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로 가면 주리라고?저 평범한 길 안내판을 왜 찍었을까요? 저에게는 특별한 안내판이기 때문이었지요. 제 딸 이름이 ‘주리’라서요. 영어로도 똑같네요. 제 딸이 여고생 때 'Juri'라고 하길래 너무 재미없으니까 'Joolee'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맘에 안 들었는지 아빠 말을 안듣고 기어코 'Juri'라고 하더군요. 아빠 말을 안 들었어도 제 딸 주리는 귀엽고 예쁩니다. 성격이고 모습이고 저를 꼭 빼닮았습니다. 저는 제 딸을 ‘주리’라고 부르기보다 ‘박쭈’라고 장난스럽게 부르는

마침내 정관과 임원과 참여자를 갖추고 법인설립을 알리는 창립총회가 많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구청의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당일에 1억 원이 넘는 기금이 조성되었다. 비로소 선거공약을 이행하게 된 구청장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초대이사들과 점심식사를 마친 후 열찬씨를 불러 “이 과장님 수고했습니다. 오늘 같은 날 그냥 넘어가면 구청장이 아니지요. 저녁에 생활지원과의 직원들과 간담회나 하십시다.” 전원을 삼겹살집으로 초정하더니 직원 전체의 노고를 치하하고 담담계장과 담당직원을 직접 호명해 박수를 치고 모든 직원들에게 차례로 술을 권해

그까짓 골짜기라고?원 세상에!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수성못에서 조금 걸으니 이 계곡이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깊은 산도 아니고 시골도 아니고 대도시에, 그것도 차가 다니며, 수십만 명이 사는 바로 옆에 이런 삼삼한 물놀이터가 있다니! 그것도 시원한 다리 밑에! 그야말로 천혜의 피서지이더군요. 물도 제법 맑아 보였지요. 이 동네 사람들은 어디 먼데 놀러 안 가도 되겠구나 싶었지요. 생각 같아서는 저도 저 계곡에 풍덩 들어가 저 얼라들처럼 놀고 싶었지만 그냥 발길을 앞으로 돌렸습니다. 아쉽지만 계곡(溪谷)의 철학을 생각하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가냘픈 몸매에 핏줄이 비칠 정도의 하얀 혈색에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마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아동만화 캔디버전의 서무아가씨 권윤서양을 만난 것이었다. 이미 스물아홉이라는 적잖은 나이로 서울의 정석이와 동갑인 이 아가씨는 겉보기와는 달리 너무 부지런하고 알뜰하며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어떤 어려움도 비켜가지 않는 강력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공무원으로 처음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권순칠이라는 참으로 촌스런 이름이라 고심 끝에 개명(改名)을 했다는데 그건 아들도 없이 무려 8자매의 딸 중에서 일곱

꽃숨결 공 영 해 장대비 속으로아우가 떠나간 뒤젖은 아침 숲을햇살이 찾아왔다산 자의길을 가꾸는꽃숨결이 가쁘다- (시와 시학), 2020년 가을호 유난히 비가 많이 온 금년은 여름이 짧았다.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던 날 아우는 떠나갔다. 친구 같은 아우가 이 세상을 버리고 갔고 세상이 다 젖을 만큼 큰비 속으로 맨몸으로 “장대비 속으로 아우가 떠나간 뒤”에 시인의 슬픔은 숨겨져 있지만 깜깜해진 세상이 느껴진다. 장대비는 먹구름 속에 있고 장대비는 눈물을 머금고 있다.벗은 죽었지만 산 자는 일상을 포기할 수 없다. 그를 보낸 다음 날 슬

큰 연못일 뿐이라고?대구에 왔습니다. 대구(大邱)란 큰 언덕인데, 큰 언덕은 대구 안에 없지요. 큰 산 언덕 안에 둘러싸인 평평한 분지가 대구이지요. 이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이라는데, 정감 어리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달구벌(達句伐)이라는 이름은 정감어린 게 아니라 살기어린 살벌한 이름이지요. 아마도 이 평평한 땅에서 황산벌 전투처럼 큰 달구벌 전투가 있어서 사람들을 많이 죽인 처참한 역사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달구벌(伐)이겠지요. 사람(人)을 창(戈)으로 쳐죽인다는 뜻이 벌이지요. 옛 이름인 달구벌보다 대구라는 요즘 이름이 더

그 2006년이 저무는 12월 31일 종무식을 앞둔 열한시 경에 열찬씨는 주민복지국 생활지원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기획감사실장에서 밀려나 과 이름도 생소한 신설부서 자치생활과와 방재안전과를 거치느라 그 3년을 허송세월한 끝에 비로소 아웃사이더를 면한 중심보직인 생활지원과장으로 구정의 중심으로 복귀한 것이었다. 발령장을 주는 자리에서 “제가 왜 이 과장님을 생활지원과장으로 보내는지는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겁니다.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박극제 구청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

(부산=국제뉴스) 조하연 기자 = 세계 최정상급 클래식 음악축제 ‘2023 제14회 부산마루국제음악제(2023 Busan Maru International Music Festival)’가 오는 31일 부산문화회관에서 개막공연을 펼친다. 8월 31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는 개막공연(메인 콘서트)은 BMIMF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 ‘팔리카로프(불가리아)’와 피아니스트 ‘소피아 바쉐룩(러시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협연이 마련된다. 관람료는 VIP 3만원, R석 2

옛날의 사랑 김종목 옛날의 사랑은 천천히 왔었다네불꽃같이 성질 급한 사랑이 결코 아닌느리게조금은 속 터지게그렇게 왔었다네담 너머로 눈빛을 수도 없이 던지면서가슴 태우며 밤잠을 설치면서어쩌다 마주친 눈길에 가슴 쿵쿵거리면서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가고 난 뒤에야겨우 편지를 주고받곤 했었지만지금은인터넷 핸드폰으로부리나케 해버리지화끈해서 좋은지는 아직 나는 모른다네그래도 은근한 그 옛날이 그리워서느리게 다시 한번 더 사랑하고 싶다네.김종목 시인의「옛날의 사랑」은 사랑의 속도와 방법에 대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불꽃같이 성질 급한’ 화끈한 사

상주들이 인사를 하는데 아직 장남은 보이지 않고 유독 큰딸의 얼굴이 많이 상해보였다. “형수, 고생 많이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면 되었지요. 누구나 한 번 가는 길에...” 하고 밖으로 나와 술상을 받고 “형님, 혼자 마셔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형님이 마지막으로 주는 술이라 악착같이 다 마실 겁니다.” 술상에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한 병을 비우고 또 한 병을 시키니 “보소. 당신 너무 빠른 거 아잉교?” 하며 영순씨가 밥부터 먹으라고 하고 형수가 돼지수육을 더 시켜 앞에 놓아주었다. 명절이라 그런지 밤이 깊어도 문상객이 별로 없었

백병원으로 김청길씨를 문병하는 빈도가 1주일에서 2주일로, 다시 2주일에서 점점 간격이 길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형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데, 내가 어려울 때 어떻게 도와준 분인데 싶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시간을 내어 문병을 가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당신, 이리 소홀해도 되는 것잉교? 아주버님이 어떤 아주버님인데 그래 성의가 없소? 만약에 아주버님이 술 마시러 나온나, 고스 톱 치러가자 하면 그리 깨알을 부맀겠소?” 힐책하던 영순씨도 정작 열찬씨가 가자고 하는 날 무슨 일이 있어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좋은 일은 함께

그 알 수 없다는 것 석정희 어떤 방벽도 뚫는 힘이 무엇이냐 묻지 마세요걸어 잠근 철문도 넘어 아스팔트 길 달리듯 내달아 가는 힘사랑인 것을숨기려 감추려지도 않고 천길 벼랑에서도 끌어 올리는 힘사랑인 것을꺼지지 않는 방울이 되어 구르고 떠돌다가 돌아 와 안기는사랑인 것을낯 선 길목에서 만나서도 놓치지 않고 후회하지 않게 붙드는사랑인 것을모든 것 지나가지만 바람 속에도 가지 붙들어 꽃 피어내는사랑인 것을세상을 돌고 돌다 지쳐 슬며시 잠겨드는 시냇물 받아 품는 바다같은사랑인 것을밤새 촛불 밝혀 행여하며 속태워 기다리는 어머니 마음사랑인

객기를 부린다고?왼쪽 놈은 제가 사는 동네 아저씨가 키우던 녀석이고, 오른쪽 놈은 대구 부근을 걷다가 만난 녀석입니다. 이 두 놈은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지요. 왼쪽 놈은 제가 먹을 것도 가져다 주고, 말도 걸며 이마와 턱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저를 보면 늘 이런 시큰둥한 모습입니다. 도무지 인사성이 하나도 없는 놈이였지요. 성질은 아주 못돼 술취한 동네 할아버지 코를 물어서 김해의 어느 농장으로 넘겨졌지요. 이 녀석의 팔자가 어떨지? 그런데 오른쪽 놈은 지가 저를 언제 보았다고, 반갑다며 저렇게 좋다고 꼬리를 흔듭니다.

떡볶이만 먹었다고? 우리나라 지명에는 ○산, ○주, ○평 등이 많지요. 이렇게 뻔하지 않은 가장 아름다운 지명은 무엇일까요? 저는 전남의 ‘여수’가 아닐까 합니다. 여수(麗水)! 아름다운 물이란 뜻이지요. 그럼 가장 전원스러운 느낌을 주는 지명은 무엇일까요? 사진 속의 제가 지나고 있는 칠곡이 아닐까 합니다. 칠곡(七谷)! 7개 골짜기라는 뜻이겠지요. 제대로 시골(村)스러워 포근한 느낌을 줄 것 같지 않나요? 그러나 구미를 지나 만난 칠곡은 행정구역상 아직 시(市)는 아닌 군(郡)이지만 시에 가까운 커다란 도시였지요. 7개의 골짜기

비록 화재로 모양은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우리 부산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이 토성상가시장을 재건축하여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입주상인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아파트거주자들은 안락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건축을 여러 번 시도 했지만 토성상가시장 자체가 대부분 불과 몇 평의 좁은 면적을 구분 소유한 수백 명의 영세상인들로 이루어지고 이미 대부분 이주해버린 아파트입주민들의 동의도 얻기가 쉽지 않아 이렇게 수십 년째 시간만 허비하여 점점 더 위험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겁니다.” “그건 그렇지.”“그래서 뭐 우짜잔 말이

암막새를 기다리며 박홍재 처마 밑 헤어지고 소식 없는 암막새여천 년 동안 수소문도 끝끝내 감감하다어느 날 깜짝 놀라게 오시려고 숨으셨나신라인 환한 미소 상현달 머금은 채한 조각 깨어진 삶 망부석 된 수막새그리워 새긴 그 얼굴 꿈속에도 찾고 있다이제는 드러낼 때 됨직도 하다 마는앞뜰에 꽃무늬로 봉긋이 오시려고낯설게 세상이 변해 망설이고 계시나- 2022년 세종도서 선정 시조집 《바람의 여백》에서신라를 대표하는 신라인의 모습 수막새!암막새를 기다리는 마음이 천 년이 지났다.그 애절한 마음을 천 년을 기다려 왔다.신라의 부흥

샛별 예찬 이 현 수 샛별이 좋은 건 늘 그 자리에 있어서다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그 빛을 발하고 있으니,오늘 밤도여전히 내 자리를 침범하는 눈빛들을 돌려세우고내게로만 향해있다바람 지나간 남산 솔숲에 걸린 저 샛별은누가 걸어놓았을까?- 동행문학, 2023년 여름호 금성을 해질녁에 보일 때 ‘개밥바라기’라고 부르고, 새벽하늘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고 부르는데 ‘새벽의 별’ 또는 ‘새로 난 별’이라는 의미를 줄여서 호칭한다.작고하신 이가림 시인이 미국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이 별을 자세히 보시고 시를 쓰기도 했는데

징그럽기만 하다고? 위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쥐’ 하면 생각나는 것은 징그러움입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 만난 이 죽은 새끼 쥐는 징그럽다기보다 가여웠지요. 저에게는 쥐 새끼가 아니라 새끼 쥐로 보여졌지요. 쥐 새끼와 새끼 쥐는 어감상 완전히 다릅니다. 가령 개새끼는 욕이지만 새끼 개는 귀여운 개의 어린 새끼이지요. 로드킬도 아니고 이 가여운 새끼 쥐는 왜 길에서 이렇게 애처롭게 죽어갔을까요? 감긴 눈에서 나오는 저 불쌍한 눈빛을 보세요.쥐는 뱀과 막상막하한 혐오 동물입니다. 그러나 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동

그 판에 산우회의 손영철이란 형뻘의 회원이 자신도 당뇨가 심하지만 절대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무언가가 음식이 당긴다는 것은 그 음식에 든 영양분을 몸에서 원하는 것, 그러니까 몸에 꼭 필요한 것이니 굳이 가릴 것이 없이 술만 빼고는 다 먹으라고 해서 “그런데 형님, 나는 다른 음식은 모르겠고 술만 자꾸 당기는데 어떡하우?” “할 수 없지. 몸에서 받으니까 당기지. 죽기 살기로 마시고 보는 거지.”하면서 마침내 음식도 가리지 않았는데 당뇨수치나 아토피는 그저 그만그만한 것이었다.이미 농촌에서도 옛말이 된 어정 7월, 둥둥 8월이

물은 단지 물이라고?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무엇일까요? 비행기를 타면 그 무거운 비행기가 뜬다는 것이 참말로 신기합니다. TV, 핸드폰, 컴퓨터, 인터넷도 참 신기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조물보다 훨씬 더 신기한 것이 있지요. 바로 물입니다. 비도, 폭포도, 계곡물도, 강도, 바다도 모두 신기합니다. 물은 가장 평범하면서 세상에서 신기하기도 하고, 또한 가장 맛없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기도 합니다. 지극히 목마를 때 시원한 물처럼 맛있는 건 없지요.그런데 물은 신기함과 맛있음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이기도 합니다. 노자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