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주교수와 인사를 끝으로 서유럽일주를 목표로 파리드골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신혼부부가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서울의 친구들과 병민이아빠, 엄마, 귀찬이누님과 식구들과 작별을 하고 “형수, 잘 가이소. 욕 봤심데이.”“데름도 잘 가소. 동새야, 욕 봤다.” 하고 돌아서던 김해댁이 “형님, 수고했심더.” 황급히 돌아서 순찬씨에게 인사를 하고 “박서방네, 고서방네도 잘 가고 고서방요, 고생했심더.” 하고 떠나려는데 “올케야, 나는 고생 안 했나?” 귀찬씨가 나서자 “참, 그렇제. 조서방네도 욕 봤데이.” 비로소 관광버스를 향하는데

신작시 갑오징어 김 영 화 생물이라 시세 따라 몸값 들쑥날쑥더니마트 할인행사에서 데려온저 대양 쏘다니던 두꺼운 갑옷 더듬이 촉수성마른 성정 아니랄까 스스로 덮어쓴 진한 먹그를 토막 내 헤쳐 놓고 문득 들여다본다늑골 이어붙인 듯 매끈하고 하얀 돛대 한 척두툼한 살 속 절대 허우적거리지 않겠다는 듯단단한 결기가 박물관 화석처럼 말 건다스무 살 막막했던 첫 출근 자주 넘어졌던 비린 꿈들월급봉투에서 꺼내 산 두어 권 책이그나마 쓰디쓴 초년생 비위 받치던 버팀목이던아래보다 위 속보다 바깥이 먼저 뵈던 미숙했던 눈길쉰 끄트머리 주방 개수대 서

도마 성 선 경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그 깊은 산중에서철도 모르고 잘려왔을 나무 한 그루잎도 가지도 다 버리고서무슨 신행 가는 기분으로그 중 속 깊은 한 토막만 왔을 터이렇게 온몸으로 칼을 받아야 하는 줄도 모르고 왔을 터한평생 온몸으로 칼을 받으면서도제 몸에 난 칼자국보다모두 나 때문에 칼을 맞는다고내 탓이요 내 탓이요부뚜막에 올라 우는 어머니아주 속 깊은 나무 한 토막-《여기, 창녕》, 김일태, 성선경 시집 2023년 부엌은 어머니의 신성한 곳이다. 세상에서 최고의 무술 고수인 어머니의 칼 솜씨는 도마 위에서 발휘한다. 거기서

“지금부터 오늘의 주례 강인수 선생님으로 부터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부경대교수를 지내고 현재 석좌교수로 계시는 강인수 선생님께서는 , 등의 작품으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산문인협회회장을 역임한 원로소설가이십니다. 작가선생님의 훌륭한 주례사를 경청해주시기 바랍니다.”멘트를 하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단상으로 쏠렸다. 총각선생시절부터 여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미남에 대학교수와 소설가라는 덤까지 붙어 정말 멋쟁이노신사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열찬씨는 내심 조마조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천재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열찬씨가 주례를 섰는데 벌써 아이가 돌이 지났다고 했다.“아이구, 딱따구리선생님!”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와 함께 뜻밖의 하얀 얼굴하나가 낱났다. 5잡과 어울려 자주 등산을 다니던 최재민씨였다. 음정박자는 잘 안 맞아도“뒷동산 딱따구리는 참나무구멍도 뚫는 대에에...”누구보다 신명이 많은 사람이었다. 건축사랑 직업상 요즘 수도권 현장에서 감리를 보면서 틈을 내어서 왔다며 벌써부터 김몽룡, 마구로 박, 화장지 박과 한 뭉텅이로 얼크러져 있었다. “어이, 축하해. 정석이 아부지!”병민이아빠 박정흠씨가 낭창낭창 충

짝사랑 장승심 어느 지역 지날 때면바직대는 라디오처럼그이 곁을 지날 때면공연히 바직거린다오로지한 사람 향해곤두세운안테나 라디오도 스마트폰도 주파수가 맞아야 울립니다. 무수한 떨림이 있지만, 그 떨림에 공명을 맞추지 못하면 울림은 있을 수 없지요. 그 공명을 얻기 위해 ‘오로지/한 사람 향해/곤두세운/안/테/나’. 하지만 주파수가 맞아야 인간관계도 이루어지건만 ‘그이 곁을 지날 때면’ 나의 안테나만 공연히 바직거릴 뿐 ‘그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사랑의 신호라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짝사랑

“자녀들이 다들 훤칠하게 좋네. 부인도 미인이고.” 하며 식장으로 들어갔다. 처음 주례를 누구로 모실 건지 연구할 때 영순씨가 “이번엔 좀 무겁고 신중한 곰 같은 선생님을 모시소. 지난 번 슬비 때 김용태총장님은 하도 낯간지러운 칭찬을 많이 해서 민망해서 혼이 났다 아이가?” 하는 바람에 골똘히 생각하다 “아, 그렇지 강인수 선생님!” 하고 쾌재를 불렀던 것이었다.열찬씨가 언양농업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수업이 시작되는데 국어선생이 바뀌었다. 아직 서른 전의 총각이라는데 반듯하게 잘 생긴 얼굴이 보기 좋게 타

결코 땅뺏기가 안 되게 석정희 2023년 10월 7일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고 있는이슬람 저항운동파 하마스는최근 동예루살렘에 있는'알-아크사 모스크'에이스라엘 종교적 민족주의자들의방문이 잦아지자사전경고 없이 이스라엘을 향해로켓 수천발을 발사하며 침공해25개국 224명의 인질을 잡고범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중동의 패권 국가였던 오스만제국이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팔레스타인으로 알려진 지역에대부분 아랍인들이 살았고유대인들은 소수민족으로 살았지만국제사회가 유대인을 위한"고국(National Home)"을팔레스타인 지

“자, 이제 마지막으로 아주 귀한 분을 소개드립니다. 경북 성주출신으로 서울대공대를 졸업하고 현재 대우인터내셔날 사장으로 계신 김재곤 사장 내외분님입니다. 빈농의 아들로서 개울에서 난 용이기도 하지만 그 어려운 구조조정과 아이엠에플 다 견뎌낸 진정한 소신파에 실력자입니다.” 엄청난 멘트로 소개하고 “김재곤입니다. 반갑습니다.”답례하는 당사자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소개와 달리 너무나 조그만 체구에 검은 얼굴이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라기보다는 시골의 농부나 도시의 노동자와 같아보였기 때문이었다. 김재곤씨는 영순씨와 초중고의 오랜

찻잔을 앞에 놓고 박홍재 헝클어진 속내 달래 간추린 앉음새로센 바람 붙박이듯 묶어둔 끄트머리한 올씩 두 사람 사이 한 땀 한 땀 깁는다창문 너머 초록 잎새 마을 더욱 가라앉혀눈 맞춤 고개 끄덕 나누는 이심전심네 마음 찻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신다- 2022년 세종도서 선정 시조집 《바람의 여백》에서가을이다.햇살이 따스한 창가에 앉아 찻잔을 앞에 놓는다.이야기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을 본다.가을빛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무료할 뿐이다.저 가을을 바라보면 이심전심으로

결혼식 전날 밤이었다. 자신의 옷차림이나 머리손질, 관광버스에서 하객에게 대접할 음식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다 처제 영신씨와 사촌처형 미혜씨와 통화를 하며 까르르 웃거나 입을 삐죽거리는 영순씨를 보며 “고민도 행복한 고민일세. 역시 아들 장가보내는 기분은 엄마가 다 내는구먼.” 열찬씨가 비죽이 웃자 “당신은 무슨 걱정이 있어요? 보통 아빠들은 아들딸 결혼식 날 미리 이발소에만 갔다 오면 따로 준비할 것도 없다면서요?”“무슨 소리? 구두도 닦아 신어야지.”“아이구야, 많이도 바쁘겠다.” 마주 보고 웃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대

일상, 아카이브가 되다“고창 고인돌은 내 사진인생에서 가장 정성을 쏟은 사진 중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사진일 겁니다. 빛과 피사체의 조화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고 그 결과의 차이는 분명했어요.”“사진가로서의 사명감일 수도 있고 승부욕일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촬영 환경을 견디며 원하는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은 사진가로서의 사명감이었죠.”“내가 어릴 적 도심 곳곳에서 숱하게 봤던 반공 표어가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고, 공중전화를 기다리는 줄도, 명절 때 방앗간 앞에 길게 늘어섰던 손님들의 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것

신작시 뚱뚱한 말 정 유 미 살 바라 살 으와걸어가는데푸짐하네 푸짐지나가는데허벅지 줄까 젖통 깔까물크렁 선인장 푹푹 하수구. 아무도 없었다군청 로터리 건설회사 이층 사무실효자손 든 구두는 오늘도 오른 귀 담배 꽂고 직원들이 외근 나간 열 시맞은편 책상 위로 올라온 꼬랑내 시끄럽다집구석에서 노는 여자여자는 팬티만 잘 벗으면 된다입인지 주둥인지오 년 전 부슬비출근하니 취한 밤이 효자손 펄럭대며 여자가 꼬리가 치마꼬리를 직원으로 보는 구두에게니기미 주사십니까 요즘 밤낚시가 거시기 하십니까간도 크지던지기 신공 구두 날랐다죽을 똥 죽을 똥

“여보, 쌀집외삼촌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데 당신도 한번 안 가볼 거요?”“쌀집외삼촌이라? 당신은 내가 거기에 갈 마음이 날 거라고 생각하나?”“당신답지 않게 와 그라요? 사위인 당신이 장인어른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친딸인 내가 이미 다 잊고 용서하는 일을...”“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잘 내키지가 않구먼.”열찬씨의 마음엔 장인어른 홍상사의 초상날 경주김씨의 집안에는 고모부의 상에는 두건을 쓰는 법도가 없다고 사촌처남들의 두건을 못 쓰게 벗긴 일에 대한 앙금이 아직 남아있었다. 이북에서 월남에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는 판에 처조카가

멈추지 않는 비는 없고, 아침이 되지 않는 밤 또한 없다. 앞으로만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꾸 되돌아보는 시인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한마음으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시에 담은 동인들이 있다.전국에 있는 시인들 중 서로 뜻이 맞는 작가들로 단출하게 구성된 이들은 “시야시야 동인”으로 이번 가을 연간지 『여백, 04』호를 출간했다고 한다.곽의영, 김봉조, 김정오, 김종숙, 박정은, 윤영초, 이현수, 천유근시인의 동행이 만든 결실로 시의 향기가 가을 독자들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는 반응이다.함께했던 지난 시간, 생각지도 못한 반성

신작시 열흘씩 도셨다 구 자 순고아라 소리 방문 튀어나오면 남강 그물 친다 가마솥 씻어 참기름 타다닥타닥 뽀얀 국물이 몸속 물꼬 도랑을 타고 성당 나루 줄배 건너 함안 미나리들 우 아래 훑는다 배에 힘주고 파다닥파닥 튄다 무논에 고함 찰랑댄다 소주비 내린다 뽀뽓한 몸에 종지 붓는다 새벽빛에 쇠죽 끓인다 그리 살면 쪽박 찬다 안들이 칠칠치 못해 밖으로만 돈다 나가라 니 손에 밥 안 먹는다 곡기 입에 대지 않고 술 받아오라 하늘 주먹질 그런 날은 대병 소주 박스 떼기로 이고 와서 속말하며 마루에 탕 놓지 손가락 들 힘도 다 쏟고 잠 베

“그라고 보면 우리 아부지엄마가 참 억척같이 돈을 많이도 번 기라. 친 자형이 죽어도 쌀 차 들어온다고 초상에도 안 가고 형제간에도 서로가 돈을 안 쓴다고 명절 때마다 싸우면서 번 돈으로 일평생 비렁뱅이행세를 하는 큰 사위 챙기고 사기꾼 비슷한 셋째 사위 빼낸다고 목돈을 날리고 아들삼형제가 물물이 돈을 져다 내버리다 시피해도 어쨌거나 아들 딸 다들 출가시켜 살림을 내어놓았으니까. 물론 막내 삼진이가 장가갈 때는 재산이라고는 양정에 헌 집 하나뿐이고 당뇨가 심한 엄마는 쌀장사도 손을 놓고 죽을 날만 기다렸지만 말이다.”“새야, 고기

처음 선박쓰레기 캐비지청소감을 얻으러 다니다 마침내 선원들의 먹거리 선식과 선용품 선구(船具)까지 온갖 일거리를 다 떼 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댓바람에 큰 부자 아니라 재벌이 되겠다는 생각에 간이 부푼 천형씨가 저녁에 룸살롱에 양주를 까며 “처남 니는 참 재주도 좋네. 나는 여자 후리는 재주 말고는 재주가 없는 줄 알았는데.” 대견해 하자 “자형이 저를 키우고 공부시켜 항해사로 만들었는데 내가 한번은 보답을 해야지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고 “그래 고맙다. 오늘은 우리 둘이 코가 비뚤어지도록 묵자!”“예. 내만 믿고 조금만 기다

이녁은 좋겠슈 이 남 순 산소에 술 따르며 울 엄마 늘, 혼잣말오면 온 줄 아나 가면 간 줄 아나아퀴를 짓지 못하는 유배 길을 알긴 하나부엉 눈 멀뚱히 뜨고 남은 날 헤아릴 일꽃가마 타는 꿈에 베갯모 적실 일 없이두 다리 잘 뻗고 누워 걱정근심 당최 없이- 『서정과 현실』, 2023년 하반기 호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을 받아적다가 보니 그게 시조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과 어머니가 원초적 시조의 스승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이남순 시인의 시조에는 방언으로 표현한 부분 때문에 우려낸 깊은 맛이 살아있다. 이녁은 남편을 조금 높여 부르는

사랑 김만옥 연필이없을 때도아름답게 그리고지우개하나 없이상처도 지워버리는참으로알 수가 없는신비로운 그 큰 힘 ‘연필이/없을 때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그릴 수 있고 ‘지우개/하나 없이’ 그 어떤 ‘상처도 지워버리는’ ‘참으로/알 수가 없는/신비로운 그 큰 힘’이 바로 ‘사랑’이군요.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연필’과 ‘지우개’에 빗대어 너무나 명료하게 정리한 작품이라 해설을 따로 하지 않아도 쉽게 와 닿습니다. ◇ 손증호 시인▷2002년 시조문학 신인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성파시조문학상, 전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