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밥과 투표
[조송원 칼럼] 밥과 투표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20.01.24 19:11
  • 업데이트 2020.01.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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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투표, 절실하고도 신중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것

투표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설날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나니 시원·섭섭하다. 더불어 새해를 맞으니 희망에 설레기도 한다. 깜냥껏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즈음이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줄어들고 골목골목이 주차장으로 변한다. 적어도 이날에는 가까운 피붙이는 모인다. 모임은 대화를 잉태하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흐르는 제야와 정월 초하루의 풍경, 마주치는 지인들과 주고받는 덕담, 그러나 이 평균적인 일상이 남의 일인 양 가슴 저미는 사람들이 있다. ‘평균’은 평균에 미치지 못한 이들에겐 유토피아다. 이들의 모임에선 이미 잉태된 대화가 유산한다. 말이 가슴을 후비는 쇠꼬챙이가 될성부름을 익히 터득한 탓이다. 복직이 무기 연기된 쌍용자동차 해고자 46명도 이들에 속한다.

쌍용차 이사회 의장인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지난 16일 한국을 방문했다. 목적은 경영난을 호소하며 정부의 추가지원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GM(제너럴모터스)의 방한과 닮은꼴이다. GM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군산공장을 철수하며 ‘일자리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8100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냈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여전히 인력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쌍용차는 2017년부터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 말까지 누적 적자는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노사는 지난해 7월 임원 20% 감원, 급여 10% 삭감을 결정했다. 이어 12월에는 임금동결과 상여금 200%를 반납하는 자구책도 내놨다. 문제는 이 자구책과 함께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참여한 노·노·사·정 협의체의 해고자 전원 복직 합의를 노사 양자가 파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복직 대기자 46명은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회사는 무기한 휴직을 통보하며 통상임금의 70%만 주겠다고 했다. 이들은 출근투쟁을 하고 있다.

46명을 무기한 휴직시키고 그들의 임금 30%를 아낀다는 게 경영정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기서 마힌드라의 의뭉스런 대정부 협상 책략을 읽을 수 있다. 정부도 참여한 복직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정부에 부담을 지워, 쌍용차에 대한 정부 지원을 압박하려는 책략인 것이다.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는 문 정권은 쌍용차에 추가 지원을 하여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켜라” 쌍용차 이해관계인의 이런 여론몰이를 예상하며, 사회적 합의인 마지막 남은 해고자 46명의 복직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대한민국 ‘평균’의 일반인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한국지엠이나 쌍용차에 대한 정부의 추가지원을 반대할 것이다. 남의 일에는 그 하기 좋은 말 ‘시장 논리’에 맡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한국지엠이나 쌍용차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이면, 혹은 그 회사들과 전·후방 경제에 관계되는 시민이라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인간이 본래 이기적 동물이어서가 아니다. 직장은 밥이고 밥은 목숨이다. 너와 나 장삼이사가 밥을 포기하고 정의를 선택하라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익산 잠정마을에서는 주민 98명 중 27명이 각종 암에 걸려 14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1월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에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마을 인근 비료공장에서 담뱃잎 찌꺼기인 연초박을 가열·건조해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발암물질(TSNAs)로 인해 암이 발병한 것이다. ‘18년간의 싸움’ 끝에 잠정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잠정마을의 승리는 ‘밥’ 문제가 걸린 반대 주민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농촌 환경오염 문제의 대명사인 경북 봉화군의 ‘석표제련소’는 아연제련공장이다. 안동MBC는 꾸준히 기획보도로 석포제련소 문제를 보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취재진은, 침묵하거나 취재를 막는 지역민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잠정마을 금강농산의 비료공장은 소규모업체여서 거기에 밥이 걸려 있는 지역민이 적었다. 그러나 석포제련소는 대형사업자이다 보니 여기에 밥줄이 걸려있는 주민들이 많았다. 게다가 생활권이 겹치는 태백시는 태백시의 생존권 문제라며 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에 반대했다. 환경오염보다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이다. 농촌에서 이런 사례는 많다.

‘아세아시멘트공장’에서 내뿜는 분진 때문에 제천시 송학면 인근 주민들은 광부가 아닌 농부였지만 진폐증을 앓았다. 진폐증으로 끝나지 않고 마을공동체가 결딴이 났다. 아세아시멘트공장에서 밥벌이하는 이웃들과 반목 탓이다.

조송원

직장은 밥이고 밥은 목숨이다. 나 역시 환경오염이나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 자신은 없다. 그러나 밥벌이와 거리가 먼 공공선을 위한 선거에서는 투표권을 제대로, 정직하게 행사해야지 않을까? 아니, 민주시민으로서의 강제된 도덕적 의무이다. 소수 집부자들을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있다. 매일 3명의 노동자가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망사고 사업체의 처벌을 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 그는 북핵문제를 재선에 유리하게 활용할 일념뿐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국의 생존의 초석이며 번영의 디딤돌이다. 하여 정부는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 사업을 적극 추진하려고 한다. 한데 오만하게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미 워킹 그룹을 거쳐야 한다’고 식민지 총독 같은 요설을 내뱉는다. 성조기를 흔드는 무리들, 그 무리를 핵심지지 세력으로 삼는 정치인과 정당이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밥과 투표, 절실하고도 신중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일이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