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이명박'과 자유인
'우리 곁의 이명박'과 자유인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3.19 10:35
  • 업데이트 2018.03.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곁의 이명박'과 자유인

갈매기 나는 바다 풍경. 출처: 픽사베이

한 젊은 수행승이 선사를 찾아와 간청하였다. “스님,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해탈의 경지로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먼 하늘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너를 묶어 놓았느냐?” “저를 묶어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곧바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해탈하려 하는가?”¹⁾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냈다. 안장의 먼지를 대충 털고 페달을 밟았다. 제대로 굴러간다. 자전거는 이름값을 못하기에, 요긴하다. 저절로 굴러가(自轉)야 하는데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간다. 하여 이동수단이라기보다는 운동용이다. 덤으로 느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생각이 느려지는 대신 감상들을 깊이 씹을 수 있어 초봄 나들이용으로는 딱 제격이다.

지난겨울은 혹독히 추웠다. 누구나 겨울을 난다. 그러나 겨울을 나는 데 든 에너지는 각자가 다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데운 물로 세수를 하는 것만도 여간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월목욕’으로 아침을 맞는 사람들과는 ‘겨울나기’의 수고가 다르다. 하여 봄을 맞는 마음눈 또한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한창 때는 물론 50대까지 자전거는 별무소용이었다. 누구나처럼 이동은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했다. 그러나 난 남 유달리 가까운 거리를 갈 때나 운동으로는 정강말을 탔다. 승용차가 없던 시절,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를 20여리 길 읍내의 찻집 등으로 잡은 적이 더러 있었다. 보통 걸었다. 읍내는 완행버스로 15분 거리이나 차 기다리고 이런 저런 시간 듦을 고려하면 30분 상거이다. 바로 걸으면 1시간 40분쯤 걸린다. 차라리 걷는 편이 더 낫다. 길을 많이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걷는 행위는 내면을 들여다보며 오로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값진 경험이란 것을.

30대 말이었던가.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해 삼신봉(1355m)에 올라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을 한눈에 조망하곤 했다. 그리고 드물게나마 세석평전(1545m)까지 곧장 걸은 적도 있었다. 지리산을 ‘단독산행’한 것이다. 쉬엄쉬엄 그냥 풍광을 즐기면서 ‘내 안의 나’와 대화하며 9시간 정도를 걸었다. 피곤하지도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산을 좀 아는 것 같습니다.” 세석평전에서는 야외 텐트를 허용치 않았다. 산장에서 숙박해야 했다. 옆자리의 서울서 온 일행 중 한 명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등산 학교에서 전문적인 등반 교육을 받은 친구가 있다. 같이 산행하며 배운 게 좀 있었다. 그래서 배낭도 깔끔하게 꾸린다. 등산화 등 산행 장비 일습도 작심을 하고 갖췄다. 그렇지만 난 등산을 하는 게 아니다. 겨우 산행을 할 뿐이었다.

“나는 하동 사람입니다. 지리산 발치에 살지요. 그래서 자주 올라옵니다. 그뿐입니다.” 하며 손마디 굵고 큰 두 손을 쫙 펴 보여주었다. ‘산을 알면 세상 이치를 알게’라는 말은 삼키고, ‘보세요, 촌놈 일손 맞지요?’라고만 덧붙였다. 상대는 반신반의한 눈길로 자꾸 내 위아래를 훑었다. 에라, 한 걸음 더 내디디자.

“서산대사는 동 금강, 남 지리, 서 구월, 북 묘향을 우리나라 4대 명산이라 하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지요. 금강산은 수이부장(秀而不壯. 빼어나나 웅장하지 않다), 지리산은 장이불수(壯而不秀. 웅장하나 빼어나지 않다), 구월산은 불수부장(不秀不壯. 빼어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묘향산은 역수역장(亦秀亦壯. 빼어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다)이라고요.”

그 서울 사람은 매점에서 캔 맥주 두 개를 사와서 하나를 ‘촌놈’에게 내밀었다. 10시 소등消燈의 산장 규칙이 없었다면, 매점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지리산 밤을 밝혔는지도 모른다. 아마 주로 그의 ‘산행 무용담’을 들으며 나는 담배연기로 청정 지리산 영기靈氣를 어지럽히고 있었겠지만.

자전거길 양지 녘엔 매화 꽃망울이 몽실몽실, 성마른 나무는 벌써 봉오리를 터뜨렸다. 겨울 찬바람에 말라빠진 회색 들풀 아래엔 푸른 싹도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바야흐로 봄이다. 올해는 꼭 답청踏靑을 하리라. 요즘의 다짐이다. 몇 번의 답청을 할 수 있을까마는 횟수가 대수이랴! 한 번을, 하루를 영원으로 사는 것일 뿐, 감히 자아작고自我作古²⁾의 만용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학문은 동짓달 이불이라고 했지. 두텁지 않으면 추위에 시달리기는 매한가지이다. 글 몇 줄 읽은 깜냥은 호주머니의 지폐 몇 장보다 효용이 덜하다. 하여 매년 모진 겨울을 견뎌내야 했다. 그래서 봄을 기다렸고 봄맞이의 즐거움은 남다른 데가 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사람과 여느 철처럼 무덤덤하게 보낸 사람과는 감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즐거움은 주어지는 게 아니다. 몸소 버는 것이다.

잡초 베기로 다듬어진 하천 둑길에 자전거를 세웠다. 겨울 찬바람을 용케 견뎌낸 푸른 풀잎을 찾아 매만지고 있었다. 내 곁을 한 친구가 얼굴을 외로 꼬고 지나갔다. ‘한때’라는 친구다. 같은 고향에 살아도 초중고가 달라 데면데면한 사이다. 그래도 우리는 현재의 서로에 대해 알 것은 다 아는 좁은 지역에 산다.

내가 ‘한때’라는 말을 대단히 싫어하고 믿지 않은 데엔 저 친구 탓도 있다. 십여 년 전 귀향했다. 그가 과거에 어디서 얼마나 잘나갔는지, 어떤 성취가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여하튼 그 친구는 ‘내가 한때는,’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고들 했다. 그 동네 사는 내 고등학교 동기 친구들의 입을 모은 세평이었다.

얼마 전 ‘한때’와 같은 동네 사는 친구와 소주를 곁들인 짬뽕으로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친구는 머뭇머뭇 조심스럽게 ‘명예훼손죄’와 ‘무고죄’에 대해 말을 꺼냈다. 여태껏 우리 대화 중에 좀처럼 나오기 힘든 어휘였다. 당연히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정색을 했다.

“‘한때’가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전학 가서 살다가 10여 년 전에 고향인 우리 동네로 귀농했어. 와서 한 2년 정도 되어서 이장을 했지. 작년까지 8년을 했어. 임기가 2년이고 1년만 연임할 수 있는데, 이 핑계 저 구실로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하면서 8년이나 한 거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강제로 끌어내렸지. 그런데 인수인계하면서 통장을 보니 마을 기금이 1천만 원 가까이 비는 거야. 설명을 하라고 그랬지. 한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우기는 거야. 그래서 마을 개발위원 5명 명의로 공금 횡령으로 고발하고자 법무사 사무실에 갔지. 법무사가 절차를 밟자며 내용증명을 보냈어. 일이 이 지경인데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동네 돈 떼먹은 놈이 무얼 믿고 그러는지 도리어 ‘명예훼손죄’와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며 아직 버티고 있는 거야.”

그런 뚝심의 ‘한때’라도 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죗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 저런 정도의 똥배짱이고 철면피이면 정말 과거 한때 잘 나갔다는 말은 빈말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좀은 미안했다.

‘한때는,’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도 내 자신이 체험하고 있다. 한때는 정말 잘 걸었고 많이 걸었다. 그 탓일까? 무릎 연골이 많이 닳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엑스레이를 봐도 확연히 연골 부위가 좁아져 있었다. 하여 요즘은 연골을 아낀다. 가능한 한 적게 걷는다. 하여 운동량을 보충하려 자전거를 탄다. 땀을 흘릴 정도로 힘껏 페달을 밟는다.

‘한때는,’하고 말하는 사람치고 별 볼일 있는 사람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해도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사람이 있다. 한때는 정말 사장도 회장도 하고, 서울 시장도 대통령도 한 이명박 씨이다.

희대의 문제적 인간 이명박 씨가 과연 밝은 세상에서 봄맞이를 할 날이 있을까? 그래서 ‘내가 감옥에 가 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때가 있을까?

※1)홍여운 엮음,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버리게나』(고려문화사,1996), 21쪽. 2)나로부터 고례古例를 만든다. 곧, 고례에 구애 받지 않고 신례新例를 만든다. 수직사고(vertical thinking)에서 벗어나 수평사고(lateral thinking)하는 것으로 의역할 수 있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