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호주제도와 한글족보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호주제도와 한글족보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6.23 16:37
  • 업데이트 2020.06.23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토 에세이 통산 1013호(2020.6.24)

  

서기2000년 기준 경주이씨 진사공파 언양계 세보와 목차
서기2000년 기준 경주이씨 진사공파 언양계 세보와 목차

이름 이야기를 하던 중 전(前) 회에 제가 저의 집안의 세보를 국한혼용 가로편제로 펴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하나이며 이름의 전시장인 족보문화에 대해서 한 번 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옛날 한 집안 또는 개인이 한 고장에서 대대로 터를 잡아 농사를 지을 때는 산 너머 이웃 고을과 혼사를 하거나 한성의 왕궁에서 관리를 뽑을 때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무슨 문제나 흠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왕가와 양반가문에서는 한 사람을 등용할 때 그 친가와 외가, 처가에 이르는 3족(族)을 살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한 자와 학덕이 높고 효행과 절개가 높은 가문인지 아닌지를 낱낱이 파헤쳐 아무 하자가 없어야 등용을 했고 만약 그런 벼슬아치가 대역죄라도 지으면 그 3족을 멸(滅)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렇게 남의 족보나 들여다보는 보학(譜學)이란 학문이 다 있을 정로 개인은 물론 가문의 자질과 성쇠가 중요했는데  소위 명문(名門)소리를 들으려면 첫째 공신(功臣)이니 명문가의 후예여야하며 그 부계와 외가에 벼슬이 높은 사람이 많은 것은 물론 당사자의 학문과 효행이 깊고 어려운 이웃을 구휼(救恤)하는 인정이 있어야 하며 학문은 물론 시문(詩文)에도 능했다는 문집(文集)에 효자나 열녀가 있는 정려(旌閭)문을 두루 갖추어야 했고 그 위에 당대의 석학과 교류를 가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선비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집성촌의 마을입구에 주로 세적비나 정려각이 있고 거기엔 반드시 위에 적힌 조건을 다 충족한 것으로 기록한 것은 물론 경상도 사람이 저 먼 전라도나 충청도의 이름난 선비와 교류한 것으로 기록이 되는데 재미있는 건 경상도의 한 고을에 전라도의 사계(沙溪) 김장생이나 하서(河西) 김인후란 유학자와 교류한 기록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면 인근의 모든 비석에 동일한 기록이 적힌다는 것입니다.

한글족보의 기재방법

그래서 제가 새 족보를 만들 때는 첫째 족보의 의미와 활용, 경주 이씨라는 거대한 씨족에서 합천 이씨, 고성 이씨 등의 새로운 이씨들이 분적한 기록 또 익재공파 중에서 파를 나누어 독립한 분파기록 등을 기록하고 시조에서 중시조를 거쳐 현존문중원에 이르는 수직의 연결도와 15가족 세보식구의 가계도를, 그리고 우리 가문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족보의 내용은 해방 이후에 살다 죽은 사람이나 현재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나중에 후손에게 어떻게 살았는지 실감이 나게 그들이 종사하던 직업과 나중에 병이 들거나 사고로 죽은 사인(死因)도 기록했습니다. 그러고 옛날 족보에는 금기시 하던 화장(火葬), 개가(改嫁), 출계(입양)등도 정확히 기록해 숨김이 없도록 했습니다. 또 15문중원의 총명부와 그들의 주소록, 전체 또는 개인별로 관리하는 묘지의 일람표를 작성하고 문중원간이 각각 몇 촌(寸)에 해당되는지는 가로세로 조견표로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10상달에 산소에 찾아가 한해농사의 풍년을 감사하는 시사(時祀)때 쓰는 축문을 비롯한 각종 축문을 한글로 시대에 맞게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발간한 새족보 <경주이씨 진사공파 언양계>의 세보를 문중원의 아들딸과 시집간 딸까지 각 1부씩 나눠주고 또 일부는 친지나 이웃에 나눠주었는데 그 새로운 기록법과 현실화된 축문에 감동 족보를 얻어가고 축문 쓰는 법을 직접 배워간 집안이 한 십여 곳이 됩니다.

최신식 촌수조견표

여기서 제가 특별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보통 각종 제(祭)나 행사를 할 때 <유세차>로 길게 뽑으며 시작해 역시 마지막에 <상향>이라고 길게 마무리하는 그 기본형식에 관한 생각해보니
<유세차>는 <오늘>이라는 의미로 제사시점을 말하며
<상향>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어서 드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중간의 내용은 모두가 마치 살아있는 부모에게 그날 또는 그 시절의 가정사, 세상사를 의논하는 투의 매우 다정하고 실질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매우 부드럽고 절실하며 아름다웠습니다.(제 짐작으로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려시대의 부드럽고 따뜻한 축문을 경직된 유교나라 조선시대에 와서 유세차 같은 무겁고 형식적인 수식이 붙은 것 같은 짐작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우리집안 한글축문의 예시입니다.
축문 예시(찬찬히 읽어보시면 우리 조상들의 숨길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祝文(축문)
 
維歲次(유세차, 오늘)
서기 2018 무술(戊戌)년 시월 열하루날
종손 성암이는 종친회장등 여러 집안사람들과 입향조 할아버님을 찾아뵙고 삼가 아뢰오니
벌써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이라 그동안 이 호젓한 산속에서 얼마나 고적(孤寂)히 지내셨습니까.
저희들 후손들은 여러 조상님들의 보살핌으로 올해도 풍년(豊年)을 맞고 사업과 직장을 잘 꾸려나가는 가운데고 있으며 문중원들이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문학작품이 대상을 수상하는 등 무던하게 한해를 지나온 것이 모두 할아버님의 은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 미취업과 미혼으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 들어가는 젊은이들과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일족도 많사오니 입향조 할아버지께서 만사가 순조롭게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지금은 시대가 변해 자손들이 대부분 객지로 나가 젊은이들을 비롯한 문중원들이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찰이 송구스러울 따름이나 부디 너그러이 용서하시어 앞으로도 문중사람 모두가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부끄럼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과 행운을 베풀어주시기 바랄 따름입니다.

입향조 할아버님. 여기 올 가을에 수확한 햇곡식과 과일로 박주소찬을 마련하였사오니 부디 기쁘게 받아주시고 앞으로 긴 겨울 내내 그윽이 잘 계시옵소서.

尙饗.(자 드십시오.)

<시인·소설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