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과학과 문학의 만남
[과학 에세이] 과학과 문학의 만남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20.06.13 22:39
  • 업데이트 2020.06.17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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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을 동화적 감성으로 풀어낸다면... [사진=픽사베이]

얼마 전 과학도서 전문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흥미로운 원고를 받았으니 프리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원고를 보니 기획의도를 짐작할 만했다. “물리학이라는 신비의 섬에 가고 싶지만 수학이라는 낯선 언어의 장벽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리학을 동화적 감성으로 풀어내고 싶다.”

원고를 읽다 저도 모르게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문학 기자 시절, 하루는 젊은 시인과 문학·물리학을 안주 삼아 얘기하면서 거의 밤을 샌 적이 있다. 과학과 문학은 소통을 위해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던 것 같다. 공대 출신 시인과 물리학과 출신 기자가 의기투합한 셈이다.

얼마 후 그 시인은 국제신문의 ‘김언의 독서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책(‘구름을 만들어보세요’)에도 웬만한 시를 능가하는 구절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어떤 것을 만지면, 반드시 그것도 여러분을 만지게 된다.’ 작용과 반작용을 얘기하면서 튀어나온 이 구절이 꼭 시가 아니어야 할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르겠다. 오히려 이런 반문이 가능하다. 과학이 이렇게 시를 만질 수 있다면, 시 역시 과학을 못 만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구름을 만들어보세요’에서 K.C. 콜(미국물리학회 우수과학저술가)은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강조한다. 콜은 “어느 시대의 형이상학은 그 앞 시대에 존재한 물리학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개념을 너무 기술적이지 않은 언어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물리학자 막스 보른의 말을 인용, 과학이 소통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한다.

저자의 이 같은 주문은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이는 일찍이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다”고 갈파했다. 왜 우주 법칙이 수학으로 정확하게 기술되는지는 아직 수수께끼이지만 물리적 현상을 오염 없이 명료하게 기술하는 언어로 수학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문제는 수학을 일반인은 읽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요즘 물리학은 거의 추상화 수준이라고 푸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대 물리학을 기술하는 수학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전공자 말고는 ‘통역(번역)’이 없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은 단순한 사실의 집합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문화적 환경을 이루는 개념들의 집합일진대, 물리학적 발견과 지식을 그들끼리만 공유한다면 이는 인류의 정신적 자산을 낭비하는 일이다.

막스 보른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보른이 언급한 ‘물리학의 개념을 너무 기술적이지 않은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최근 과학적 지식에 대한 시민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쉬운 통·번역’ 요구도 높아졌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과학자는 물론, 과학저술가, 과학기자·칼럼니스트 등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애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은유(metaphor)’를 많이 사용한다. 어려운 물리적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일상의 용어나 감성적이고 시적인 언어를 동원하는 것이다.

조송현
조송현

과학과 은유는 생뚱맞은 조합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도, 상상도 못했던 어떤 현상을 처음 발견했다고 치자.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새로운 발견(원관념)을 이미 존재하는 개념(보조관념)으로 설명해야 한다. 바로 은유다. 과학의 최전선에서는 늘 적절한 은유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돈다’는 표현은 ‘사랑의 고통이 내 가슴을 찢는다’는 문학적 표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김언 시인의 말대로, 시와 과학은 서로 못 만질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이 접촉하고 소통할 필요가 충분하다.

내가 받은 ‘흥미로운 원고’도 이 같은 소통을 추구하는 노력의 소산으로 보였다. 쉽지 않은 작업인 데다 오도(誤導)와 왜곡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신화나 종교적 우화가 긴 생명력으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듯,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이라는 신비의 섬에서 맘껏 뛰놀고 즐기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물리를 동화나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감성적인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다는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원문 보기 ☞ 국제신문 [과학 에세이] 2020-5-11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