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7)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7)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 김해룡 김해룡
  • 승인 2020.05.02 21:44
  • 업데이트 2020.05.08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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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 [William Segar / Public domain]

목차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의 뿌리 찾기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아나모피즘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후(死後)에 꿈을 꾸다니?
#햄릿, 죽다

● 『햄릿』 3막 4장

『햄릿』 3막 4장은 다른 장들에 비해 그 길이가 길다. 앞의 글(5회) 말미에서 밝힌 바대로 햄릿과 왕비의 대화를 휘장 뒤에서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햄릿이 칼로 찔러 죽였다. 그 시신이 휘장 뒤에 방치된 상태에서 둘은 대화를 계속한다. 왕비의 재혼에 따르는 윤리적 문제와 여성성이 주제이다. 대화는 햄릿의 일방적 주도로 진행된다. 그 시작이 이러하다.

왕비.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네가 감히 내게 대들어
이렇게 난폭하게 욕설을 퍼붓는단 말이냐?

햄릿. 그런 행동은
정숙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수줍음을 유린하고
미덕을 위선이라 부르고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운 이마로부터
장미꽃을 따버리고 그 자리에 창부의 낙인을 찍는 것이며
결혼의 서약들을 도박꾼들의 맹세들처럼
거짓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아, 그런 행위는
성스러운 결혼약속과 그 합의로부터
그 영혼을 뽑아버리는 것이고 달콤한 사랑의 맹세를
잡스런 말장난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3.4.40~48)

햄릿은 마르틴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덴마크로 돌아왔다. 3막 4장에만 ‘한정적’으로 햄릿이 종교개혁의 화신이 되어 귀국한 것이다. 햄릿은 왕비의 재혼이 이마에 “창부의 낙인을 찍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단언한다. ‘바빌론의 창부’를 연상시키는 단언이다.

문화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엘리자베스 여왕 재임 말기인 1600년도 즈음에 런던 인구의 평균 수명이 30세 정도였다. 그리고 이 사회는 혹독한 가부장제적 사회였다. 범죄자들과 창부들의 이마에 화인(火印)을 찍는 미개 사회이기도 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은 두 부류로만 존재했다. 미혼이거나 기혼이어야 했다. 미망인은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미망인이 짧은 수명을 그나마 다 누릴 마지막 수단은 재혼이었다. 이 글 2회에서 첫 남편과 사별하고 그 남편의 동생인 헨리 왕과의 재혼에 명운을 걸었던 아라곤의 캐서린의 경우를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성서 외에는 달리 삶의 규범을 정한 문헌이 없었던 때였기에 혼인에 관한 한 성서는 유일한 지침서였다. 〈신명기〉 25장에는 유대민족만의 독특한 결혼 관습이 기록되었다. 후대 사람들이 이 관습을 대(代)를 계승한다는 의미의 ‘계대(繼代) 결혼,’ 혹은 ‘레비라트 혼(婚)’(levirate marriage)이라 칭한다. 관련 절(verse)은 ‘형제들 중 결혼 후에 후손 없이 죽은 형제가 있으면 그 죽은 자의 아내는 타인과 재혼하지 말 것이며, 남은 형제 중 하나가 그 여인을 취하여 혼인하고 그 여인이 낳는 첫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할 것을 명’하고 있다. 미망인은 남편의 형제에게 안겨진 이 의무를 감당하지 아니하려는 형제를 성읍 장로들에게 고발하고 그 얼굴에 침 뱉는 모욕을 가하기까지 할 수 있었다.(25:5~10) 요약컨대, 이 재혼은 근친혼이 아니며, 미망인에게는 의무이며 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죽은 햄릿 부왕이 햄릿을 후손으로 남기긴 했지만 정황적으로 시동생인 새 왕이 주도하는 왕비와의 재혼은 비난 받을 행위가 아니다. 당연히 왕비는 새 왕이 자신의 남편을 독살한 살인자임을 모르고 있다. 따라서 성서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비난을 피할 방비를 갖춘 셈이다. 왕비로서는 명운이 달린 간택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헨리 8세 왕이 이 결혼을 했다.

그러나 혼령의 반응은 다르다. 혼령의 말에는 분노와 억울함과 힐난이 배어있다. 혼령이 뱉는 분노의 주된 표적은 덴마크의 군왕인 자신을 독살한 자와 자신의 비(妃)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속도로’(O most wicked speed! 1.2.156) 결행한 혼인이다. 이 혼령에게 성서적인 해석은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아들 햄릿에게 자신이 독살 당했음을 알린 뒤 혼령은 동생 크로디어스와 왕비의 결합을 근친상간으로, 왕비를 부정한 여인으로 몰아간다.

유령. ... 저 근친상간과 간음을 일삼는 짐승 같은 놈,
... 비할 데 없이 정숙해 보이던
내 왕비의 뜻을 꺾고 마침내 파렴치한 그 수치스러운 육욕을
채우고 말았다. 아, 햄릿, 이 무슨 타락이란 말이냐?
... 나를 두고 나에 비하면 그 천품이 비열하기
그지없는 그 철면피 같은 놈의 수중에 떨어져 버리다니.
그러나 정절이, 비록 육욕이 성자와 같은 모습으로
유혹해도 결코 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육욕은, 찬란한 천사와 짝을 이루어도,
그 천국의 침상에서 욕망을 가득 채우면 지겨워져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법이다. (1.5.42-57)

... But virtue, as it never will be moved,
Though lewdness court it in a shape of heaven,
So lust, though to a radiant angel link'd,
Will sate itself in a celestial bed,
And prey on garbage. (1.5.53-57)

지구상의 모든 문화권에서 연극 예술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거의 예외 없이 신파(新派)극이 등장했다. 영국의 경우 중세의 ‘도덕극’(Morality Plays)이나 ‘기적극’(Miracle Plays)들과 근대극 사이의 과도기적 형태의 연극이다. 신파 연극의 주요 요소 중 하나가 유령의 등장이다. 유령은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해서 살해당했으니 복수해 다오.”라고 호소하고 극은 유령의 뜻대로 흘러간다. A.D. 1세기의 로마의 비극작가 세네카(Seneca)의 ‘복수비극’(Revenge Tragedy)에 고정적으로 등장했던 이 유령을 영국의 신파비극이 차용했다. 1592년에 초연되었던 영국 복수극 장르의 시조격인 토마스 키드(Thomas Kyd)의 『스페인의 비극』(The Spanish Tragedy)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유령은 극이 끝날 때까지 무대 위 발코니에 앉아 극의 진행 과정을 다 관람하고 품평하고 극을 마무리 짓기까지 한다. 당연히 관객도 이 유령을 극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유령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등장인물이었던 것이다.

● ‘virtue’/정절과 ‘lust’/육욕

『햄릿』과 『스페인의 비극』은 이미 근대극에 속해 있었다. 단지 유령이라는 신파극의 잔재를 끝물처럼 극에 남겼다. 이 두 극에 등장하는 유령이 신파의 수준을 극복한 요인이 있다. 두 유령이 구사하는 수사(修辭, 레토릭)의 수준이 그것이다. 원문이 함께 인용된 위의 다섯 행이 그 한 예이다.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속도로’ 근친상간의 잠자리로 뛰어 든 왕비를 지칭해야 할 어순(語順)에 인칭명사 대신 유령은 ‘lust’라는 추상명사를 구사한다. 이런 절제를 유령이 구사하다니!

유령은 이 레토릭을 통해 두 가지를 밝혔다. ‘virtue’/정절과 ‘lust’/육욕은 서로가 맞대고 이웃해도 그 각기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왕비의) 육욕은 천상의 침상이었던 자신(왕)으로 채워졌음에도 이내 쓰레기(새 왕)를 뒤져 새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수사의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이 아니다. 유령의 빈틈없이 절제된 수사들을 눈여겨 볼 일이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햄릿』의 우리말 번역본은 ‘virtue’를 ‘정숙한 여인’으로, ‘lust’를 ‘음탕한 여자’로 옮겨놓았다. 유령의 절제된 레토릭의 힘이 없다면 이런 어휘의 오역으로 인해 유령의 신분이 신파극의 주류로 전락했을 것이다.

다시 유령의 대사로 돌아와 독자들이 인지해야 할 부분이 있다. 햄릿과 유령이 왕비에 대해 쏟아놓는 힐난의 주제가 타락한 ‘여성성’(female sexuality)이라는 것이다. 햄릿이 유령의 어법을 흉내 낸다. 유령의 폭로에 경도된 것이다. ‘바빌론의 창부’에서 ‘창부’가 지칭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우상숭배에 치우친 로마 가톨릭이다. 이에 덧붙여, ‘창부’와 ‘타락한 여성성’을 떼어 놓을 수는 없다. 유령의 힐난으로부터 왕비와 ‘바빌론의 창부’가 중첩되기 시작했고, 햄릿의 아래 대사가 둘을 동일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특기할 것은 햄릿의 비난이 신랄함을 더해 갈수록 왕비의 항변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성성에 집착하며 왕비의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햄릿의 도발에 왕비는 침묵으로 일관하기까지 한다.

햄릿. 대체 눈이 있습니까?
어떻게 이 아름다운 초원동산에서 먹고 살기를 포기하고
이 황무지 벌판에서 돼지같이 육욕을 채웁니까? 하, 대체 눈이 있습니까?
그걸 사랑이라 부를 순 없지요. 당신 나이쯤 해선
불꽃같던 욕정도 잡혀 겸손해지고
옳은 판단에 순응하는 것인데, 대체 어떤 판단으로
이리로부터 이리로 자리바꿈을 한 건가요?
...
대체 어떤 악마가 씌웠기에
두 눈을 가려 이렇게도 당신을 기만했습니까?
감각이 없으면 눈으로라도, 시각이 없으면 감각으로라도
손이나 눈이 없으면 귀로, 모든 게 없으면 냄새로라도
또는 병이 들었을지라도 단 한가지의 진정한 감각만 있으면
그렇게 우둔한 짓거릴 하진 않을 겁니다, 아 이 치욕, 당신의 정조는 어디 갔습니까?
...
더러운 침대의 악취 나는 땀 속에
구역질나는 돼지우리에서 타락에 푹 젖어 정담을 나누고
욕정을 만족시키며 사는 것 밖에 할 게 없겠지요! (3.4. 65-94)

상기의 '이 아름다운 초원동산', '이 황무지 벌판', 그리고 '이리로부터 이리로' 등의 지시 형용사의 쓰임이 가능하려면 무대 중앙에 선왕과 현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거나, 햄릿은 선왕의 얼굴이 돋을새김된 메달(Medallion)을, 왕비는 현왕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을 목에 걸고 있어야 한다.

햄릿이 왕비에게 이렇게 난폭한 공격을 해대는 중에 선왕의 유령이 등장한다. 휘장 뒤에는 시신이, 무대 위에는 유령이 떠다니는 미증유의 장면이 벌어졌다. 유령은 햄릿의 “무디어진 결심(복수)의 칼날을 갈아주기 위해서”(3.4.111) 왔노라고 한다. 이어 유령이 “어머니의 괴로워하는 영혼을 보살펴 주도록 하라”고 햄릿을 타이른다. 그러나 유령이 사라지자 왕비의 여성성을 수치인 것으로 몰아가는 햄릿의 공격의 수위는 한 층 더 높아진다.

햄릿. 과거의 죄를 참회하고 다가올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잡초들에 거름을 퍼 주어
그것들이 더 무성하게 자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 숙부의 잠자리로는 가지 마십시오.
절개가 없다면 있는 체라도 하세요.
...
오늘 밤만 참아 보십시오.
그러면 내일 밤은 자제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고
그 다음 날 밤은 더욱 더 쉬워질 것입니다.
왜냐면 습관이란 가히 타고난 천성도 바꿀 수 있고
경이로운 능력으로 악마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몰아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4.151~172)

아들로부터 욕구억제의 비법을 전수받는 희대의 부끄러운 ‘이 왕비는 셰익스피어가 그린 가장 내실없는 인물 중 하나이다. 거트루드는 오직 결점만 드러낸다. 이 극 전체가 그녀의 몰이해에 좌우되고 있다.’고 웨스트(Rebecca West)는 적었다. 이 ‘몰이해’로 인해 자신의 내면을 후벼 파는 햄릿의 독설에 왕비는 고작 “나는 어찌 해야 하느냐?”(What shall I do?)(3.4.182)라고 반응할 뿐이다. 왕비는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오성(悟性)이 사라진 것이다.

● 『햄릿』 3막 4장은 종교개혁을 빗댄 은유의 장면인가?

격전의 말미에 폴로니어스의 시신을 향해 햄릿은 “이 또한 하나님의 뜻, 이 자를 앞세워 나를 벌주시고, 나를 도구삼아 이 자도 벌주셨으니, 나는 하나님의 응징의 채찍이요 대리인”(3.4.175-177)이라고 선언한다. 복수자인 자신이 살인을 저질러 보복을 당해야 할 처지로 몰렸음을 인정한 것이다. 햄릿이 감행해야 하는 복수는 이런 요인으로 인해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 은유의 장(章)을 구상할 때 필자는 ‘마르틴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체험한 햄릿이 덴마크로 돌아와 가톨릭교도인 어머니를 창부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그녀의 여성성을 질타하는 것으로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절묘한 은유의 장면을 연극사에 남겼다’는 결어로 글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 장을 마무리하며 필자가 생각을 바꾸었다. 결론을 온전히 독자의 읽기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즉, 이 장면이 종교개혁을 빗댄 은유의 목적으로 설정된 것으로 읽히는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필자의 잠정적 결론을 부디 무시하고 3막 4장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 장면을 필자와 유사한 관점으로 읽는 연구자들을 아직 접하지 못했기에 필자로서는 독자의 의견이 궁금한 것이다. 이제, 판단에 필요한 단서들과 역사적 사실들을 요약하며 이 장(章)을 맺는다.

● 단서들과 역사적 사실

1600년대에 영국은 헨리 8세가 유혈의 대가를 치르고 결행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을 가톨릭 고토(故土)로 되돌리려는 교황청의 집념은 그 도를 넘었다. 교황청은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예수파(제수이트, Jesuit) 사제들을 부단히 영국으로 잠입시켰다. 이들은 개종하지 않은 채 숨어 지내던 영국내 가톨릭 신자들에게 은밀히 미사를 집전하는 동시에 수차례에 걸쳐 엘리자베스 여왕 살해 음모를 꾸몄다. 교황청은 여왕 살해 후에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Mary, Queen of Scots)을 왕위 계승자로 세울 계획까지 세웠다. 이런 음모가 발각될 때 마다 음모자들은 반역죄로 정죄당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극형을 당했다. 런던 시민들은 이 참상을 목격하며 여왕의 만수(萬壽)를 빌었고 교황청을 저주했다.

1605년 10월에 발생한 폭약음모사건(Gunpowder Plot). 가톨릭 제수이트(Jesuit)파 사제들과 그 추종세력이 제임스 왕을 살해하려했던 음모. 결행 직전 이 음모가 발각되어 가담자들이 처형되는 광경.
1605년 10월에 발생한 폭약음모사건(Gunpowder Plot)의 가담자들이 처형되는 광경. 가톨릭 제수이트(Jesuit)파 사제들과 그 추종세력이 제임스 왕을 살해하려했던 이 음모는 결행 직전 발각되었다. [Claes (Nicolaes) Jansz Visscher / Public domain]

이럴 즈음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몸담았던 극단의 이름이 ‘시종장의 충복들’(Lord Chamberlain's Men)이었다. ‘로드 챔버린’(Lord Chamberlain)은 시종장(侍從長), 궁내 대신, 혹은 의전부 대신으로 번역되고 궁정 연회를 주관하는 직책이었다. 즉 시종장이 이 극단의 후원자였다. 이로 인해 이 극단은 왕실 내 연회장에서 공연하는 특권을 누렸다. 공연의 내용은 당연히 친왕실적이어야 했다. 여왕 사후, 1603년 제임스 1세 왕(1566-1625, 재임 1603-1625)의 등극과 때를 같이하여 이 극단은 ‘왕의 충복들’(King's Men)로 그 이름이 바뀐다. 제임스 왕이 후원자가 된 것이다. 왕실의 눈 밖에 나는 장면들은 극단이 자체적으로 검열해서 삭제해 버렸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엘리자베스 왕조시기에 국가적 자긍심이 걸린 변혁이었다. 알아채기 쉽지 않은 은유로 표현되었지만 무대에서 이 3막 4장이 관객들의 이 자긍심을 일깨웠다.

김해룡 교수

햄릿이 비텐베르크에서 돌아왔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햄릿이 왕비인 어머니를 거의 창부로 다루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어머니이다. 왕비는 자신의 여성성이 매도당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모욕으로 여기지 않는다. 면죄부 판매를 독려했던 가톨릭 고위 신분자들도 죄의식 감수성이 마비되어 있었다. 자식이 어머니의 여성성을 수치로 단정 짓는 이십 여 분에 걸친 치열한 다툼은 인류가 다시는 만들어 내기 어려운 장면이다. 관객으로서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이 3막 4장에 당대의 영국인들이 로마 가톨릭을 바라보는 시선이 묻어 들어갔다. 독자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바, 초기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은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바빌론의 창부’라 칭했다. 이제, 판단하시라!

다음 회에서는 이 전체 글의 주제인 『햄릿』 속의 ‘메멘토 모리’의 양상을 살필 것이다.

<전 한일장신대 교수 / 영문학 박사(셰익스피어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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