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가장(家長)이란 이름으로, 어머니란 이름으로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가장(家長)이란 이름으로, 어머니란 이름으로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6.24 11:51
  • 업데이트 2020.06.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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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1014호(2020.6.25)

드라마 <토지>의 한 장면.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의 가정적 책임에 대해서 남편은 <식구를 먹여 살리려고> 매일 일터로 나가는 사람으로, 아내는 <식구들 목구멍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사람으로 매일 밥을 짓고 상을 차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자기들의 자식인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 노력하는 것은 같지만 그 행태(行態)나 절실함은 퍽이나 다릅니다. 

먼저 가장인 아버지는 식구를 위해 밖에서 무엇인가 벌어 집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하고 아내는 구체적으로 밥상을 차려야 하는데 설령 남편이 돈이나 먹을거리를 구해오지 못해도 아내는 식구를 굶길 수 없어 무언가(something to eat)를 상에 올려야 하는 것이니 그 절박함이 천양지차입니다. 심지어 자신은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아 갓난애에게 빈 젖을 물리면서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또 다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먹여야만 하는...

그래서 사내는 한 가장으로서, 그러니까 한 아내의 남편으로, 또 아이들의 아비로서 그 이름값을 하여야 하며 어미 역시 한 사내의 아내로서, 자기가 낳은 여러 아이들의 어미이자 밥을 먹이는 자로서 역할(이름값)이 있어 이를 해결하려 온갖 몹쓸 짓도 마다 않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버려야 합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그런 애달픈 사연이 한둘이랴만 저는 여기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하소설 박경리의 <토지(土地)>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최참판댁 이야기의 핵심 중 외동딸 서희를 낳은 뒤 사냥으로 세월을 보내는 병약한 양반인 최치수를 죽이고 그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명색 글을 읽은 양반꼬투리지만 일생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김평산이가 귀녀라는 계집종과 칠성이라는 농사꾼을 포섭하여 삼(麻)줄로 최치수를 살해하고 귀녀가 최치수의 아이를 밴 것으로 윤씨 마님을 속여 재산을 탈취하려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회하고 대범한 윤씨 부인은 자신의 아들이 방탕한 시절을 보내다 이미 생산이 불가능함을 알고 김평산과 칠성, 귀녀 일당을 관아에 고발해 처형시켜버립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죽은 김평산의 아내 강청댁은 남편이 살인죄인이라는 사실, 자신이 살인자의 아내라는 이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당일로 처마 끝에 목을 매고 자결합니다.

그런데 살인의 하수인인 칠성이의 아내 임이네는 임이를 비롯한 세 아이를 데리고 마을과 들판을 배회하며 어떤 사내가 보리쌀 한두 줌만 주면 아이들을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치마를 걷어 올리는 타락에 아무 가책이 없었습니다. 어미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을 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윤씨 부인은 절에서 아들점지의 공을 들이다 동학군이 들이닥쳐 김개주라는 수령과 하룻밤을 보내고 김환이라는 사생아를 하나 낳았는데 성장한 그가 복수심을 품고 최참판네를 찾아와 형수인 별당아씨(서희엄마)를 유혹해 지리산으로 잠적해버립니다.

그러자 한 사내로서, 남편으로서 영원히 씻지 못할 오명을 뒤집어 쓴 최치수는 씨 다른 동생을 죽이려 명포수까지 고용 추적에 나서지만 실패하고 엉뚱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후 별당아씨가 산중에서 결핵으로 죽고 동학과 독립운동에 연결되어 천지를 방황하던 김환이는 어느 날 과수댁 혼자 사는 외딴집에 투숙을 하게 됩니다. 그 김환이 매우 미남으로 남성미가 넘쳤던 모양으로 집주인 과수댁이 한밤중에 술상을 들고 와 통정(通情)을 호소하지만 외면당하자 당일로 목을 매어 자결해버립니다. 여자라는 이름에 책임을 진 것이지요. 그렇게 떠돌던 김환이는 마침내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는데 조선의 사내로서 이름값을 한다고 바로 혀를 물고 자결하고 맙니다. 이 짧은 이야기 중에 강청댁과 임이네와 최치수와 어느 과수댁과 김환이가 각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 이름값을 하려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왜 그리 쉽게 목숨을 버린 것일까요? 그 정답은 인류의 가족사 이전 씨족사의 출발에 그 근원이 있습니다.

reconstruction by W. Schnaubelt &amp; N. Kieser (Atelier WILD LIFE ART), 2006Photographed by User:Lillyundfreya, 2007 / CC BY-SA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호모에렉투스 이미지. [CC BY-SA /3.0]

아주 옛날 나무에서 내려와 지상에 살게 된 호모에렉투스(直立猿人)가 주로 냇가의 억새뿌리와 산기슭의 칡뿌리를 캐어먹고 살다 숫자가 붓고 지혜가 늘어가자 <모계씨족(母系)氏族)>이라는 군거(群居)의 시스템이 생겨납니다. 그 요지는 과일과 씨앗, 조개류 등 먹거리가 풍부한 봄에서 가을까지 사내들은 자유롭게 천지를 떠돌며 살고 여인들은 물이 나오는 동굴(洞窟)에 가장 노련한 어미를 중심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다 사내아이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추방해버립니다. 그러다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 더 이상 곡식이나 과일과 사냥감을 구할 수 없으면 사내들은 자신들이 잡은 가장 큰 짐승인 곰이나 순록을 둘러매고 여인들이 모여 사는 동굴에 이르면 족장인 큰어미가 그 사냥감의 크기에 따라 자신의 딸과 조카 중 임신이 가능한 여성을 배정해주고 같은 동굴 안에서 겨울을 나게 하고 봄이 되면 사내를 쫓아내고 아이를 낳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우리 인류가 살아온 역사가 한글사전 한 권이라면 마지막 페이지에 해당하는 한 3,000년 전에 몸이 약해 사냥에 늘 실패하는 사내 하나가 야생의 벼를 개량해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관개농업(灌漑農業)을 개발하면서 인류는 비로소 곡식을 대량생산하고 비축하는 일대혁신을 거쳐 덩치나 뇌가 배로 커지는데 그렇게 알곡을 대량생산한 어깨 넓은 사내들이 배출되면서 비로소 사내가 여자를 거느리고 가장이 되는 부계(父系)씨족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모계씨족 시대에는 강한 어미의 혈통을 중시해 여성중심의 성(姓, 특정 여자에게서 생겨났다는 字形)이 생기고 그게 부계씨족으로 바뀌어 사내의 성을 쓰는 시대가 지속되다 바야흐로 남녀평등을 지나 여성존중의 시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부계씨족은 허울만 남고 가사의 모든 선택을 쥔 <모계씨족사회>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어미와 강한 사내, 또 보다 많은 집단을 거느린 지도자로서의 사내와 여인, 남편과 아내, 아비와 어미의 이름값과 자존심이 뿌리를 내러 그 이름값 하나를 위해 우리는 죽음도 마다 않는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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