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오늘의 詩」 ... 서시·별 헤는 밤 / 윤동주
도무지(道无知)의 「오늘의 詩」 ... 서시·별 헤는 밤 / 윤동주
  • 허섭 허섭
  • 승인 2020.03.18 18:35
  • 업데이트 2020.03.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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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윤동주 75주기

1941년 연희전문 문과대를 졸업한 윤동주 시인 졸업사진
1941년 연희전문 문과대를 졸업한 윤동주 시인 졸업사진.

지난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과 김수환 추기경이 소천(召天)·선종(善終)한 날이다.

살아생전 김수환 추기경은 평화방송 ․ 평화신문에서 간행한 회고록 인터뷰에서 평소 좋아하는 애송시를 묻자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이라며 특히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이 구절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로 시작하는 <서시(序詩)> 도 매우 좋아하지만 감히 읊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고 겸손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004년 초판 / 2009년 증보판)-

필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동심(童心)> 이었다. 그들은 천진난만(天眞爛漫) 한 동심의 소유자들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치찬란(幼稚燦爛)까지는 아닐지라도 개구쟁이의 면모를 죽을 때까지 지니고 계셨다면, 동주는 개구쟁이가 될 수 없어 일찍 철이 든 애늙은이가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 동심만큼은 늘 지니고 있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을 기리는 마음에서, 민족의 애송시인 <서시> 와 <별 헤는 밤> 을 새삼 다시 읽어 보고자 한다. 이 땅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외워 보려고 했고 외우고 있는 시편일 것이다. 그리고 탁월한 동시 작가였던 동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 두 편과 이 둘을 합쳐서 만든 참 재미있는 동요 한 곡을 소개할까 한다.

948년 정음사에서 발행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1955년 다시 발행한 증보판 시집
1948년 정음사에서 발행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1955년 다시 발행한 증보판 시집.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941. 11. 20

윤동주를 두고 우리는 ‘영원한 청년 시인’ 이라 부른다. 해방을 앞둔 시점에 일본의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생체실험의 마루타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에 그의 요절(夭折)을 안타까워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소월도 박인환도 우리 나이로 30대 초반에 요절하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을 두고 ‘영원한 청년 시인’ 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들 가슴에 동주의 그 ‘순결한 영혼’ 을 기리고자 하는 추모의 마음이 있기에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주는 별을 노래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 우리는 ‘영원(永遠)’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내일 해가 뜨지 않더라도 별은 영원한 것이다.

별의 어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별은 분명 해와 달과는 다른 행성이다. 해와 달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우주라면 별은 분명 별(別)난 것이고 색다른 것이다. 해와 달은 우리 유관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별은 아스라이 멀어 망원경이 발명된 오늘에도 계절에 따라 그 자리를 옮겨가며 간신히 볼 수 있는 별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라고 하면 태양과 지구와 달이라는 태양계를 넘어 그 너머에 있는 은하수나 안드로메다의 별들의 세계를 비로소 우주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옛날부터 별빛 속에서 영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이 비로소 통합된다고 하는데 이는 물리에 대해 까막눈인 내가 모를 일이고, 우리말에는 처음부터 이미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질서 속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Sun)가 곧 날(日)이고 해(歲/年)이며, 달(Moon)이 곧 달(月)이지 않는가? 이는 지구의 자전 / 달의 공전 / 지구의 공전을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 단위로 삼은 것이다. ‘날 / 달 / 해’ 이 세 단어야말로 바로 공간과 시간이 통합된 단어인 것이다.)

1999년 민음사에서 발행한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와정병욱이 간직했던 원고
1999년 민음사에서 발행한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와 정병욱이 간직했던 원고.

별은 영원하다.

우리 문학사에서 별을 가장 많이 자주 노래한 시인이 누구일까? 물어 무엇하랴! 오늘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여 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가 날아가버린다 해도, 그로 인해 계수나무 아래 떡방아를 찧던 토끼도 놀라 토낀다 해도, 저 영원한 별들과 함께 윤동주의 시는 영원할 것이다, 아니 영원할 지어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는 청춘(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1941. 11. 5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 있는 윤동주 시비[위키피디아 /CC-BY-SA-3.0]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자선시집(自選詩集)을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려 했다. 그러나 1937년부터 실시된 ‘일본어 상용 정책’ 즉, ‘한국어 말살 정책’ 에 의해 한국어 시집 출판이 어려워져 무산되었다. (원고를 살펴보신 이양하 선생께서 일제의 검열에 저촉될 작품이 몇 편이나 되어 일본 유학을 앞둔 동주의 신변에 오히려 위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출판을 만류한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출판에는 실패하였으나 윤동주는 육필로 시집 3부를 작성하여 1부는 자신이 갖고, 다른 1부는 은사(恩師)이신 이양하 교수님께 드리고, 마지막 1부는 글벗이자 후배인 정병욱에게 주었다. 현재, 우리 곁에 온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는 정병욱 선생에게 준 육필 원고를 토대로 1948년 정음사에서 발행한 것이다.

정병욱 선생이 갖고 있던 원고를 보면 <별 헤는 밤> 의 초고는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가 마지막 줄이었다. 시를 읽은 정병욱은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 라는 의견을 말했고 윤동주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번 정형이 <별 헤는 밤> 의 끝 부분이 허전하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끝에다 덧붙여 보았습니다.” 라며 마지막에 넉 줄을 추가하였다고 전한다.

윤동주 자필 원고 <별 헤는 밤> 해당 페이지.

이러한 정병욱 교수의 증언이 사실임을 직접 이 시의 구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보아 크게 현재 -과거 - 미래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미래에 해당하는 마지막 연은 앞의 어조와 사뭇 다른 목소리로 되어 있다. 앞의 어조는 고백체인 ‘-습니다’ 로 되어 있음에 비해, 마지막 연은 예언조인 ‘-거외다’ 로 되어 있지 아니한가? 마지막 연을 보탬으로서 이 시는 낭만적 고백시를 넘어 비로소 예언시로서의 품격을 얻게 된 것이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 윤동주 작시 / 외국 전래동요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제는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 모두 손을 잡고 걸어가자

베개맡에 무릎 꿇고 앉아서
무언가를 기도하는 꼬마아이의
조그만 소원이 무언고 하니
장난감 자동차가 갖고 싶다나

산속에 사는 사람 감자 캐먹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 물고기 먹고
뒤뜰의 풀잎은 이슬 먹는데
별나라 사람들은 무얼 먹나요

( 별똥 먹지요 / 별똥 먹나요 )

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 다운인(다운 증후군 지적장애인) 여동생이 손동작을 곁들이면서 부르는 동요가 너무 좋아 다시 불러 보라고 하며 몇 번이나 들었던 적이 있다. 분명 우리 초등학교 시절엔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다.

맨 마지막에 문답 형식으로 말하는 <별똥 먹지요 / 별똥 먹나요> 하는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다. 노래는 사실 <무얼 먹냐요>에서 끝났지만, 노래를 부른 아이들이 <별똥 먹지요> 라고 답하고 다시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별똥 먹나요> 하고 다시 재확인하는 형식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이다. 분명 마지막의 <별똥 먹나요> 는 물음이 아니라 재확인의 언어 형식인 것이다.

나중에 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누님에게 이 노래에 대해 물었으나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한 채 아무래도 윤동주 시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공동 의견을 나누었던 것 같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到來)하고 이 노래를 다시 찾아보았다. 여러 군데를 살펴보아도 우리 전래동요라고만 설명해 놓았는데 다시 더 살펴보니 윤동주의 동시 두 편을 합쳐서 개사한 것이라는 해설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 그러나 이 노랫말을 개사한 작사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인터넷 검색을 한 결과 또 한 가지 소득을 얻게 되었다. 이 노래의 원곡은 외국의 전래동요로 그 제목은 <Hush little baby> 이었다.

눈감고 간다 / 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1951. 5.31

무얼 먹고 사나 / 윤동주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 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 1936. 10.

동요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https://www.youtube.com/watch?v=tq4NZPBNHTQ

외국 전래동요 <Hush little baby>
https://blog.naver.com/ggochuzang41/221581108533

윤동주 <눈 감고 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JhMTgopybu0
https://www.youtube.com/watch?v=JuKceAhKwcM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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