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에 복리후생비 산입은 '개악'이다
최저임금에 복리후생비 산입은 '개악'이다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18.06.01 18:40
  • 업데이트 2018.06.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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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에 복리후생비 산입은 '개악'이다

2015년 영미권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에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온라인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한 누리꾼이 “급격한 자동화로 대량 실업이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호킹은 이렇게 대답했다.

“기계로 창출된 ‘부’가 고르게 나누어지면 모두가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기계 소유주들이 ‘부’의 재분배에 대항하는 로비에 성공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끔찍하게 가난해질 것이다.”¹⁾

재계는 부의 재분배에 대항하는 로비에 성공했다. 매달 1회 이상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새로 산입算入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저임금을 삭감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는 아주 독특하다. 우리 노동자의 흔한 ‘월급명세서’를 살펴보자. 먼저 기본급이 있다. 여기에 ‘상여금과 여러 수당’이 붙어서 임금총액이 정해진다. 수당 항목은 여러 가지이다. 식대, 교통비, 가족수당, 명절귀향비, 여름휴가비에다 심지어 김장비나 체력단련비 등도 있다.

복잡한 월급명세서 ... '통상임금' 줄이려는 기업의 계산

월급명세서가 이렇게 복잡해진 이유는, ‘통상임금’을 최대한 줄이려는 기업의 ‘계산’ 때문이다.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면 같은 금액이라도 기본급보다는 수당을 올린다. 왜냐하면 기업이 노동자들을 ‘더 싸게 더 오래’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과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므로 월급을 올리더라도 가능한 한 통상임금은 묶어두고 각종 수당을 붙여 월급 총액을 올리는 것이다. 통상임금이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는 기본급과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수당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재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너무 좁아 기본급 수준은 낮지만, 상여금과 각종 수당 등을 더한 임금 총액이 많은 노동자까지 최저임금 인상으로 ‘불합리한’ 혜택을 본다고 주장했다.²⁾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도 “연봉이 4000만~5000만 원이지만 복잡한 임금체계 때문에 기본급이 157만 원 미만이어서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현실 등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의 어려움도 반영해서 통과한 법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기본급을 묶어둔 기업의 ‘꼼수’를 모른단 말인가? 연봉이 많아도 기본급이 낮다는 말은 그동안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당한 노동 대가 이하의 임금으로 많이 부려먹었다는 방증 아닌가!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더라도 결국 8000원 수준으로 떨어져 ‘줬다 뺏기 최저임금 삭감법’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타당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산입범위가 확대되어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노동자가 받는 임금 총액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와 여야 정치권, 그리고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법 개정 이유 중 하나로 ‘소상공인 부담 완화’를 든다. 그러나 소상공인이 직면한 ‘손익구조’ 악화문제에서 인건비는 작은 요인에 속한다. 매년 가파르게 치솟는 상가 임대료, 높은 카드 수수료에다 프랜차이즈 체인의 본사에 내야 하는 로열티가 더 절박한 문제이다.

상여금을 최저임금에는 산입하면서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 않는 불합리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상여금을 최저임금에는 산입하면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불합리를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뻔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는 최저임금이 올라도 그 혜택이 없거나 적어진다.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도 휴일이나 야간에 근무해도, 근무 시간 외 초과 노동을 해도 그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법이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도 좋다고 인정하는 꼴이 된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은 제이(J)노믹스의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이윤주도성장 전략의 한계에 대한 반성이다. 최악의 경제적 불평등으로 붕괴 직전인 경제공동체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최저임금에는 인간과 인간의 노동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감정노등이든 인간의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의 수많은 필요를 그만한 인간의 노동으로 충족시킨다. 하여 종류를 불문하고 인간의 노동은 똑같이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물론 고급이라 불리는 노동도 있고 미숙련 단순 노동도 있다.

지난해 산업은행의 연봉이 남성은 1억2234만 원, 여성은 6625만 원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6년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중 금융 분야에서 한국은 87위로 우간다(81위)보다 뒤졌다. 손쉬운 ‘이자 장사’로 지난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여 4대 시중은행의 직원 평균 보수가 9000만 원을 넘어섰다.³⁾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사무실에서 ‘이자 장사’하는 은행 직원의 노동과 땡볕에 얼굴을 그을리며 생활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미화원의 노동에는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가.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누구는 1억 이상의 연봉을 받고 누구는 생활임금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을 받아야 할 정도인가? 과연 합리적 기준이 있는 것인가?

사회체제, 경제구조 탓일 뿐이다. 둘 다 공동체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한다. 노동의 대가가 후한 것에는 배 아파할 이유는 없다. 다만, 어떤 노동이든 그 대가가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최저임금 상승 따라 타격 받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도울 방법은 많아

불합리할 뿐 아니라 왜곡된 경제구조는 그대로 두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강변하는 것은 인간파괴적인 주장이다. 노동으로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노동과 소득이 분리돼 일을 해도 가난에 벗어날 수 없는 사회가 어찌 정상적인가. 인간에게 기꺼이 동물적인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사회일 뿐이다. 그런 사회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실패’로 최저임금 상승에 따라 타격을 받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도울 방법은 많다. 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조세와 재정 정책이다. 안효상 기본소득네트워크 상임이사는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현제 24%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스웨덴은 52%, 프랑스 45%에 이른다. 오이시디(OECD) 평균인 34% 수준으로만 올려도 (기본소득 실현은) 당장 가능하다”고 말한다. 적정한 조세만 거둬도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체력이라는 것이다.³⁾ 소상공인 등 시장의 약자들을 도울 수 있는 재정 정책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함의이다.

최저임금 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집회.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치공학에 의해 인간다운 삶의 최후의 보루인 최저임금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해야 한다. 당사자가 참가 없이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들은 고학력, 고소득자들이다. 최저임금은 그들과 무관하다. 대의민주주의란 본래 똑똑한 엘리트를 뽑아 정치를 대신 맡겨 보자는 것이다. 엘리트가 대중과 구분되는 소수였던 시대의 산물이다.

지식 대중화 시대에 최저임금 노동자일지언정 국회의원에 지식 면에서 꿀리지 않을 사람도 많다. 그러나 국회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최저임금 노동자를 대표할 의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이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다. 가진 자와 엘리트에 의한 과두정치(oligarchy)일 뿐이다.

‘최저임금 1만 원 속도 조절론’과 ‘혁신적 성장론’이 정부 일각에서 나온다. 이윤주도성장론이 이름만 그럴듯한 외피를 갈아입은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저항이 만만찮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기업이 당연히 그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 사회전체가 유익하다는 뜻이다.

노동은 인간 삶의 기초이고 신성 ... 정당한 대가 받는 것이 정의 실현

지금 독일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들보다 1년에 700시간을 덜 일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의 꾸준한 노동투쟁의 열매이다. 최저임금을 포함한 모든 임금은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연민으로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다. 노동의 대가이다. 이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지 못할 때는 투쟁을 하여 쟁취해야 한다. 하여 최저임금에 묶여 있는 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들은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 노동은 인간 삶의 기초이고 신성하므로, 그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곧 정의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1)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최저임금 투쟁하는 노동자가 미래의 중인공이다」,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30일. 2)이지혜, 「최저임금에 숙식비도 넣자? 월금 더 안 주려는 재계의 꼼수」,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23일. 3)사설, 「경쟁력은 후진국인데 ‘억대 연봉’ 받는 금융공기업」,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29일. 3)박기용, 「“조세부담률 OECD 평균으로 올리면 모든 국민 기본소득 월 30만원 가능”」,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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