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찰이 '미친개'인가?
대한민국 경찰이 '미친개'인가?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3.27 17:25
  • 업데이트 201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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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찰이 '미친개'인가?

부산 사상구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무실 앞에서 전국경찰 온라인 모임 폴네티앙 회장인 유근창 경남경찰청 경위가 25일 장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국제신문(서정빈 기자)

‘송자’와 ‘시열이’¹⁾

공자의 본명은 공구이고, 맹자의 본명은 맹가이다. 그들을 성 뒤에 ‘자子’ 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그들의 높은 학문과 덕을 기리자는 뜻이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도 성 뒤에 ‘자’ 자를 붙여 존숭하는 인물은 공자·맹자 외에는 노자, 장자, 순자, 묵자, 한비자 등 극소수이다. 남송 때 주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성 뒤에 자를 붙여 존숭하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인물 중에도 성 뒤에 ‘자’ 자를 붙여 존숭하는 인물이 있다. 여러 명이 아니고 딱 한 명이다. 그가 누구일까?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는 아니다. 그들에겐 기껏해야 이름 대신에 퇴계나 율곡이라는 호를 부르는 것으로 높임을 대신할 뿐이다. 화담 서경덕이나 다산 정약용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자’라고 높여 부르는 우리나라 유학자는 누구일까?

바로 우암 송시열이다. 오직 송시열만을 ‘송자宋子’라고 높여 부르며, 그의 글을 모은 문집을 『송자대전宋子大典』이라 일컫는다.

송시열을 송자라고 높여 부른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사람보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의아해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가 죽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가 아니다. 그를 송자라고 높였던 당대부터 송자라는 그의 극존칭은 민족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송시열은 효종, 현종 두 조정의 스승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유일하게 그 이름이 3천 번 이상 등장하는 인물인 동시에 만 82세의 노구에 숙종이 내린 사약을 받아 마시고 인생을 비참하게 마친 유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송시열은 현대에 들어 이황이나 이이는 물론 서경덕이나 정약용보다 그 인지도가 훨씬 낮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민족의 위대한 조상을 너무 몰랐던 것일까?

조선 시대에도 일반 백성들은 그를 송자라 부르지 않았다. 그를 송자라고 떠받든 것은 노론이라는 한 당파뿐이었다. 지역적으로는 노론의 본거지인 기호 지방에서만 그를 송자라고 떠받들었다.

그의 반대 당파인 남인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개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나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인들의 본거지였던 영남 지방에서는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개의 이름을 ‘시열’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영남 지방 어느 마을, 어느 집에서는 그 이유도 모르는 채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개를 ‘시열’이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송자宋子’와 ‘시열이’! 이 얼마나 전율할 만한 가치의 전도이자 인식의 괴리인가.

‘미친개’ 논평 두고 한국당-경찰 ‘충돌’²⁾

경찰이 들끓고 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을 두고 ‘정권의 사냥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홍준표 대표마저 가세해 ‘자유당 말기 백골단 행태’라고 비난하면서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25일 현재 경찰관은 내부 인터넷망 ‘폴넷’에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손팻말에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뜻의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도 함께 적어 장제원 대변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양영진 창원중부서 형사과장은 “‘미친개’ 망언은 나쁜 범인 잡느라 밤잠 설치면서 일하는 우리 동료 형사의 가슴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다”며 “장 의원은 즉각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관의 반발과 사과 요구에도 홍준표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울산경찰청장의 행태를 보니 경찰 수사권 독립은 아직 요원하다”며 “탁 치면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장의 발표를 연상시키고, 이기붕의 자유당 말기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일부 경찰 간부의 행태는 결과적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경찰 온라인 커뮤니티 ‘폴네티앙’(회장 류근창 경위)과 퇴직 경찰관,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은 이날 부산시 사상구 장제원 의원 사무실 앞에서 장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장 대변인은 지난 22일 울산경찰청의 울산시청 압수수색에 대해 “경찰이 급기야 정신줄을 놓았다.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며 “정권과 유착하여 20세기 권위주의 정권의 서슬 퍼런 공안 정국을 만들고 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이렇게 장황하게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이유는 실존적인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에 그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미친개라고? 장삼이사가 파출소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치자. 막걸리를 몇 잔 걸치고 경찰은 ‘미친 개00’라고 설레발을 친다. 귓등으로 흘려들을 수 있다.

그러나 공당, 그것도 거대 야당의 대변인, 그것도 수석대변인의 말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미친개에 몽둥이가 약이라는 처방전에는 허준 할아버지도 동의할 것이다. 하여 진정 우리의 경찰이 미친개라면 지금 당장 몽둥이를 들고 파출소에 돌입해 경찰들을 때려잡는 게 민주시민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개는 단순하다. 짖으며 물어뜯으려 하든가, 꾸벅꾸벅 졸든가, 꼬리치며 아양 떨든가,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행동이다. 품격이 낮은 사람일수록 언행 폭이 좁다. 극단적이다. 그래서 사람에도 ‘개’같은 사람이 있다. 자신의 옳고 그름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막말’을 해대는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대개 저능하고 저급하다. 그런 자들이 국민을 대표한다며 우리의 민생을 좌우할 힘을 가진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치자. ‘개’같은 ‘소리’를 짖어대도 ‘임기’라는 게 있어 계속 ‘개소리’를 듣고 있어야 할 뿐, 별 도리가 없다. ‘국민소환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하기야 그 밥에 그 나물이니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짚고는 넘어가야 한다. 가까이 있는 것을 두고 왜 하필 먼 데 예를 드나? 이기붕의 백골단 들추지 말고, 백남기 농민을 이야기하라.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무고한 농민을 물대포로 살인한 미친개보다 더한 살인 경찰에 대해 홍준표는 어떤 처신을 했는가?

경찰 수사권 독립은 요원하다고? 사건 수사 95%를 경찰이 담당한다. 우리 경찰의 자질은 어느 선진국에도 빠지지 않는다. 인권 보호 차원에서 검찰의 긍정적 요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의 모둔 문제는 결국 하나의 기관이 수사, 수사지휘, 기소, 공판관여, 형집행까지 형사절차 전반에 걸친 모든 권한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민주주의의 대전제는 견제와 균형에 있다. 삼권분립도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연유한다. 더 적확히 말하면 권력을 가진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연유한 제도이다. 한 번 사고실험(thinking experiment)을 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을 모두 가졌다면? 아마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 먼 데서 예를 찾을 필요가 뭐 있나. 홍준표나 장제원이 삼권을 장악한 제왕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경찰에 역성들고 검찰에 사시斜視를 보내는 게 아니다. 경찰의 흑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비정치적인 검사 대부분의 수고가 사회안전의 간성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검경수사권 조정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좌지우지할 사안이 아니다. 제도는 해당 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제도의 지향점은 국민이다. 검사를 수사할 수 있는 경찰이 있어야 제2의 우병우가 출현하지 않을 것 아닌가!

장제원 대변인의 ‘막말’은 단순무식한 ‘비유의 오류’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런 막말을,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삶에서 왜 자꾸 들어야 하나. 그러나 장 대변인과는 달리 건강한 민주시민은 언행거지에도 품위 있고 점잖다. 투표로서 단죄한다. 안하무인으로 막말하고,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인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1)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석필, 1997), 10~12쪽. 2)민병욱, 『경남도민일보』, 2018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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