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32)찔레꽃, 어머니를 찾아서
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32)찔레꽃, 어머니를 찾아서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6.05 21:29
  • 업데이트 2020.06.05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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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벅지게 핀 하얀 찔레꽃송이
흐벅지게 핀 하얀 찔레꽃송이

쉰아홉 살의 5월에 아들을 장가보내 홀가분해진 저는 후진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40년을 몸담았던 공직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이제는 출근을 하지 않는 이튿날도 습관처럼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니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아 모처럼 텔레비전뉴스를 보아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여보!”
하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아내를 부르니
“왜? 시집온 지 35만에 모처럼 느긋이 커피 좀 마시는데...”
영 반응이 시원찮아
“영서야!”
여섯 살짜리 외손녀를 불러
“우리 호수공원 어린이놀이터에 놀라갈까?”
간절한 낯빛으로 쳐다보았지만
“싫어. 금방 텔레비전에서 <뽀로로>를 한단 말이야!”
일언지하에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40년간 아랫사람을 부리며 말년에 여비서에 운전기사까지 딸렸던 '국장님'의 말을 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졸지에 일개졸병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참 서성거리다
'그래 언양에나 가자. 공직생활 잘 마쳤다고 부모님 산소에 신고도 하고 찔레꽃 가득한 마구뜰도 좀 걷고...'

아내를 설득해 외손녀가 유아원에 가자마자 언양으로 향했습니다. 산소를 참배한 뒤 혼자 들길을 좀 걸으려 아내를 막내누님 집으로 보내고 혼자 걸어서 진장만디를 내려가 마구뜰을 뒤져 새북도랑둑에 하얗게 핀 찔레꽃을 찾아 한참이나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를 찾아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고향에 간다.

배추씨, 고춧가루, 미꾸라지
언양장터 울 어머니 난전자리에
골라골라 싸구려 옷 빛깔이 고와 
울 어머니 고춧가루 붉은 꽃 된다.
꿈틀대던 미꾸라지 현기증 되어
어지러운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다리를 저는 데다 글도 모르고
날만 새면 일만 하고 웃음이 적어
어린 맘에 단 한 번도 살갑지 않아
곰살맞은 기억보단 무섭기만 한
그 어머니 내 다 늙어 왜 그리운지

큰 형님 병 고치러 교회 다녀도
대보름 땐 소지(燒紙)하며 축원을 하고
객지 가선 한동안 절에 다니다
막내 동생 군에 가자 찬물 떠놓고
아침마다 손을 빌던 우리 어머니,
이 세상을 모두 믿던 울 어머니는
임종 때도 들녘처럼 평온했었지

어머니와 같이 살던 내 고향 마을
고속도로 나면서 관통되더니
고속철 업무단지 수용이 되어
마을사람 흩어지고 폐허 돼버린
텅 빈 땅에 어머니를 찾아서 간다.
새참 먹던 갈배기논 도랑둑에
용케도 한 무더기 찔레꽃 피어
분홍빛 꽃잎들이 물에 떠간다.
울 어머니 눈물방울 떠내러간다.

수첩을 꺼내 시 한편을 쓰고 나자 사정없이 눈물이 나 온갖 차량이 싱싱 달려가는 고속도로 교각 아래 갱빈에 주저앉아 무심히 흘러가는 남천내의 여울목과 물웅덩이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어머니와 큰어머니, 그리고 큰누님이 앉았던 언양장터골목
어머니와 큰어머니, 그리고 큰누님이 앉았던 언양장터 골목

늘 가난했던 우리 집, 몸이 불편했지만 다정다감한 아버지와 억척스레 일만 하던 어머니, 장승백이 고개 너머 신평으로 진장만디로 또 명촌리, 장촌리로 차례로 시집을 간 네 누님과 내 남루한 사춘기를 떠올리며 한참이나 울고 나서 세수를 하자 비로소 가슴이 환해지며 노란 햇살이 비치는 강변이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들 자동차를 타고 다리 위를 건너다니지만 아직도 저처럼 직접 남천내를 건너 읍내 장(場)이나 학교에 가는 사람이 있는지 옛날 뚝다리(언양지방에선 징검다리를 그렇게 부름)를 흉내만 내어 만든 비뚤비뚤 꼰들꼰들 위태로운 돌덩이 하나하나를 간신히 넘어 언양장터를 찾아갔습니다. 옛날 어머니는 고춧가루와 채소씨앗을 팔고 그 옆에는 어머니보다 훨씬 늙은 큰어머니가 체머리를 절절 흔들며 콩나물을 팔다 돌아가시고 마지막 신평 큰누님이 물려받아 미꾸라지와 채소를 팔며 일요일이 낀 장날마다 '부산동생 득수'가 오기를 기다리던 난전터에 가니 시장현대화로 골목이 바뀌어 닭집, 옷집, 대장간집이 들어섰지만 옛 모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데다 우리 어머니나 누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남천내 개울로 나와 하얀 찔레꽃이 점점이 떠가는 개울물을 바라보다 아내의 전화가 와서 두 누님과 만나 옛날에 '소뼈국물'로 불리던 언양장터의 별미 곰탕 한 그릇씩을 먹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볼 때마다 그립고 서러운 꽃 찔레꽃, 그날은 토지수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마을의 마지막 찔레꽃을 보며 참 원(怨) 없이 운 날이었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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