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빗자루 [유튜브 mansoo lee]

대빗자루

이광

구석이 제격인지 거처는 늘 그 자리
일터로 나가서도 환대받은 적은 없다
서러운 눈칫밥 먹듯 이는 먼지 삼켰다

지난 걸음 돌아보면 귀얄무늬 지워진 길
바닥을 쓸어안고 모지랑이 되어갈 때
빗자루 하늘을 나는
꿈에 잠시 기댄다

마당을 쓰는 대빗자루는 일을 마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다 둡니다. 드러낼 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죠.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살아온 사람들 또한 드러나지 않는 존재입니다. 특히 대빗자루와 같은 역할은 먼지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환대받지 못합니다. 게다가 밑천이 되어준 몸이 노화하기 시작하면 그간 노동 현장에서 쌓아온 경력은 ‘귀얄무늬 지워진 길’처럼 묻히고 모지랑이 신세가 되어 구석으로 내몰리고 말지요.

모든 사물은 나름의 사연을 가집니다. 사물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삶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사람 사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대빗자루에게도 귀얄무늬 같은 추억이 있고, 예전에 꾸었던 꿈은 지금도 위안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빗자루는 이루지 못할 꿈이지만 꿈에서나마 날아다닌다면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겠지요. 어려운 세상을 견디는 사람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