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0>경제성장이 의미가 있는가?㊤
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0>경제성장이 의미가 있는가?㊤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18.03.13 18:34
  • 업데이트 2018.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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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슈마허 톺아보기 <20>경제성장이 의미가 있는가?㊤

2015년 세계 각국의 GDP를 나타낸 지도. 대한민국의 경우 중간 수준의 붉은 색으로 1인당 GDP 16,000~32,000 달러에 속하는 국가로 표시돼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들은 늘 뉴스에서 올 상반기, 하반기 경제지표를 들으면서 ‘경제성장률’이 올랐느니 내렸느니 하는 이야기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 1인당 GDP가 3만 달러 문턱에 있니 없니 하는 것이 큰 뉴스이다. 과연 경제성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이러한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가능한지 등에 대한 성찰 또한 필요할 때이다.

사전적 의미로 경제성장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총체적인 경제활동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말한다. 경제활동의 규모를 측정하는 일반적인 지표로는 요즘엔 주로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를 든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상승이 곧 경제성장이며, 이것이 발전의 지표가 돼왔다. 경제성장률은 실질GDP 성장률과 동의어가 되고 있고 1인당 GDP가 국가 간의 경제력과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GDP 개념은 어떤 국가의 경제활동수준을 나타내는 완전한 지표가 될 수는 없다. 측정 상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GDP에는 시장을 통해 거래되지 않는 재화와 용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가정주부의 가사활동은 제외되는 반면 가사도우미 가정부 등의 가사활동은 GDP에 포함된다. 둘째, GDP에는 여가가 추계되지 않는다. 따라서 GDP가 국민들의 후생을 충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셋째, GDP는 물질적 생산만을 계산하고 생산과정에서 파생되는 수질오염 공기오염 교통 혼잡 등의 공해를 도외시하고 있다.

넷째, GDP는 밀수, 사채놀이, 도박 등 지하경제의 규모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다섯째, GDP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의 매매를 포함하지 않는다. 여섯째, GDP는 정부 및 기업으로부터 개인에게 반대급부 없이 지급되는 이전지출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경제성장과 관한 견해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크게 경제성장 옹호론과 반(反)성장론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성장 옹호론은 지속적 경제성장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정전은 『환경경제학』(2004)에서 성장옹호론은 크게 ①경제성장은 가능하다 ②경제성장은 필요하다 ③경제성장과 환경오염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④자원이용의 효율이 급선무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정리했다.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인구문제나 자원고갈문제 등 경제성장에 어려움이 있을 때도 이를 제도적, 기술적으로 개선해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옹호론의 요지는 경제성장과 환경오염 사이에는 대립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론적으로 이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성장론 가운데는 ‘영(0)의 경제성장론’과 ‘영(0)의 인구성장론’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고전파에 속하는 밀(J.S. Mill)이나 최근의 갈브레이스(J.K.Galbraith)는 경제성장정책으로 인해 환경 및 생태계의 파괴가 초래되는데 환경 및 생태계 파괴의 비용이 경제성장으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에 최소한의 경제성장 또는 영(0)의 경제성장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우리 인류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로빈슨(J.Robinson)은 인구성장률과 비슷한 경제성장률을 적정성장률로 유지하면 이상적인 황금시대가 온다며 ‘황금시대적 성장률’을 중시하고 있다.

환경쿠즈네츠곡선. 세로축은 환경오염, 가로축은 1인당 GDP를 나타낸다. 화살표는 산업시대 경제로 산업 전기, 산업후기 경제와 나눠지는 전환점을 가리킨다. 출처: 위키미디어

이와 함께 경제성장을 통해 환경오염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 환경쿠즈네츠가설로 나타나고 있다. 환경쿠즈네츠가설이란 경제성장과 환경오염과의 사이에 역 U자형의 관계(이 관계를 나타낸 곡선을 환경쿠즈네츠곡선이라 한다)가 존재한다고 하는 가설로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는 오염이 증대하지만 1인당 GDP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그 경향이 바뀌어 환경 개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서 전환점을 넘어서면 환경지표가 개선되는 관계를 나타내는 이 가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시사하기도 하지만 ‘소득이 몇만 달러가 되면 이런 환경문제는 해결된다’는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반면에 경제성장의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소위 반(反)성장론인데 이는 크게 성장불가론과 성장불능론의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성장불가론은 경제성장의 사회적 득실을 따져보면 우리는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그 동안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이제 분배만 잘 하면 우리 인류는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잘 사는 사람의 하찮은 욕구충족에 막대한 자원을 물 쓰듯 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양극화가 현실이다. 이제 더 이상의 빠른 경제성장은 물질적 풍요를 통한 행복증진보다는 환경오염, 자원고갈, 사회갈등, 인간소외, 범죄 등으로 인한 불행의 측면을 더 크게 한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욕망을 끝없이 부추김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부족감에 시달리게 하고 고달프게 한다. 이제 경제성장보다는 분배의 정의, 환경개선 등 다른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성장불가론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성장불가론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슈마허라고 할 수 있다. 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인간의 본질은 국민총생산(GNP)으로 측정될 수 없다. 통계는 결코 그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며 오늘날도 문제가 되고 있는 GNP 중심의 경제성장론과 통계적 허구를 지적했다.

제임스 구스타브 스페스의 원저 『The Bridge at the Edge of the World』(2008)와 번역서『미래를 위한 경제학』.

제임스 구스타브 스페스는 『미래를 위한 경제학-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2008)에서 “경제문제가 해결된 시점에 도달하기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지 자문해 보아야 했다”라며 케인스경제학이 제시한 풍요로운 사회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또한 유엔개발계획(UNDP)의『1996 인간개발보고서』에 나타난 회원국의 경제성장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성장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①고용 없는 성장(전반적으로 경제는 성장하지만 고용의 기회는 확대되지 않는다) ②무자비한 성장(경제성장의 열매를 대부분 부자들만 누린다) ③무언의 성장(경제에서의 성장이 민주주의나 권력의 위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④뿌리 없는 성장(경제성장으로 사람들은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한다) ⑤미래 없는 성장(현재의 세계가 후손이 써야 할 자원까지 모두 낭비해버린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사회가 그동안 믿어온‘경제성장=발전’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경제성장의 환상 또는 망상을 지적하며 슈마허는“경제학의 본질은 인간성 회복에 있다”고 역설했다. 과연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이 경제성장의 환상 또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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