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유'와 민주주의
'위드유'와 민주주의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3.14 16:35
  • 업데이트 2018.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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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유'와 민주주의

한국의 미투, 위드유 캠페인을 보도하는 터키의 라디오텔레비전 공사 TRT World. 고은 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전시한 서울도서관의 상설전시관 '만인의 방'이 성추행 의혹 때문에 폐쇄됐다고 전했다. 출처: 유튜브 캡쳐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하겠다)

#1 ‘다방 권력’

‘신정아 사건’, 10여 년 전 방송도 신문도 온통 이 사건으로 오랫동안 도배질했다. 깜찍한 미모로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통하던 신정아 씨는 학력 위조와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징역 1년 6월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이 사건의 보도에는 대체로 성로비/성접대/학력위조/고위관료·저명인사와의 스캔들 등이 핵심어였다. 유력일간지 문화부 기자의 성추행은 성로비나 성접대란 단어에 묻혔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법한 이 추문이 생각난 것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하겠다)’ 운동의 파고 속에 지인의 명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의 친구인 귀농한 그 지인과 점심자리였다. TV에 신정아 씨 모습이 나왔다. 스캔들의 한쪽 주역인 청와대 고위 관료와 전 총리 등 저명인사들을 질타하는 보도였다. 신정아와 저명인사의 부적절한 관계와 사회지도층 저급한 도덕성, 수긍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으니 다들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그 지인만은 생각인 달랐던 모양이었다.

“저 정도 미모의 여인이 접근하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힘이 없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권력은 상대적이다. 우리 남자들은 누구나 성 문제에 있어 권력을 행사한다. 동네 할아버지들도 다방에 가서 아가씨에게 커피 한 잔 사 주고는 손녀뻘 ‘레지’들한테 ‘주물탕’을 놓는다. 속칭 ‘다방 권력’이다. 자네들은 술집 아가씨들한테 안 그래? 뒤통수의 쇠망치였다. 머리가 띵했다.

나 역시 다방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닐까? 고작 10여 년 전이었지만 성희롱, 성추행이란 단어는 생경했다. 강간이란 범죄는 알아도 성폭력이란 말은 우리의 사전에 없지 않았을까? 인권 감수성 혹은 성인지性認知 능력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2 ‘태움’

지난 설 연휴 첫날,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취업한 지 6개월 된 간호사가 고층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른바 ‘태움’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태움이란 병원에서 선임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분으로 ‘한 사람을 불태워 재가 될 때까지 갈군다’는 뜻이다.

태움의 원인이 무엇일까? 단순히 선임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에게 ‘갑질’을 한 것일까? 선임 간호사의 인품이나 교양이 변수는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이다. 병원의 수익 추구 때문이다.

“외국 병원들과는 달리 한국 병원에는 할머니 간호사가 없다. 노인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30대에 이미 할머니가 된 간호사들은 많다. 한국 간호사들은 30대에 오십견을 앓는다”고 한 병원 노조 활동가가 말했다.¹⁾

병원이 적정 인력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태움 현상은 간호사들의 천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호 인력의 담당 환자 수를 3분의 1로 줄여도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많은 수라고 한다. 나아가 태움 현상은 간호 인력 부족 문제뿐 아니라, 저비용으로 간호사를 충원하려는 병원의 인력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²⁾

유선주 목포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등의 연구팀은 “병원이 경력 간호사의 처우 개선 대신, 저임금의 신규 간호사로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면서 “경력 간호사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인력 수를 증원해야만 태움도 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 ‘저성과자 교육’³⁾

“동료와 후배 앞에서 죄수처럼 등에 8번 번호표를 달고 말똥을 치워야 했습니다. 그 때 심정은 모멸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수치심이라 해야 할까요. 참담했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 한국마사회 간부급 직원이었던 강현석(가명.58) 씨는 저성과자로서 선정되었다는 인사 통보를 받았다. 그는 근무성적이 우수해 국내 한 대학원에서 교육연수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저성과자 선정은 계량지표가 아닌 주관적 평가에 의해 이뤄졌고, 선정 이유도 설명되지 않았다. 교육 대상자 31명 가운데 27명이 객관적인 성적과는 무관하게 저성과자로 지목됐다.

6주 동안 강 씨는 같은 처지의 동료 30명과 함께 성과역량 강화교육(저성과자 교육)을 받았다. 말 목장에서 ‘말똥 치우기’, 새벽 4시에 실시된 ‘인력시장 체험’,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등 직무능력 향상과는 무관하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교육이었다. 즉, 교육 대상자에게 모멸감을 안겨줘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만들겠다는 비열한 의도로 가득 찬 교육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성과연봉제 확대, 저성과자 퇴출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한국마사회는 정부 방침을 매우 충실하게 따른 곳이다.

2015년 마사회의 저성과자 교육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의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보면, 저성과자 교육에 대해 “비인권적인 교육 행태로 교육 대상자들에게 수인하기 어려운 수치심 등 정신적인 불이익을 가했다”며 “(당시 회장이었던)현명관 전 회장 등 고위간부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조직 문화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저성과자 퇴출제도가 그저 경영진에게 밉보인 사람을 쫓아내는 데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던 셈이다.

#4 ‘형제복지원’⁴⁾

지난날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한 엄청난 폭력을 국가의 비호 아래 자행했다. 바로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부랑인 시설이었던 형제복지원은 1975년 ‘내무부 훈령 410호’를 근거로 급속도로 확장되었고 연 3000~4000명을 단속·수용하였다. 껌팔이나 구두닦이를 해서라도 살아보려던 가난한 사람들을 ‘부랑인’으로 낙인찍어 가둔 것이다.

1981년에는 전두환의 지시로 사회 정화란 미명하에 사람들은 마구 잡아 가두었다. 군대처럼 소대·중대로 편성·운영된 형제복지원은 강제노역과 폭력·성폭력, 과다 약물 투여 등이 일상적으로 존재한 ‘지옥’ 그 자체였다. 반면 원장 박인근은 국고를 착복하여 부를 축적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드러난 것은 민주화 함성이 드높아가던 1987년이었다. 사망한 사람이 당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만 513명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윗선’의 지시로 중단되었고 재판도 왜곡되었다. 결국 유력한 인권유린 범죄자요 살인 용의자인 박인근은 터무니없이 가벼운 혐의로 2년6개월 형만 받았고, 출소 후에는 사회복지법인의 이름만 바꿔 2016년 사망 시까지 ‘복지사업’을 계속했다.

통제와 억압의 복지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형제복지원뿐이겠는가? 아직도 시혜적 복지가 당연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제2, 제3의 형제복지원이 없을 리 없다. 복지에도 피해의 미투 운동이 필요하다.

#5 민주주의

인간은 권력에 취약한 존재이다. 가진 자는 으레 ‘갑질’하고, 못 가진 자는 쉽게 굴종한다. 관습·근력·계급과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성취가 권력이다. 돈이 신의 위치에 자리한 이 황량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모든 권력의 최상위에 떡 버티고 있는 권력이 돈일 것이다. 하여 돈 추구가 함의한 인간성 파괴력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성취자의 추수追隨와 찬양에 매몰된 현실이다.

권력과 공감능력은 반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권력은 우리를 보다 자기중심적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을 떨어뜨린다. 권력자는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비정상적인 심리를 가진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단순히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보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가하는 가학행위에 대한 저항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단순히 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⁵⁾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스스로 제어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너와 내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갑질을 사위하는 에토스도 민주주의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일반인이 내면화할 때 형성된다.

민주주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강한 자아’를 전제한다. 촛불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증험케 했다. 성 착취, 노동 착취, 인격 착취는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권력에 의한 삶의 착취가 관례화된 양상들이다. 대명천지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같은 것이 존재하는 현실을 직시하자.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실행할 수 있는 일상의 민주주의가 요구된다.

먼저, 일터에서의 노동조합이다. ‘미투’ 물결의 한편에서 여전히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말할 수 없는 피해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유명인들의 성폭력은 사회적 형벌이라도 받지만, 직장 내 상사의 성폭력 문제를 피해자가 제기하기란 직장을 그만둘 각오가 없는 이상 쉽지 않다. 직장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에는 노조가 유효한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여성 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에 노조를 만들면 으레 성희롱·성추행을 막아달라는 민원부터 제기된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사내 권력구조와 관련된 문제다. 노조는 단지 피해자의 대리인이 아닌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함께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⁶⁾

둘째로,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 문제⁷⁾이다. 현재의 기초의원 선거구는 대부분 2인 선거구다. 이를 3~5인 선거구를 늘리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유권자의 다수파가 대표를 가장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소수파도 그에 비례하여 적으나마 대표를 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했다. 또한 다수만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 민주주의’라고 단언했다.

현재의 기초의원 선거구로서는 지지율 상위 2개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거의 당선이다. 그래서 기초의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당의 공천이지 유권자가 아니다. 지역주의가 강한 지역에서는 한 정당이 1~2등을 모두 휩쓸기도 한다. 그러니 3위 이하 정당들은 출마 자체를 꺼린다. 기초의원의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은 힘 있는 다수파가 아니라 약자인 소수파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는 있는 선거구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국회의 의석 구조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비교적 정확히 반영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문제이다. 현재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거대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과다 대표’한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득표율은 각각 33.5%와 25.54%였지만, 실제 의석 점유율은 40.67%, 41%였다. 반면, 정의당은 21석만큼의 득표율(7.2%)을 얻었지만, 실제 의석은 6석에 그쳤다.

어떤 선거구제든지 결함이 있다. 그러나 최소한 소수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는 민주주의에서 필수 요소이다. 하여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로 전환하든지, 최소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촛불 민주주의는 정확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가질 때 완성될 수 있다.

곧 지방 선거이다. 한 사람의 민주시민으로서 당파를 떠나 노동조합을 장려하고, 기초의원 대선거구를 지지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신념을 가진 후보자에게 한 표를 보탤 생각이다. 세 가지를 공유하는 후보자를 만나는 행운은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꿩 대신 닭이라도 선택해야겠지.

어차피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선택하는 일이다. 나아가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 일도 불가피하지 않을까?

 

※ 1)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스스로 하늘나라 천사가 된 간호사」, 『한겨레신문』, 2018년 3월 7일. 2)박종완, 「태움, 병원 저비용 인력정책 탓」, 『경남도민일보』, 2018년 2월 23일. 3)방준호, 「마사회, 저성과자에 죄수처럼 번호표 달고 말똥 치우게 했다」, 『한겨레신문』, 2018년 1월 3일. 4)남찬섭(동아대 사회복지학교 교수), 「국회가 청산해야 할 복지적폐, 형제복지원」, 『한겨레신문』, 2018년 2월 6일. 5)서쌍희(경남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미투 운동의 본질」, 『경남도민일보』, 2018년 3월 3일. 6)이지혜, 「직장 내 개인 ‘미투’ 폭로 한계. “노조 통한 조직적 대응 바람직”」, 『한겨레신문』, 2018년 3월 12일. 7)이관후(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 사상연구소 연구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거짓 민주주의’」, 『한겨레신문』, 2018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