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장안읍. 바닷바람이 해안을 스치며 흩날릴 때, 오래전부터 그곳에 서 있는 철의 괴물을 우리는 본다. 이름하여 고리2호기. 1983년 처음 가동을 시작한 이후로, 이제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설계수명을 한참 넘어선 노후 원전이다.

그런데 2025년 11월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제224회 회의에서 고리2호기의 수명을 10년 연장(계속운전)하기로 결정했다. 재적 6명 중 5명이 찬성했고, 단 1명만이 반대했다. 그 결과, 2023년에 멈췄어야 할 노후 원전은 2033년까지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이로써 고리2호기는 국내 최장수 원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었다.

수명연장이라는 단어는 겉으로는 단순히 시간을 늘리는 정책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겁고 위험하다. 이미 한계를 넘어선 기계 위에 생명을 맡기는 결정, 그것은 인간의 오만과 무책임이 결합된 선택이다. 노후 원전은 단순한 발전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만, 수백만 사람의 삶을 위협하는 잠재적 재앙의 씨앗이다. 철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원자로는 결코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 작은 부주의,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장비의 노후화는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이 보여준 것은 통계와 보고서 속 경고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공포다.

우리 사회는 편리함과 경제적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을 가볍게 여긴다. 전력 공급 안정, 정치적 성과, 경제적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은 시민의 생명보다 가볍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계산기에도 담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전기 요금과 경제적 지표는 늘 계산서에 넣을 수 있지만, 한순간의 사고가 가져올 참극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 결정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기술, 인간의 오만이 만들어낸 재앙의 서막이다. 이미 설계수명을 훨씬 넘어선 원전 위에, 우리는 과연 어떤 신뢰를 올려놓을 수 있는가.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도자에게 있는가, 원자력공사에 있는가, 아니면 무력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있는가. 그 누구도 아니다. 책임은 모든 이의 삶 위에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나는 부산 해안선을 오가는 어부들의 삶을 떠올린다. 하루하루 바다 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가족은 고리2호기 바로 아래 살고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원전의 철제 울타리 안에 잠들어 있는 방사능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제대로 고려했는가. 멀리서 통계로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단어는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가벼울 뿐이다. 실제로 그 위험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과 피부는 그 무게를 매일 견뎌야 한다.

또한 우리는 원전을 둘러싼 기술적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노후 설비의 취약성, 냉각 시스템의 효율 저하, 내부 부품의 금속 피로 등은 장기 운전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문제들이다. 최신 기술과 점검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고 하나, 그것이 사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미 검증된 설계 수명을 넘어선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완전히 따를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환상이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은 단순히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기술의 한계를 무시하고, 편리함과 이익을 위해 생명을 도박판 위에 올려놓는 결정이다. 이 결정은 미래 세대에게 떠넘긴 무책임한 선택이며, 시민에게 드리운 불안을 현실로 만드는 행위다.

우리 사회가 기술과 발전을 선택하는 방식에도 질문이 필요하다. 전력 공급 안정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과 자연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원자력은 결코 경제적 계산이나 정치적 성과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전을 담보로 한 계산, 위험을 무릅쓴 선택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정치적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십 년간 안전 문제와 관련해 반복적으로 경고해왔고,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노후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명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을 선택하는 것은 시민을 무시한 결정이다.

나는 고리2호기 바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이들의 미래, 가족의 안전, 그리고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삶. 이 모든 것이 계산서에 담기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사실만 있다.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은 생명을 담보로 한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철의 거인이 다시 숨을 쉬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그림자 아래 놓인다. 멈추지 않는 기계 위에 생명을 올려놓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다. 인간의 오만, 권력의 편리함, 경제적 계산은 생명의 무게 앞에 무력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왜 멈추지 않는가, 고리2호기여. 왜 생명을 담보로 한 선택을 계속하는가.

부산 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는 강력하게 외친다. 멈춰라, 고리2호기. 멈춰라, 우리의 무책임한 선택. 멈춰라,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협하는 철의 그림자여.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생명을 경시한 재앙의 목격자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과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화를 내려놓아야 한다. 위험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결정을, 우리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오늘 멈추지 않으면, 내일의 후회는 너무 늦을 것이다.

고리2호기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필자 [사진 = 장영식]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