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그리운 이름으로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그리운 이름으로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6.30 00:05
  • 업데이트 2020.06.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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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1019호(2020.6.30)

언양장날 3.1절 50주년 기념행진을 벌이는 행렬 

한 사람에게 그의 이름은 생후(生後) 최초의 소유물이라고 할 것이며 사후에는 자신이 남긴 마지막의 기억이 되고 유물이 될 것이다. 또 그가 훌륭한 삶을 살아 빛나는 성과를 남겼다면 이름자체가 후손에게 유산이 될 것이다.

반면에 매국노 이완용이나 자녀(恣女, 음행을 저지른 여인) 어우동이라면 이름 자체가 흉이 되고 욕이 되어 나쁜 이름(惡名)이나 오명(汚名)으로 불렸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숟가락질 배우듯 가장 먼저 암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일흔이 된 지금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남에게 기억되는가를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에서 가장 정확하게 듣고 절실하게 깨닫는다.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도 않고 고향바닥을 떠나지도 않은 지킴이 동창들이 가끔 하는 모임에서 내가 얼굴이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동창들에게
<그 애는 체장수집 딸인데 집이 가난해 숫기가 없었고 머리도 잘 안 감고 옷도 잘 안 갈아입어 몸에서 냄새가 났다.>
<그 애는 어릴 때 코를 질질 흘리고 공부나 싸움도 잘 못해 아무도 잘 놀아주지 않았는데 나중에 객지서 출세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고향이나 동창회에 한 번 오지도 않으니 매우 괘씸한 놈이다,)
하는 식으로 우리가 국민학교의 동창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그가 평생 그를 잊지 말고 지켜주어야 하는 것처럼 일일이 기억을 떠올리는 걸 보면 과연 나는 그가 어떻게 볼지, 내가 어떤 사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 소름이 끼치곤 했다.

그렇다. 사람의 이름이란 부르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불리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착하고 부지런하며 한 평생 어떤 오점도 없는 살았다는 떳떳한 이름이면 좋을 것이다. 그 위에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를 하면 더 좋고...

그러나 아무나 그게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꼭 그래야만 훌륭한 이름, 가치 있는 삶일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래서 역사상 위인으로 남은 이름과 악인으로 불리는 이름 몇을 거론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나라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새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꼽고 더러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김유신 장군도 거명할 것이다. 또 그 반대쪽 매국노 이완용과 폭군 연산군을 흉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당한 지위가 있고 좋든 나쁘든 이름을 알릴 수 있었는데 비해 평생 논을 갈고 밭을 매던 이름 없는 우리 조상들이 이름들은 좋고 나쁘고도 없이 그냥 지취 없이 지워지고 마는 것일까? 

거리를 걸어가는 평범한 행인들이 이미지
어느 도시 보행자들

옛날 시골에서 빈농을 착취하고 머슴을 괄시하고 여종을 겁탈한 악덕양반이나 지주의 악행은 세월이 다 용서하고 망두석이 선 번듯한 산소와 족보의 거창한 기록으로 남으면서 그렇게 괄시당하면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행랑아범이나 돌쇠나 언년이 같은 무지렁이는 아무리 열심히 살고 이웃을 돕고 선행을 베풀어도 그냥 지워지고 마는 것일까? 역사가 승리자를 위한 상급(賞給)이니 하층민은 그마저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그 난감한 물음에 명쾌한 답을 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임진왜란을 통하여 이순신, 송상현, 사명대사 같은 빛나는 이름과 선조, 원균, 임해군 같은 비겁하거나 치욕스런 이름도 발견하게 된다. 또 한일합방 때는 을사오적을 비롯한 매국노 무리와 그 반대로 민영환과 황현 같은 정의로운 이름도 발견하게 된다. 또 해방 후의 정부수립과 권력쟁탈과정에서도 그렇고.

 그러나 꼭 그런 이분법적 선악의 분류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능력과 성의를 다해 최선의 삶을 살아 나름대로 사회와 국가에 공헌한 사람, 즉 보부상으로서 민비와 대원군을 도와 나름 망국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이용익(李容翊), 천연두로 죽어가는 백성을 살리기 위해 종두법을 배워온 지석영, 또  잘못된 세제를 혁파, 농민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대동법(大同法)의 김육(金堉)을 들 수도 있다. 실패한 혁명가 홍경래와 전봉준도 무시할 수가 없고.
 
지금까지의 장황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신념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 때로 위인나 명장이 되고 선열이 되는데 비해 때로 악명과 오명으로 남은 것을 보아왔고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 석 자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때로는 공헌을 하고 때로는 낭패를 당하는 것을 보아왔다. 살다보니 위인이 되고 때로 악인이 되는 것을. 자신의 이름을 가꾸고 알리는데 정답은 없겠지만 최소한 이웃들이 살아 다정한 이름으로 부르고 죽어 그리운 이름으로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이름 석자, 심지어 이름도 아닌 가문을 대표하는 무슨, 무슨 성씨(姓氏) 하나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조선 땅의 아비와 할아비의 후손이며 그런 지아비를 위해 따로 호적에 이름도 없는 그냥 택호 아무개댁으로 불린 수많은 어미와 할미의 자손들이다. 그렇게 참으로 뿌리 깊고 선량한 이름의 후손인 것이다. 해마다 추석과 설날, 두 번의 명절에 그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이름을 추모하고 회고하러 국민의 절반이 움직이는 <민족의 대이동>을 감행하는 효행의 민족, 착한 이름의 후손들이다.

아름다운 이름, 향기로운 이름을 남기는데 정답은 없다. 단지 내 자신부터 열심히 일하고 불의에 빠지지 않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여 자식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으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손은 물론 이웃이나 친구들로 부터로 다정하고 그리운 이름으로 기억되면 그나마 이름값을 하는 것, 아름다운 생애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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