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분노하라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3.24 22:50
  • 업데이트 2018.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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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2010년 93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분노하라’는 책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스테판 에셀(2013년 작고). 에셀은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과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옆에 다른 배와 나란히 함께 건너게 되었다. 두 배는 크기가 같고, 사공의 숫자도 같으며, 타고 있는 사람과 말의 수도 거의 같았다. 그런데 얼마 뒤 옆에 가던 배는 날아가는 듯이 내달려 이미 저편 언덕에 정박했다. 그러나 내가 탄 배는 여전히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했다. 그 까닭을 물으니 배 안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저들은 술을 사서 사공들에게 먹여, 사공들이 힘을 다해 노를 저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나는 부끄러운 얼굴빛으로 탄식했다. “아아! 이런 하잘 것 없는 조각배가 가는 사이에도 뇌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앞으로 나아감에 빠르고 더딤과 앞서고 뒤짐이 있다. 하물며 벼슬의 바다를 다투어 건너가는 가운데에 있어서이랴! 돌아보건대, 내 손에 돈이 없으니 지금에 이르도록 한 번도 벼슬을 못한 것이 마땅하도다.” 이에 글로 써서 훗날 볼거리로 삼는다.¹⁾

얼떨결에 부군수와 합석하게 되었다. 읍내에서 볼일을 마치고 버스터미널에서 우리 동네 앞을 지나는 노선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해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같은 동네 사는 선배로서 지역 토건업자였다. 막 버스에서 내린 모양이었다. 마침 잘 됐다면서 다짜고짜로 저녁 식사하러 가자며 내 손목을 낚아채고 끌었다. 읍내에서 하나뿐인 일식집으로 직행했다. 선배는 차는 있는데 왜 버스 타고 왔느냐는 내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예의 부군수가 나타났다. 부군수와 이 선배와 내 큰형은 초등학교 동기였다. 선배가 자기들의 동기인 누구누구의 동생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부군수는 말 안 해도 잘 안다며 반갑다,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끼지 못할 자리는 아니지만, 어째 들러리 선 기분이 듦은 어쩔 수 없었다.

부군수는 애옥한 집안에서 근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으로 출발했다. 50대 중반에 서기관(4급)이 되었으니, 나름 입신했다고 볼 수 있다. 토건업자 선배는 처세술이 좋다고들 했다. 지방의 자그마한 토건은 대부분 관급공사라 면장이나 군청 공무원들만 상대했다. 그런 선배에게 동네 사람들이 보내는 눈길은 별 곱지 않았다.

별 대수로운 대화는 없었다. 제법 값나가는 회를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초등학교 꼬맹이 시절 일화와 군대 시절 고생담이 전부였다. 특이한 점은 나보다 선배가 부군수에게 더 깍듯하게 술을 권하고 받는 정도였다. 술기가 어느 정도 돌자 부군수의 호기浩氣가 나왔다. 나보고 무슨 부탁할 게 있으면 하라고 했다. 마침 군청에 사무관 승진에 번번이 물 먹는 친구가 생각났다. 행정학과 졸업하고 7급으로 출발했다며 좀 챙겨봐 주십사, 라고 했다. 그러자 부군수가 아내가 뭐하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러자 부군수는 한 사람 봉급으로 생활하고, 한 사람 것은 투자하면 되겠구먼, 하고 간단히 처방하면서 시쁜 표정을 지었다. 7~8년 전의 일이다.

“사람들이 벅적벅적하더라. 우리 군郡 사람들은 거의 다 온 것 같더라니까.” 현직 군수의 출판기념회에 갔다 온 친구의 말이다. 그 부군수는 새누리당 공천으로 민선6기 군수가 되었다. 새누리당 공천이 열에 아홉은 당선에 기여했다. 이제 민선7기를 노리는 자유한국당 당원이다.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책의 정가는 인쇄된 숫자에 불과하다. 정가보다 수십~수백 배 많은 고액으로 책값을 내도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은 물론 부정청탁금지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책값 명목의 축하금품은 기부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도서구매비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선거자금을 우려낼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현직 군수의 출판기념회는 관내 주민에게 청구서를 뿌리는 행사이다. 토건업자는 물론 눈도장을 찍거나 최소한 ‘보험’을 들어야 하는 공무원이나 중소상인들에겐 초대장은 ‘현금 납부고지서’와 진배없다. 모르면 몰라도 토건업자 선배는 화장실에서도 쓸 수 없는 빳빳한 종이 묶음 값으로 봉투에 100만 원은 넣었을 것이다. 선배야 떡고물이라도 챙길 요량이었겠지만, 순전한 농부인 친구가 납부 고지서에 순순히 응한 데에 버럭 성이 났다. “네가 그런 데 뭐 하러 갔노?” 차마 얼마를 봉투에 넣었냐, 고는 묻지 못했다. 5만 원이나 10만 원은 넣었겠지.

이장단(관내 이장들 단체)에서 연락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면장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그래도 이장인데 어쩔 수 없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함박꽃을 피운 군수의 얼굴과, 국정을 농락한 박근혜와 국가를 수익모델로 하여 욕심껏 나라를 말아먹은 이명박의 얼굴이 겹친다. 걸주桀紂도 혼자 힘으로 포악무도를 저지른 게 아니다. 저런 ‘군수들’이 두 전직前職의 굳건한 버팀목이었다.

그림자처럼 따르고 메아리처럼 응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감옥으로 갔다. 그러나 암 덩어리를 제거한다고 완치되는 게 아니다. 온몸에 퍼져 있는 암세포가 더욱 무서운 법이다. 두 전직前職의 종범從犯인 저 군수는 밝은 햇볕 아래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현금을 뽑아내고 있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국에 말이다. 어찌 분노하지 않으랴!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²⁾

스테판 에셀(Stéphane Hessel. 1917~2013)은 위와 같은 사자후를 토할 때가 93세였다. 레지스탕스의 대의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현실의 조국 프랑스에 위기감을 느끼고 ‘분노하라’고 갈파했다. 이 땅의 아버지, 할아버지 독립투사들의 외침처럼 들려 가슴에 뭉클, 뭔가 솟아오르지 않는가!

분노하지 않으면 짓지 않는다 不憤則不作矣

“사마천이 이르길, ‘『한비자』의 「세난說難」과 「고분孤憤」편의 글은 성현이 분통을 터트린 저작이다’고 말했다. 이로 볼 때 옛 성현들은 분노하지 않으면 짓지 않은 것이다(불분즉부작의·不憤則不作矣). 분노하지 않고 짓는 것은 춥지도 않은데 떨고,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설사 그들이 책을 지었다고 한들 어찌 볼만한 것이 있겠는가?

『수호전』은 분통을 터트려 지은 것이다. 남송은 망하기 전부터 관리가 거꾸로 임명됐다. 어진 자는 낮고, 못난 자는 높았으며, 오랑캐에 길들여진 자는 높고, 중국인은 낮았으며, 한때는 군자와 재상을 지낸 자들이 마치 처마 밑의 제비와 까마귀같이 예물을 바치며 신하라 칭하며 흔쾌히 개 염소에게 무릎을 꿇는다.

감히 묻노니 이것에 분노한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전날 울부짖으며 수호에 모여들었던 장사들이다. 그들을 忠義라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³⁾

이지(李贄. 1527~1602. 호는 탁오卓吾)가 수호의 강도들에게 ‘충의’라는 미명美名을 부여한 것은 우려와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도적질하도록 내모는 저 탐관들과 명철보신할 기회만 엿보며 오로지 자기의 보존을 위해 속셈을 짜는 가짜 도학과 대조를 보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들이 불충불의하여 백성을 좀먹고 군주를 그르친 것을 통렬히 배척한 것일 뿐, 조정에 반항할 것을 충동질하려는 뜻은 결코 없었다.⁴⁾

친구가 통장을 꺼내 한 줄을 짚었다. 입금이 9524원이었다. 무슨 영문이냐 물었다. “부추 서른 박스 팔아 번 돈이다.” 날씨가 따뜻해져 부추가 쏟아져 나와 시세가 안 좋다는 것은 나도 앎 직하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 정도의 양이면 비닐하우스에서 부추를 베어서 박스에 담는 할머니들의 임금이 얼추 10만 원 이상 먹힐 것이다. 이웃 비닐하우스에서 수확 않고 갈아엎는 심정을 절실히 느꼈다.

비닐하우스에서 농협 창고로 싣고 간다. 거기서 또 인부들이 부추를 가다듬어 작은 단을 만든다. 유통업자들이 농산물 시장을 싣고 간다. 경매를 본다. 비닐하우스 농사짓는 한 친구한테 딸린 식구가 손에 다 안 꼽힌다.

“시세가 없다는 것은 안다. 도대체 경매에서 얼마를 받았냐?” 한 박스에 9000원, 27만 원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부추를 키우고 수확한 친구는 고작 1/30 정도를 손에 쥔 것이다. 물론 시세가 좋아 한 박스에 3만~4만 원이나 될 수도 있었겠지. 내일을 기약하며 친구는 어제와 다름없이 부추 비닐하우스를 아침, 저녁으로 여닫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는다. 그런 모습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이글거린다. 왜?

플래카드가 난무한다. 우리 지역 단위 농협 조합장이 무슨 상을 받은 모양이다. 농협중앙회 선정 ‘자랑스러운 조합장’. 동네에도 걸려있고, 면 소재지에도 걸려있고, 조합 사무실에는 화분도 즐비하다. 지역신문 광고란에는 아예 도배를 했다. 한 광고 당 50만 원은 하는 크기이다. 농민이 절박으로 내몰려도 그들은 위탁 농산물 수수료 3% 내외로 배고플 일이 없다.

내가 시골의 한낱 천학비재淺學菲才한 서생에 불과함을 나는 안다. 물방울 하나이다. 미풍에도 꺼질 듯 흔들리는 촛불 하나이다. 그렇지만 분노에 솔직해지리라 다짐한다. 저 도도한 강물도 가없는 바다도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이뤄졌다는 이치쯤은 안다. 가녀린 촛불이 모이고 모여서 대한민국의 역사까지 바꾸지 않았는가.

내 소박한 ‘버럭 성’에 감히 ‘의義’자를 붙인다, 義憤! 의분이 햇볕만큼 소금만큼 귀중한 역사 길잡이임을 살아내 온 세월에서 체득한 까닭이다. 하여 오늘도 내일도 분노하여 지으리라.

※1)이규보(1168~1241), 「주뢰설舟賂說」, 『동국이상국집』 2)스테판 에셀/임희근 옮김, 『분노하라』(돌베개, 2011), 15쪽. 3)이지/김혜경 옮김, 『분서焚書Ⅰ』(한길사, 2007), 375~377쪽. /기세춘, 『성리학개론 上』(바이북스, 2007), 411~412쪽. 4)옌리에산·주지엔구오/홍승직 옮김, 『이탁오평전』(돌베개, 2010), 3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