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이름 석 자 남기려고1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이름 석 자 남기려고1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6.13 21:05
  • 업데이트 2020.06.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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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1003호(2020.6.14)
바위마다 새겨진 이름들
바위마다 새겨진 이름들

사진은 작천정 입구의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입니다.

영남알프스의 아스라한 바위계곡에서 발원해 꽃향기 가득 싣고 간월계곡을 달려온 이 맑은 물가의 넓고 깨끗한 반석과 바위, 심지어 호박소의 낙차 옆까지 크고 작은 바위, 반듯하거나 기운 바위 할 것 없이 모든 바위에 크고 작은 이름이 빼곡합니다. 

그럼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이 정자가 조선말 정긍조언양현감과 언양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림의 일부가 협조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현감이 매우 겸손하고 소탈한 분이었는지 자신은 물론 당시 향청(지금 지방의회 역할)의 좌수나 별감, 또 오래 세거(世居)한 집성촌 양반에 이름도 따로 기록이 없습니다.

그 중 좀 특이한 이름을 한 둘 열거하자면 호박소(沼) 아래 번듯하게 드러난 바위의 맨 상단에 아주 크고 깊게 새겨진 이구소(李九簫)란 이름이 보이는데 아홉 개의 피리라는 뜻의 좀 특이한 이름의 주인공은 당시의 관리나 유림이 아닌 여자 한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관기였는지, 주가(酒家)의 여주인이나 기생, 또는 최하급의 논다니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반상의 구분이 엄격하던 시절에 양반도 아니고 사내도 아니면서 저 명당에 저렇게 크게 이름을 새긴 것이 좀 엉뚱합니다. 당시의 정세가 풍류를 즐길 만큼 태평성대가 아닌 상황에서 쇄국정책과 천주교 박해로 곪을 대로 곪은 조선말 편협하고 무능한 양반사회의 일각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 수많은 이름을 읽어가다 하나의 반복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해주 오(吳)씨의 이름이 많고 그 중에는 죽은 아버지의 이름에 붉은 표지를 하고 그 밑에 자신이 그 아들임을 표하는 자(子) 아무개라는 글씨까지 보입니다. 

이 작천정이 언양지방을 대표하는 명소라면 역시 언양을 대표하는 문벌(門閥)이나 선비의 이야기가 나와야 당연할 터, 언양지방의 명문이랄까 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해주 오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 합니다.

바위마다 새겨진 이름들

제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오경숙, 오형식이라는 두 반창이 있었는데 그 중 오경숙은 언양에 하나뿐인 한약방집 딸이었고 그 언니 오영자는 저의 문예반 선배로 같이 마산의 백일장에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알기로 그 해주 오씨는 언양현의 세습 아전(衙前) 집안으로 한성에서 내려오는 중앙의 수령방백인 현감을 모시고 조세, 징집 등 현의 모든 행정업무의 실무를 담당하는 실세였답니다. 1894 갑오개혁으로 행정체계가 바뀌고  한일합방으로 현청 자체가 없어졌지만 그들은 숫자적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언양사회의 중심으로 군림하다 해방 후에 오위영이라는 국회의원과 오현주라는 미스코리아가 배출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또 당시 특별조치법 등 부동산등기 이전업무를 전담했던 오민근사법서사 사무실도 있었고 오영수라는 향토색 짙은 소설을 쓰는 훌륭한 작가가 배출되었으니 언양지방의 근대화 과정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거기다 제 동창 오경숙의 오빠로 하동 쌍계사의 조실스님으로 한국불교계의 큰 지도자인 오고산 스님이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목사로 한국기독교의 주요 지도자인 조용기 목사와 동기동창 같은 책상의 짱개로 국민학교를 졸업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영수문학기념관 전경
오영수문학기념관 전경

그런데 제가 나이가 좀 많이 들어 제 생질네 고가를 뜯으며 입수한 고서(古書)로 마패가 다섯 개나 찍힌 1894년 동학란 와중에 언양읍민 40명이 당시의 순무사(巡撫使)에게 보낸 진정서에는 언양현의 아전 김모와 오모 2인의 부정을 탄원한 내용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20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특정 집안이나 성씨를 찬양하거나 포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고장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게들 우리가 살아왔으니까요. 

저는 초등학교의 선배로서 또 문학적 스승으로, 언양의 사투리를 지켜내려는 애향의 표본으로 난계 오영수 선생님을 대단히 존경하며 사표로 삼고 있습니다. 「머루」, 「남이와 엿장수」, 「갯마을」 같은 작품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비교적 짧고 정제된 문장으로 신불산, 간월산, 화장산과 고무재 같은 향토의 아름다움과 아무런 수식도 없이 담백하며 절실한 언양사투리의 울림을 잘 살려낸 명문소설로서 미술과 서예에 두루 정통한 선비의 품격처럼 전체적으로 단아한 문체를 뽐내고 있습니다.

언양에서 송대리 성당을 거쳐 상북면으로 향하는 화장산 산기슭에 「오영수문학관」이 잘 가꾸어져 있으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람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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