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17)누가 누구를 바보라 부르는가?
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17)누가 누구를 바보라 부르는가?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5.11 00:01
  • 업데이트 2020.05.11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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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사 여래좌상전 앞에 놓인 벅수. 험상궂은 표정이지만 아무 능력이 없어 옆에 활짝핀 모란이 비웃는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장뿐인 사진에 엄지손가락이 나왔네요. 귀여운 바보로 보아주시길...

자, 여기서 우리는 '바보'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과연 바보는 이 세상에 불필요하고 부담스런 존재이기만 할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우선 우리는 바보가 남을 헤치거나 손해를 끼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을 것입니다. 또 바보가 질투를 하거나 폭행을 하고 이간질을 하는 걸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역사적으로 좀 모자란 사람이 정상인과 암투하고 밀고를 하며 그를 해쳤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는 참으로 기막힌 바보스토리를 러브스토리에 무용담(武勇談)으로 각색해 모두들 좋아하고 역사의 전면에 올린 걸 보면 삼국시대나 그 이전부터 우리 사는 세상엔 역시 바보가 필요하고 우리 민족은 결코 바보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복잡한 사회에서 '바보'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요? 아무데서나, 아무 생각 없이 참으로 천진스런 이야기를 하고 조그만 칭찬이나 먹을 것에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 소위 좀 모자라거나 바보소리를 듣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매우 복잡한 악보 가운데 숨어있는 하나의 쉼표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공해로 찌든 대도시에 푸른 숲의 공원이 허파가 되어주듯, 시골장터의 엉성한 약장수나 차력사, 길거리가수처럼 픽, 한 순간의 웃음이 되고 위로가 되어 꼭 세상 이치나 이해타산에는 맞지 않더라도 묵묵히 제 길을 가는 '깨어있는 바보'도 어느 정도 있어야 이 세상은 평화롭고 조화로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바보일까요, 아닐까요? 좀 억울하지만 우리는 모두 바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따위의 철학적 명제를 두고라도 우리는 술과 담배가 몸에 해로운 걸 알면서도 매일 돈과 건강을 포기하고 국고(國庫)를 살찌우고 있습니다. 또 텔레비전의 광고가 거짓과 과장인 걸 알면서도 유해물질이 든 화장지, 가습제와 침대를 사고 있으니 그 또한 바보입니다. 우리는 정말 모두가 '눈뜬 당달봉사'인 것입니다. '여의도의 양복장이'들 에게 선거 때마다 속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멀쩡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를 비롯한 우리시대의 그 영악한 '똑똑이'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몇 명의 가수들은 자신이 바보임을 진작 알고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선 진송남의 〈바보처럼 울었다〉라는 노래를 보면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하면서도
  어이 해 어이 해 말 한마디 못 하고
  바보처럼, 바보처럼 그대를 잊지 못하고 
  그 까짓 것 해보건만, 아무래도 못 잊어서
  바보처럼 울었다. 목을 놓아 울었다.

하고 자신이 바보임을 솔직히 인정하며 어떤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떠나버린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그 바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오랜 시간 울었겠지요. 그러나 마침내 눈물이 마르자 가슴이 텅 비며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겠지요.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다시 새로운 여인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보라서, 바보임을 인정해서 행복한 것입니다.

 또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를 보면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 하는 말이야 
아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참으로 단순하고 유치한 가사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타향은 여전히 낯설며 외로운 땅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굳이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우기면서 그것이 향수를 달래려고 일부러 술이 취해 하는 말이라는 것까지 고백하면서까지 그는 여전히 바보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 겁니다. 술이 취하거나 일부러 바보행세를 하지 않고는 우리 사는 세상이 너무 괴로워 차라리 바보로 살아야겠다는 절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그만큼 괴롭고 바보가 되지 않고는 피할 수 없다는 역설(逆說)이 되기도 합니다.

진옹(進翁) 시인

이와 비슷한 맥락에 우리는 김도향의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떠올려보면 그는 진작 바보의 단계를 넘어 이미 자신을 잘 아는 소크라테스級 선각자가 되어있음을 알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너무나 똑똑한 사람이 많고 아무도 바보가 되지 않으려 해서 갈등과 원망이 많으며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그 많은 욕심과 자부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심지어

“내가 뭐 바보인 줄 아나?”

하는 정말 바보스런 생각마저 내려놓아 마음속에 어떤 그늘이나 스트레스도 없는 행복, 바보 같은 행복을 좀 누려본다면 어떨까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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