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윤석열의 전한길 씨 옥중 편지(2025년 11월 26일자)는 표면적으로는 신앙적 진솔함과 고백의 언어를 담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편지는 신앙의 본질과 거리가 먼,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글 전체의 구조는 신앙이라는 이름을 빌려 특정 정치적 목표, 특정 인물, 나아가 자신의 현재 처지를 정당화하려는 메시지로 채워져 있으며, 그 방식은 기독교 신앙이 지향해 온 겸손·회개·자기 반성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글은 단순한 개인적 소회나 종교적 위로나 고백이 아니다. 이것은 신앙의 영역을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시키며, 권력의 정당성을 신앙적 언어를 통해 재포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기독교 공동체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사례다.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전용한 위험성

편지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문제는, 신앙의 언어가 철저히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전한길 씨를 과도한 경외와 찬양의 표현으로 감싸며, 그 존재 의미를 신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것은 단순한 ‘격려의 표현’을 넘어서서, 특정 개인을 신앙의 체계 안에 위치시키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결단과 행위를 설명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인간이 스스로를 절대화하거나, 특정 인물을 선택받은 존재처럼 신격화하는 언어를 경계하는 데 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 인간이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편지는 바로 그 금기를 넘어서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특정 동료를 향한 믿음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언어로 포장하며, 개인적 선택을 절대화하려 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신앙을 진리의 근원으로 삼기보다 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도구로 활용하는 전형적 방식이며, 이는 기독교적 윤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무엇보다도,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종교적 의미로 치환하며 마치 하나님이 정치적 동맹 관계를 설정해 준 것처럼 서술하는 방식은 신앙 공동체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교회를 정치 집단과 구별해야 하는 종교적 본질을 훼손하고, 신앙의 언어를 세속 목적에 결합시키는 위험한 전례가 된다.

자기정당화와 심리적 폭력의 언어

편지를 읽어나가다 보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극심한 혐오감이 밀려온다. 문장 곳곳에 스며 있는 자기합리화, 무오류적 태도, 교만한 어조는 독자를 강한 거부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 글은 단순히 불쾌한 것이 아니다. ‘심리적 폭력’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자신의 정치적 실패와 책임을 외면하고, 옥중이라는 상황마저 스스로를 희생자로 포장하는 방식은 읽는 이에게 거대한 감정적 부담을 준다. 독자는 그 글을 읽는 동안 자신의 감정이 침범당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되며, 문장이 던지는 공격적인 에너지가 몸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한 압박을 받는다.

특히 불쾌감을 극대화하는 부분은, 편지가 자신의 처지를 ‘고귀한 사명을 수행하다가 부당하게 핍박받는 사람’처럼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 서사는 책임 회피, 자기 미화, 상황 왜곡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그것이 신앙의 언어와 결합될 때 독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한층 더 커진다.

문장들은 마치 억지로 신앙적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억압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구조 자체가 독자에게 “내가 옳다”,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나는 고난을 겪을 자격이 있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이미지를 주입하기 위해 설계된 듯하다. 이러한 태도는 기독교적 회개와 겸손의 정신과는 전혀 맞닿아 있지 않다.

극우적 종교 언어와의 유사성

이 편지는 일부 극우 종교 집회에서 들려오는 언어적 분위기와 매우 닮아 있다. 신앙적 표현과 정치적 구호가 뒤섞이고, 특정한 정치적 선택을 신앙적 의무처럼 제시하며, 공동체의 감정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극우 기독교 집회에서 종종 등장하는 현상이다.

윤석열의 편지는 이러한 패턴을 그대로 재현한다. 자신의 정치적 선택과 상황을 신앙적 의미로 끌어올리고, 독자에게 마치 ‘이 길이 하나님이 선택한 길’이라는 인상을 부여하며, 그 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신앙적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처럼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신앙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 문제이자, 신앙 언어의 가장 위험한 오염이다.

고난과 옥중 상황의 자기중심적 왜곡

윤석열은 자신의 옥중 상황을 ‘뜻 깊은 고난’처럼 묘사하며 마치 이 고난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자기성찰을 철저히 배제하며, 고난의 의미를 정치적 정당성 강화에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기독교에서 고난은 언제나 회개와 내면 성찰의 과정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고난은 자기 미화와 무오류성의 강조를 위한 장치에 가깝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에 미치는 구조적 타격

이 편지는 한 개인의 글을 넘어, 신앙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을 품고 있다. 신앙의 언어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때, 교회는 본질을 잃고 특정 정치인의 선전 도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신앙 공동체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진짜 신앙인’과 ‘가짜 신앙인’으로 나뉘기 시작하면, 교회는 더 이상 화해와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다. 이는 종교의 정치화가 낳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다.

윤석열의 옥중 편지는 신앙과 정치가 뒤섞일 때 발생하는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앙은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아니다. 신앙의 언어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되면 공동체는 분열하고 진실은 흐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앙의 순수성 회복, 정치와 종교의 경계 분명화,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진정한 신앙은 권력이 아니라 겸손·회개·사랑 속에서 나타난다.

박철 목사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