 친구들은 대체로 국립사범대학으로 진학했다. 학비도 싸고 시골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는 직종 중 교사는 선망할 만한 직업이었다. 대학 진학률은 20% 남짓이었다. 전화한 태성이도 사범대 출신 교사였다.

“내가 너를 모르냐. ‘정치적’인 문제는 제쳐두고 그래도 은사님이잖아. 경남서 선생 하는 친구들은 모두 온다더라. 부산이지만 너도 학교에 있잖아. 그리고 교육장님이 제자들을 끔찍이 아끼신다더라.”

제자들을 아낀다고? 그것도 끔찍이? 자기 편 만들기에는 이골이 났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태성이가 굳이 ‘아낀다’는 말을 덧붙인 의중을 나는 잘 읽고 있었다. 그는 비록 ‘전교조’ 활동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몰래 후원금을 내는 친구였다. 태성이 역시 나와 더불어, 참석한다는 동기 교사들이나 교육장과는 사회의식의 결이 달랐다. 꼭 그 까닭이어서만은 아니지만 나와는 배짱이 잘 맞았다. 그래서 동기들은 태성이를 ‘반반골’半叛骨이라 했고 나를 ‘온반골’이라고들 했다. 언제가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 앞에서 내가 ‘우리는 반골이 아니라 강골强骨이다’고 되받아치며, 태성이와 마주보며 호방하게 웃어젖힌 적도 있었다.

태성이는 어쩜 친구 교사들과 은사 교육장과의 모임 자리에서 ‘개밥에 도토리’ 신세를 예상하고 찜찜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지 의식을 나누는 내가 참석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겠지. 그러나 내가 워낙 지론을 숨기지 않고, 교육청 관할도 다른 부산 교사이다 보니 참 난감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안 해도 될 말, ‘정치적인 문제’는 한옆으로 치워두고 ‘제자들을 아낀다’는 말로 은사의 인간적 면모를 나에게 부각시킨 것이리라.

그러나 어쩌랴! 친구야, 나는 ‘정치적’인 문제에다 ‘인간적 면모’가 더없이 싫어 그런 사람을 은사로 대접하고 싶지 않다네.

은사 교육장은 평범한 국어과 박 선생님이었다. 한데 우리가 졸업하고 한 3~4년 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경상남도 교육청 장학사 되었다. 알고 보니 고향 이웃집 동생뻘인가 사촌 동생인가 되는 영관급 장교가 전두환 쿠데타에 주도 세력으로 참여한 모양이었다. 하여 솔직한 말로 박 선생님은 전두환 쿠데타 덕으로 평교사에서 일약 도 교육청 장학사로 승진한 셈이 되었다. 뒤이어 승진을 거듭해 제법 큰 도시의 교육장에까지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학교에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헌혈차가 왔다. 수업도 중단하고 여고생들이 헌혈차 앞에 줄을 섰다. 새삼스럽게 지금 생각해봐도 헌혈차에 누워 피를 뽑는 교사는 내 자신 외는 기억에 없다. 유독 왜 내가 피를 뽑았을까? 박 선생님 덕분(?)이었다.

나 역시 고등학생일 때 대부분의 친구들과 함께 헌혈차 앞에 줄을 섰다. 수업 안 하는 것이 마냥 좋아 차례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희희낙락거렸다. 그 때 박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너, 제 정신이가, 피를 뽑다니. 밥을 몇 그릇 먹어야 그만한 피가 생기는 줄 아나? 공부하는 데도 모자랄 피를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공짜로 뽑아주다니! 어리석은 짓하지 말고 교실로 돌아가서 공부나 해라.”

그때는 고마웠다. 성적 좀 좋다고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시는가 싶어, 감격까지 했다. 그러나 뭔가 ‘이건 아닌데’하는 느낌에다 친구들 보기에도 체면 안 서는 일이라 교실로 돌아갔다 다시 나와 기어이 피를 뽑았다.

제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탕湯이 걸桀을 쫓아내고, 무왕武王이 주紂를 토벌했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문헌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신하로서 자기 임금을 죽여도 괜찮습니까?” “인仁을 해치는 자를 포악하다고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학하다고 합니다. 이 잔학하고 포악한 사람을 필부匹夫라 합니다. 저는 주나라의 무왕이 한 사람의 필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⁴⁾

다행히 태성이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게나마 교장으로 승진했다. 장학사, 교감을 거치지도 않고 평교사에서 교장으로 직행했다. ‘교장공모제’ 덕이었다. 근평(근무성적평정)으로 단계를 밟아야 했다면, 강골로 입바른 그는 아마 60살 된 지금도 평교사일 것이다.

※1)이덕일, (인터뷰)‘해방 65년, 역사관 독립이 절실하다’, 『인물과 사상』, 2010년 9월호, 20~21쪽.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위즈덤하우스, 2011) 2)독립운동가 김근수의 장남. 14대(민주당), 16대(한나라당), 17대(열린우리당) 국회의원. 3)김원웅, (인터뷰)‘수구 세력 축출이 정치개혁’, 『인물과 사상』, 2002년 5월호, 80쪽. 4)『맹자』, <양혜왕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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