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간월산 산책 (21)살갈퀴, 소인국(小人國) 백성이 되어
평리(平里) 선생의 간월산 산책 (21)살갈퀴, 소인국(小人國) 백성이 되어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5.20 00:05
  • 업데이트 2020.05.20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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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살갈퀴

사진에 보이는 식물이 한국의 산과 들에 흔한 살갈퀴라는 잡초입니다. 덩굴이라고 보기엔 짧고 줄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길고 조밀한 초록 잎이 끝없이 번져가며 풀섶을 이루고 분홍빛의 아주 작은 꽃을 피우고 가늘고 긴 꼬투리에 담배씨만큼 작은 열매를 여럿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콩과 식물인 것 같습니다.

표준말을 쓰는 서울사람들이 무슨 연유로 '살갈퀴'라는 생소한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몰라도 저 연약한 풀잎의 덩굴에 숨은 작은 새콩을 영양분으로 메뚜기, 하루살이와 같은 작은 곤충, 지렁이와 개구리, 참새와 들쥐들이 자연스럽게 먹이사슬을 이루며 숨어사는 소굴과 살아가는 터전이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옆의 식물을 좀 보십시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금세기에 들어 이 땅에 슬금슬금 침투해온 서양 살갈퀴로 하고 키와 꽃이 엄청 큰 저 꽃이 처음엔 가로화단의 은행나무나 목백합의 발치에 화초로 심어졌다 폭발적으로 번식하며 시골의 들길과 개울가까지 몽땅 접수해 이제는 어떻게 퇴치할 수도 없는 불가사리(不可殺伊)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수만 년 이 땅을 지켜온 토종살갈퀴를 하루아침에 〈걸리버여행기〉 속의 소인국 식물로 전락시키면서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한 20년 전, 전세기(前世紀)말에 도시화단의 여백에 아주 크고 붉고 동그란 열매를 매단 서양클로버가 등장하더니 어느 새 시골의 논둑길과 야산까지 번지고 있는데 우리가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는 토끼풀보다 잎과 꽃이 너무 커 오히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젊을 적 '은희'라는 가수의 〈꽃반지 끼고〉라는 대중가요가 있었는데 만약 저렇게 큰 꽃송이를 매단 꽃반지나 팔찌를 끼게 한다면 아직 여리고 풋풋한 처녀는 너무 무거워서라도 금방 도망을 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토종 살갈퀴(왼쪽)와 외래종 살갈퀴

그뿐이 아닙니다. 외래종인 '자리공'이란 크고 무지한 독초가 들어와 우리의 산야에 있는 모든 식물들을 질식시키고 덮어나가는데 얼마나 지독하게 토양의 양분을 흡수하는지 한 번 자라공이 번진 땅은 적어도 한 10년 다른 작물이 자랄 수 없다고 합니다. 또 오리농법을 한다고 함부로 들여온 서양우렁이도 그렇고 베스라는 외래어종과 황소개구리도 우리의 토종생물들을 멸종시키고 있습니다.

제 집 뒤에 '칼치못'이라는 길쭉한 못이 하나 있는데 그리 크지는 않지만 우리 누님이 처음 시집왔을 당시 자영과 같이 낚시를 하러 가면 붕어, 잉어에 가물치와 메기가 넘쳐났고 못가의 갈대에 새까맣게 붙은 우렁이는 귀찮다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한 20년 전 낚시를 하러온 젊은이가 재미사마 당시에 유행하던 '베스낚시'를 하려고 베스를 몇 마리 푼 후로 모든 토종어류가 절멸하고 베스만 올라오는 황폐한 저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2015년 귀촌한 제가 그 사정을 알고 저수지용 커다란 통발 10개를 사서 한 2년 동안 베스새끼를 수만 마리(한 몇 가마니가 될 듯)를 잡아 땅에 묻고 새로 붕어종자를 넣어 지금은 간혹 아기손바닥만한 붕어가 잡히고 낚시꾼들이 슬슬 꾀이기 시작하는데 또 어느 철없는 젊은이가 '베스'를 풀까 봐 늘 긴장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한 때 낚시방송에서 베스를 즐겨 낚는 개그맨 지모씨를 보면 그만 불쑥불쑥 화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한 사회나 나라가 망하려면 그 징조로 반드시 인심이 바뀌고 그 전에 동식물과 자연환경에 이변(異變)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 엄연한 역사적 배경과 '살갈퀴', '토끼풀', '자라공'과 베스 같은 엄청 큰 침략자가 이 땅을 가득채 워도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백성처럼 이 땅의 위정자나 누구하나 그 불길한 징조에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 있습니다.

토종 토끼풀(왼쪽)과 외래종 클로버

제가 느끼기로 지금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겉으로는 산림이 엄청 우거져 치산녹화를 넘어 산불위험이 되면서 속으로 토종생물들이 수난을 당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연이 이렇게 속으로 골병이 든 것은 너무 급2진적인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국력과 국운을 몽땅 걸던 시절에 울산에 거대한 공장을 지은 현대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아직 이른 봄인데도 공장이 새파란 잔디밭 위에 멋지게 조성된 것처럼 보이게 인근 들판의 보리밭을 몽땅 사서 살아있는 보리를 캐다 옮겼고 그 걸 대통령이 흡족해하면서 환경이 경제의 한 수단 또는 희생양이 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평리(平里) 선생

아무튼 지금 이 땅의 거의 모든 토종 동식물이 크고 생산성이 높은 외래종에 의해 소인국의 백성이 되어 패퇴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 또는 국민의 정서 또한 이와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에도 외국을 본뜬 '녹색당'이나 '환경단체'가 적지 않은 줄 아는데 그들이 모조리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는 군중의 일원이 되어 세상을 바꾼 것까지는 좋은데 그들이 본연의 업무라 할 이런 외래종의 침투를 막고 토종생물을 보호하는 활동이나 캠페인을 벌이는 걸 별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환경에 눈을 돌려 '환경의 촛불혁명'을 이루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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