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오늘의 詩」 ... 새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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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무지(道无知) 도무지(道无知)
  • 승인 2020.01.01 16:34
  • 업데이트 2020.01.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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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어깨에 힘을 좀 빼자

새해 첫날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 이 영겁(永劫) 의 둘레를 /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 새해 첫날이라 이름 지었던가//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시로 골라본 작품입니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챘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위 시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두 사람의 작품을 한 부분씩 떼어내어 합성한 것입니다. 앞의 것은 조지훈(1920~1968) 시인의 <새아침에> 의 제2연이며, 뒤의 것은 김종길(1926~1917) 시인의 <설날 아침에>의 제5~8연입니다. 조지훈 시인의 시는 우주론적이고 역사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 느낌이 다소 묵직하다면, 김종길 시인의 시는 소박하면서도 인생론적인 깊이가 있어 좋습니다. 두 사람의 작품을 이렇게 뜬금없이 함께 붙여놓아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는 것은 두 시인의 성장 배경이나 살아온 이력이나 사상적 계보가 친연성(親緣性)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해 첫날부터 이렇듯 경박한 장난(作亂)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새해 첫날의 시로 흡족한 작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주론과 인생론이라는 두 세계를 다 품는 걸작에 도전하기에는 제 깜냥은 까마득히 멀어 감히 엄두도 내질 못하니까요.) 이처럼 <새해를 맞이하는 시>는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시인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시>를 나름대로 공들여 썼지만 대개 자신의 평균작에 머물고 수준작에도 도달할 수 없었으니, 그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바로 목적시의 함정입니다. 말하자면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 입니다. 매일 솟아오르는 그 해가 그 해인데 유독 ‘새 해’라고 하려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지요.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수많은 시들이 있지만 그 옛날 우리들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김종길 선생의 시가 아직까지도 새해의 대표적인 애송시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가 ‘어깨에 힘 빼는 일’부터 하시기를 권합니다. 늘 하던 대로 하되, 마음만은 새롭게, 조금은 가슴 설레는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볼 일입니다. 하여 최계락 시인의 동시 <새해엔>을 끝에 소개합니다. 이보다 나은 새해 시를 선택할 수 없었지만, 이 시 또한 엄격히 말하자면 ‘아이의 마음’을 흉내낸 것일 뿐 그 자체는 아니어서 흡족한 것은 아닙니다. 새해 첫날은 다소 미흡한 마음으로 출발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희망이란 뭔가 모자라는 것이 있어 생기는 것이고, 그 부족한 것을 조금씩 채워가는 것이 또한 인생의 보람일 테니까요.

새아침에 / 조지훈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秩序)를 잃을지라도
성진(星辰)의 운행(運行)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法度)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 지었던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한(恨)은
태초(太初) 이래(以來)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 번 의욕(意慾)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不退轉)의 결의(決意)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것과 새것을 의(義)와 불의(不義)를
삶과 죽음을 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山脈) 위에 보라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波濤) 위에
이글이글 태양(太陽)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 얼음장 밑
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 파릇한 미나리 싹이 / 봄날을 꿈꾸듯 //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새해엔 / 최계락

무거운 얼음장 밑을 / 그래도 / 냇물은 / 맑게 흐른다. //
그렇다 / 찬바람을 / 가슴으로 받고 서서 //
오히려 / 소나무는 / 정정한 것을. //
새해엔 / 나도 / 그렇게 살아야지. //
어둡고 답답한 / 땅 속 / 깊은 곳에서도 //
지금쯤 / 새 봄의 기쁨을 위해 / 제 손으로 목숨을 가꾸고 있을 / 꽃씨. //
그렇다 / 언젠가 / 이른 아침을 / 뜨락에 쏟아지던 //
그 / 눈부신 / 햇살처럼 //
나도 / 새해엔 / 그렇게 살아야지. //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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